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빈민의 삶과 투쟁(4) : 철거민 문제의 해법은 무엇인가?

▲ 사진제공: 빈민해방실천연대

‘집’이라는 이름의 권력

도시공간의 발전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공사판이 벌어지고 도로는 파헤쳐지고 있다. 과거를 돌아볼 공간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선 지 오래다.

집은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집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평범한 동네가 유명해지면서 갑자기 대규모 프랜차이즈가 들어서고 임대료가 치솟자 기존의 가게와 주민들은 임대료나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동네를 떠나게 되는 일은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주택을 가진 사람은 광주에 살고 있는 60대로 2312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2014년 기준). 10대 이하 임대사업자도 전국적으로 817명에 달한다. 주택을 둘러싼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신도시 그리고 아파트

‘신도시’와 ‘아파트’는 한국의 현대 도시를 특징짓는 핵심 단어다. 80년대 이후 수도권에 분당, 일산 등의 신도시와 아파트가 건설된 것을 필두로 전국에 걸쳐 다양한 개발이 진행되었다. 서울은 빠른 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주택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자 1980년 택지개발촉진법이 제정되었다. 당시 군사독재정권은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자 대규모의 신도시와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여 신속하고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하고자 했다.

택지개발은 1981년 11개 지구가 지정된 이래 현재까지 전국에 총 723개가 지정되었고, 2014년 말에 총 603개 지구가 준공되었다. 우리나라 도시지역 인구의 약 23.5%가 택지개발사업으로 공급된 곳에 거주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도시화 과정은 택지개발을 통해 고층의 아파트 단지와 신도시 건설이라는 특징으로 귀결된다. 

특히 군사독재정권이든 문민정부든 민주정부든 가리지 않고 역대 정권은 ‘도시재생’, ‘뉴타운’ 등의 이름으로 자본의 지속적 축적과 재생산을 위한 개발을 반복해 왔다. 한쪽에서 개발을 통한 이익을 취하고 있으면, 다른 한편에서는 삶의 공동체가 파괴되고 도시 바깥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압축적 도시화는 ‘용산 참사’와 같은 수많은 갈등과 죽음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누가 철거민이고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과연 누가 철거민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자의반 타의반으로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떠나 부유(浮游)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수도권 지역 서민들 대부분은 자각하지 못할 뿐이지 항시적으로 철거의 위협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무려 12년 동안 주거권 쟁취를 외치며 투쟁하는 방승아씨의 사례를 살펴보자.

2005년 6월 경기도 과천 3단지 재건축 조합이 결성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려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방씨는 이렇게 오랜 세월을 싸우게 될 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그녀를 버티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철거용역깡패였다. 2006년 11월에는 용역 300여 명이 들이닥쳐 강제철거를 하였다. 이로 인해 한 사람이 용역의 폭행으로 실신하였다. 저항하는 이들에게 2007년 2월 과천시청은 업무방해금지 및 확성기 금지 가처분소송을 냈다. 이 와중에 32명이 연행되어 벌금이 총 2600만원에 다다르기도 했다. 철거로 생계가 망막한 이들에게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이로 인해 과천 3단지 철거민 전원이 실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과정 속에서 철거민들은 하나둘 떠났다.

하지만 방씨는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2009년 12월부터 재건축 개발사 삼성물산에 맞서 삼성본관 1인 시위와 집회투쟁을 진행했다. 삼성측은 이건희 회장이 출퇴근하는 시간에 1인 시위와 집회를 못하게 멱살을 잡고 얼굴을 가격 하는 등 폭행하였고 명예훼손과 집시법 위반으로 고소고발과 민사소송도 반복됐다.

방씨는 “이런 지긋지긋한 투쟁이 12년째 전개되고 있습니다. 재개발이 휩쓸고 간 자리는 삶의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철거민들의 신음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기약을 알 수 없는 오랜 투쟁으로 건강조차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규제는 더욱 완화되었고 경기부양이라는 미명 아래 삼성자본은 끝없이 살찌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 철거용역깡패에 맞서 싸웠지만 본질은 삼성이라는 거대자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발 정책이 계속되어도 저와 같은 서민들의 삶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침몰해 가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되돌려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한사람의 사례를 살펴보자. 마포구 신수동 이순복씨다.

2010년 7월 신수1구역재건축조합이 결성되었다. 사업 승인처는 마포구청이며 현대산업개발이 시공사를 맡고 이주관리용역업체는 철거현장에서 악명을 떨쳐 왔던 다원과 경비는 찬마루가 맞고 있다.

이씨는 2015년 7월부터 철거민대책위를 구성하여 현재 전국철거민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전체 300여 세대 중 100여 세대가 남았고 그 중 30여 명의 주거세입자와 상가세입자들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투쟁이 시작되자 조합에선 재건축법상 전혀 없다던 이주비 등을 조금씩 지급하며 주민들을 하나둘씩 내보내기 시작했다. 대신 굳건히 버티고 있던 철거민대책위에는 명도소송으로 협박을 하였다. 명도소송은 철거절차의 마지막 단계다. 이전에 사업 승인처인 마포구청에 항의도 했다. 이주대책 마련 없이 생존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업승인 철회를 요구했으나 합법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마침내 2015년 11월18일 1차 강체집행과 철거를 위해 약 50여 명의 용역과 경찰이 동원됐다. 2015년 11월28일에는 3층에 자리 잡았던 가게에 사다리차 3대와 100여 명의 용역이 동원되었다. 이들은 유리창을 부수고 소화기를 쏘며 들이닥쳤다. 60세의 여성이 용역들에게 마구잡이로 끌려 나왔다. 소화기를 쏜 것과 폭력적인 법 집행에 항의 하던 상가위원장과 회원을 연행해 공무집행방해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6년 1월12일 3차 상가철거 때는 100여명이 넘는 용역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전기를 끊고 철거민들이 상주하는 건물에 난입을 시작했다. 쇠톱을 사용하여 뒷문과 앞문을 뜯고 소화기를 난사하며 주민들을 상대로 달려들었다. 1월 한겨울의 날씨는 영하 15도였다. 한겨울 강제집행은 사실상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폭력적이고 살인적이 집행이라는 말은 이제 상투적인 표현이 될 정도로 주민들은 처참히 내몰렸다.

그 후로 지금 이 시간까지 마포구청 앞에서 농성을 지속하고 있다. 눈이 내려도 천막조차 짓지 못한 상황에서 침낭과 비닐에 몸을 의지한 노숙투쟁이 시작되었다. 한겨울 천막은 뜯겨나기 일쑤였고 추위를 피해 구청 안 의자에 앉아있어도 끌려 나왔다. 이 와중에 함께 투쟁하던 철거민 문성관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되었다가 얼마 전 풀려 나왔다. 그렇게 동절기와 여름을 넘기고 다시 봄을 맞이하고 있다.

▲ 사진제공: 빈민해방실천연대

도시 개발정책의 맹점과 해법

최근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강제철거의 현장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서울시도 고민한 흔적은 엿보인다. 서울시는 2016년 말 강제철거 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물론 2009년 용산참사 이후 ‘도시분쟁위원회’와 같은 갈등조정기구를 둔 적이 있고 동절기 철거 금지 등 사업 시행이나 정비계획에 세입자 의견수렴과 이주대책 등의 개선책을 내놓고 있지만 대부분 행정지침 수준이고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이번 ‘강제철거예방대책’ 가운데 사전협의체도 아직은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높지 않다. 전국철거민연합 김소연 활동가는 서울시의 제반 대책에 대해 “재건축 지역과 미 해당자의 문제에는 적용이 되지 않고 민간사업 시행자에 의한 강제철거 외에는 자치구와 같은 관의 강제 집행에는 아직도 속수무책”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자니 끝은 보이지 않고 구체적인 정책은 다양한 이해당사자간의 충돌로 얽혀 있다. 현행법으로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있다. 이 법은 2002년 9월 김대중 정부 때 발의되었는데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불과 2개월이 걸렸을 정도로 입법과정이 허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법 38조 사업시행자는 주택정비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토지·물건 및 그밖에 권리를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일정 조건을 만족한 민간사업시행자에도 수용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감이 없는 재개발조합이나 건설사가 사유재산을 강제 수용하게 만든 이 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 행복추구권, 거주이전의 자유 및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우리 헌법 제37조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지만, 제한하는 경우에도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법의 매도청구제도는 헌법이 정한 위와 같은 한계를 벗어난 ‘강제수용법’이다.

강제퇴거 문제에 대해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용산참사 이후 대안적인 입법으로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법이 강제퇴거금지법안입니다. 개발 현수막이 동네에 나부키는 순간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세입자들이 불법이 되었거나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강제퇴거금지법은 개발로 대책 없이 쫒아내는 것, 강제퇴거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자는 것이 법의 취지입니다.” 이 법안은 몇 년째 국회에서 표류되어 있는 상태다. 용산참사 이후 주춤했던 철거가 다시 활기를 띄면서 강제퇴거금지법도 시급히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 사진제공: 빈민해방실천연대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공간이 돼야 할 ‘지역’

가난한 이들에게 집은 삶의 모든 것일 수 있다. 따라서 함부로 내쫓을 수 있는 폭력을 법이라는 이름을 붙여 허용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법과 제도 이전에 먼저 도시 자체가 이윤추구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이들이 두 발 뻗고 쉴 수 있는 곳, 나아가 차별 없는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이야기의 끝은 다시 원론으로 돌아와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는 주체 형성과 지역과 공간에 기반을 둔 실천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경제적 토대 즉, 생산과정에 대한 변혁뿐 아니라 작업장으로 한정되어 규정되고 있는 현장의 개념을 지역이란 재생산 공간으로 넓히고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지역적 연대를 구축하고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공간으로 지역과 도시 공간을 주목해야 한다. 모든 권리는 애초부터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권리로 여겨졌던 것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새로운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