25일자 기명칼럼서 ‘홍-유 단일화’ 촉구… 한달 전엔 “철학 없는 떼거리 전술” 비난

▲ 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수구보수세력의 ‘정치 멘토’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이 말을 바꿔가면서까지 ‘수구보수 대선후보 단일화’를 재촉하고 나섰다.

김대중 고문은 25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보수는 왜 단일화 못 하나>라는 제목의 기명칼럼에서 먼저 “보수(保守)는 정녕 단일화할 수 없는 것인가?”고 탄식하곤 “그래도 보수층 국민은 나라가 좌파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보며 깊은 한숨과 함께 마지막으로 보수의 단일화에 눈길을 보내고 있다”며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단일화할 것을 촉구했다.

김 고문은 그러면서 “이번 대선에서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두 보수 후보는 단독으로는 승산이 없음을 짐작하면서도 끝내 완주를 고집하며 누구와의 연대나 단일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두 수구보수정당의 후보들을 비판했다.

이런 김 고문의 단일화 채근은 사실 자기가 한 달 전 같은 기명칼럼에서 한 발언을 바꾼 것이다. 그는 지난달 28일자 칼럼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요즘 대선 가도(街道)에서는 이른바 대세(大勢)라는 민주당의 문재인씨에게 대항하는 반문(反文) 연대 내지 단일화 논의가 활발하다. 혼자서는 못 이기겠으니 떼로 달려들겠다는 모양새인데, 그런 철학 없는 떼거리 전술로는 이겨도 후유증이 더 크고, 지면 문재인씨 또는 민주당을 더욱 기고만장하게 만들 뿐이다.” 김 고문은 이 칼럼에서는 ‘보수 통합’을 주장했다. 그는 “보수가 다시 봉합해서 앞으로 있을 좌파 독주 내지 좌파 독재를 민주적 방식으로 견제하고 의회적 투쟁으로 풀어나가는 것―그것이 이 땅의 보수·우파가 나아갈 길”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처럼 스스로가 “이겨도 후유증이 더 크고, 지면 문재인씨 또는 민주당이 더 기고만장하게 만들 뿐”이라던 단일화를 한 달 만에 말을 바꿔 주장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김 고문은 ‘대다수 보수 유권자’를 내세워 이렇게 명분을 찾는다. “지금 대다수 보수 유권자가 바라는 것은 좌파와 타협하라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성취할 수 없으면 큰 테두리에서 같은 이념과 노선을 지닌 다른 보수 정당과 연대할 수 있지 않으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엔 “철학 없는 떼거리 전술”일 뿐이던 단일화를 보수 유권자를 내세워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 운운할 때는 언제이고, 홍준표 후보와 단일화를 거부하는 유승민 후보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하지만 정치는 학문이 아니다.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얻는 작업이다. 국민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고 어디를 지향하는지를 보고 그 다수의 지향치를 수용하는 것이 정치의 몫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란 속담이 제격이다. 정치가 ‘학문’이 아니게 됐으니 거추장스러운 ‘철학’ 따위는 가볍게 털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김 고문이 19대 대선이 보름 남은 시점에 말을 바꿔가면서까지 ‘보수 단일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5년 전 18대 대선 당시 국민적 관심사였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에 대해선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문-안 단일화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 2012년 11월13일자 <단일화의 결말>이란 제목의 기명칼럼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안철수가 여기서 민주당 또는 '문재인'이라는 기득권과 타협한다면 안철수 현상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안철수의 타협은 좋게 봐서 원칙의 굴절이며 심하게 말하면 안철수 현상의 ‘위선’으로 귀결될 것이다.”

역시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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