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반대 시위장에 등장한 성조기, 가스라-태프트 밀약
탄핵반대를 주장하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가 등장해 화제다. 14차 집회를 이어오는 동안 태극기와 성조기를 양손에 쥔 채 대형 성조기까지 들고 나왔다. 그것도 3.1절에.
집회 시위의 자유가 보장돼 있으니 뭐라 할 것까진 없다. 다만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나눠 주니 그냥 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시위 참가자들도 있고 하니 ‘성조기 집회’가 탄생한 배경을 알려 ‘뭣도 모르고’하는 일은 사라지길 바래본다.
“입으론 애국, 손엔 성조기, 애국의 ‘국(國)’이 미국인가”라는 비아냥을 감수하면서까지 성조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선 청와대 요청설이 나돌기도 하지만 확인할 길이 없으니 논외로 한다.
성조기 집회를 주동하는 이유는 뼛속까지 침투한 사대근성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으로부터 지지나 나름 얼마간의 동정이라도 이끌어내고, 나아가 미국의 힘을 빌려서라도 박근혜 탄핵을 기어이 막아보려는 게다.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의 탄핵을 막는 일에까지 미국을 끌어 들이겠다? 이쯤 되면 ‘친미, 종미’를 넘어 ‘숭미’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구한말 고종은 헤이그에 이준 특사를 파견했다. 을사조약 체결이 일본의 강제에 의한 것임을 폭로하기 위해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로 향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이준 특사는 미국 등 열강들에게 조선의 독립을 도와 줄 것을 호소하며 할복해 숨을 거뒀다.
이준 열사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직전 일본의 가스라 총리와 미국의 태프트 장관이 만나 조선은 일본이, 필리핀은 미국이 점령한다는 밀약을 채결한 사실을. 이것이 바로 일본의 조선 강점을 제국 열강들이 최종 승인한 가스라-태프트 밀약이다. 이 사건으로 우리 민족은 ‘제 나라의 독립은 제 나라의 힘으로’라는 피맺힌 교훈을 얻었다.
110년이 흘러 2017년, 사드 배치로 미국과 중국간의 군사적 긴장이 격화되고, 한미합동군사훈련으로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군 작전지휘권을 미국에 넘겨준 채 탄핵과 대선 정국을 맞고 있다. 그리고 3.1절에까지 성조기를 들고 탄핵 반대를 구걸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