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선의 문화정책 돌아보기(15. 마지막회) - 문화영역도 정치가 우선 한다
너무 쉬운 문화정책
문화정책은 사실 너무 단순하게 읽힌다. 일반적으로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 분야의 정책으로 읽혀진다. 그리고 그렇게 강요돼왔다. 일제 때부터 문화정책은 단순히 예술 영역의 장르를 다루는 정책으로 칭해졌다. 그것이 독재시절의 검열을 통한 통제 정책이던, 국민들을 우민화하기 위한 3S 정책이든, 진흥정책이든 모두가 문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정작 문화정책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만 문화정책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
특히 문화의 세기를 맞으며 문화정책은 국가의 핵심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지방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대통령선거는 문화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문화가 국민에 대한 영향력이 크기에 더욱 그렇다. 조기 대선을 예상하고 있는 이 시기 역시 문화정책에 대한 논의는 조용하지만 넓게 진행 중이다. 박근혜의 블랙리스트가 탄핵의 사유가 되면서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인지 문화정책이 너무 쉽게 불리고 있다. 묻고 싶다. 대선을 나서는 여러 후보들에게 문화정책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박정희의 문화정책은 문화를 통해 국민을 우민화하고, 자신을 우상화하고, 예술을 검열하는 정책이었다. 전두환, 노태우의 문화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김영삼의 문화정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던 시기였다. 김대중의 문화정책은 처음이자 마지막 진흥정책의 시기였으며, 노무현은 처음과 달리 용두사미가 된, 진흥정책의 포기였다. 이명박의 통제형 문화정책 부활기를 거쳐 박근혜의 시대는 완벽한 박정희 문화정책의 부활을 시도했다.
말로는 전부 문화정책의 진흥과 국민들의 여가,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형태의 문화정책을 폈다. 김대중 대통령을 제외하고 사실 문화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가진 대통령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단지 피상적으로, 쉽게 말했을 뿐이다. 너무 쉽게 문화정책을 말한다. 특히 정치인들이 그렇다.
정치와 문화정책
문화정책은 예술과 문화콘텐츠산업, 체육, 관광, 문화재 정책을 의미한다. 적어도 한국의 정부 부서 업무 분장에 따르면 그렇다. 분야도 광범위하다. 거기에 문화정책은 다른 분야의 정책과 달리 문화의 3주체, 즉 생산자인 예술가와 창작자, 제공자인 정부나 기업,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용자인 국민에 따라 정책은 세부적으로 나눠지고 설계된다, 광범위한 분야에 더하여 차별화된 주요 3주체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문화정책을 쉽게 이야기 하는지 묻고 싶다. 대선 후보를 비롯한 정치인이나. 문화 분야 상임위원의 소속 국회의원이나 그 보좌진에게 문화정책을 아느냐고 묻고 싶다.
문화정책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문화진흥정책을 일반적으로 의미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치인이 한다. 관료들이 정책의 실무적 운용을 한다면,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국가 문화정책의 키를 쥐고 있다. 그러나 과거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에게 실망한다. 예술가 출신 국회의원들에게도 실망한다. 정치인 중에 역대 문화정책을 이해한 이는 단지 한사람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최소한 민주당은 이러지 않아야 하는데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차기 정권에 가장 가까운 문재인 전 대표는 최근 ‘더러운 잠’ 전시 사건에 대해 정치는 예술과 다르다며 가이드를 제시했고, 당은 전시를 소개한 표창원 의원에게 당권정지 6개월의 징계를 공식화 했다. 야당에 의한 사회적 검열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여론을 의식해서 문화정책의 근본을 심하게 훼손했다. 이것이야말로 문화정책을 정치인이 얼마나 쉽게 보고 있는가의 반증이다. 현재 국회의원으로 있는 예술가도, 문재인 전 대표 진영에 참여한 예술가도 가만히 있다.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필자 역시 국회에서 문화정책을 만났다.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을 하면서 문화정책을 담당하게 됐다. 공학을 전공했고, 예술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었을 뿐이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예술가, 창작자들을 찾아가 현장에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교수들에게 미안하지만, 전공을 한 학자들의 도움은 단지 학문에 불과했다. 현장의 목소리가 실제 정책을 낳았다. 입법이나 제도화, 정부를 비판할 때 현장과 같이 했다. 1997년 대통령선거 문화공약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30대 초반의 문화정책 2년차’였던 필자가 정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장의 참여 때문이었다.
문화정책은 텍스트가 아니다. 예술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3주체에 대한 만남이 정책을 다룰 수 있는 시각을 만든다. 문화정책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근본 원칙을 가진 체.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 답은 없다. 계속 노력하는 것 밖에. 정치인들과 문화 현장이 지속적인 공동 작업을 통해, 문화정책의 제자리를 찾기를 희망한다.
문화정책의 가치
문화의 사전적 의미는 삶의 양태를 의미한다. 문화정책은 삶에 대한 정책이다. 신기하게도 문화정책의 근본적 이유는 여기서 찾을 있다고 생각한다. 삶에 대한 정책이 문화정책이다. 정부는 정부 운영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국정철학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부처 어디도 국정철학을 다루는 부처가 없다. 대통령의 생각이 국정철학일 뿐이다. 미친 박근혜의 4년이 그래서 미친 것이다. 장사꾼 이명박의 5년이 사기인 이유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사회적 검열정책이 문화정책이 될 것인지 묻고 싶다. 정부는 국정철학을 삶의 가치에서 찾아야 한다.
삶의 가치를 탐구하는 분야가 바로 예술이다. 예술가는 삶을 분해하고 조립을 반복하면서 예술작품을 낳는다. 삶의 가치를 위한 창작이 그들의 업이다. 결국 ‘국민 개개인의 삶의 철학으로부터 국가의 삶의 철학’에까지 국정철학은 예술에서 나온다. 문화정책이 바로 국정철학의 정책이다. 문화국가가 되길 희망하지만,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정치인들에게서 문화 역시 절망이다.
연재를 마치며
이 글로 연재를 마친다. 다시 다른 공간에서 만나기를 희망하며, 문화정책에 대한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환기시킬 수 있다면 좋겠다. 아주 쉽게 문화정책이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분야의 정책이다. 장난삼아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듯이 문화정책을 쉽게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화 애호가라던 조윤선 전 문화부 장관에게 문화는 단지 자신을 치장하는 포장에 불과했다. 정치인들은 좀 더 겸손해지길 희망한다. 예술가와 창작자는 한국에서 가장 큰 피해자 집단의 하나이다.
검열의 트라우마, 탄압의 트라우마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얼마나 많은 터무니없는 검열과 탄압이 존재했는지, 국가보안법으로 간첩으로 엮긴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권투만화가 폭력이라고 경기장면이 잘리고, 고아 남매가 단칸방에 잔다고 음란하다 자르는 것이 만화 검열의 이유였다. ‘그대 오소서 이 밤길로’라는 가사가 음란으로 잘리는 시절을 겪었고 그 트라우마는 아직 그대로다. 제주 4.3을 노래했다고 시인은 간첩이 됐다, 세월호 진상을 밝히라고 했다고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현재다.
문화정책에서 검열을 지우고, 관료주의를 지우고, 불공정을 지우는 정부를 기대한다. 문화로 국가 경영의 철학을 고민하는 정부를 희망한다. 처음 문화정책의 길로 이끌어 주었던 최희준의원에게 감사를 전하며, 4년의 의정활동동안 이뤄놓은 많은 정책의 성과 중에서 영화 검열의 폐지에 대해 새삼 의미를 되새겨 보며 연재를 마친다. 문화영역도 정치가 우선한다.
김종선 국회문화관광위원회 위원 보좌관(1996~2004)/ 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문화정책담당 행정관(2003) / 문화관광부 문화행정 혁신위원회 간사(이창동장관 정책보좌역) / 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