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진의 LP로 듣는 한국현대사(22) 명혜원 : 청량리 블루스(1985)

▲ 사진출처: KBS 유튜브 화면캡쳐

일명 ‘청량리588’이라는 사창가는 과거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 주변에 성매매 업소들이 밀집해 있어 그렇게 불리게 됐다. 사창가와 역전은 항상 같이 따라다닌다. 서울의 대표적인 사창가였던 영등포, 청량리, 신촌, 회현동 등은 서울의 기차역이 있던 장소다. 지방도 이런 사정은 비슷했다.

그런데 서울지역 사창가의 일부는 기차역뿐 아니라 대학가와도 가깝다는 점이 특이하다. 고려대가 있는 종암도 주변의 미아리, 연세대와 이화여대가 있는 신촌, 서울대가 있는 신림동이 그렇다. 청량리588은 대학생들이 강촌, 대성리 등 당시 유명했던 MT 장소를 찾아 모여 출발하던 청량리역 바로 옆에 있었다. 

그래서 ‘청량리’란 지명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사창가를 대표하는 닉네임으로 불리워지지만 청량리라는 지명에 ‘시계탑’이라는 지형지물을 붙이면 사창가와는 아주 다른 젊은이들의 MT 출발장소로 바뀌게 된다. 어쩌면 아현동 웨딩거리와 신촌 사창가에 밀려 지금은 철거된 아현동 고가 밑에 자리 잡았던 아현동 방석집들이 한 공간에 나열되어 있는 요지경 같은 풍경의 원조라고 볼 수 있다.

매춘의 역사가 기원전부터 있었다는 일부 학설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매춘은 인간이라는 동물이 생겨나고 인간에게 계급적인 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일 게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책에 기록된 것만 봐도 삼국시대부터 성행했다. 매매춘이 사람의 몸을 사고판다는 점에서 노동을 사고파는 자본주의적 성격과 매우 흡사하다. 약탈적 자본주의의 모습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회적 악습 중 하나이다.

이런 악습에 법적으로 퇴출을 가해왔지만 그 법은 있으나마나한 법이었고, 박정희 정권 당시에는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 행위를 정부가 앞장서서 장려하기까지 했기에 법은 언제나 현실에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는 범죄로 취급받으면서도 뒤에서는 언제나 당당할 수밖에 없었던 매매춘에 대한 실질적 법적 구속은 2004년에 이르러서야 ‘성매매방지법’이 생기면서 가능해졌다. 실질적이라고 해도 아직까지 성매매에 대한 확실한 근절책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청량리로 대표되는 사창가는 많이 없어졌지만 키스방이니 유리방이니 하는 신종 유흥업소가 주택가로 밀려들어오고 돈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고급 룸살롱 등에서 언제든지 법망을 피해 여성의 몸을 사고파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 가끔씩 일부 사회지도층의 이름이 거론되는 연예인 성상납 기사 등이 나오면 매매춘에 대한 규제는 일반인들에게 들이대는 규정이지 돈 있는 사람이나 사회지도층은 피해져 있는 약육강식적 자본주의 속성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괴물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청량리라는 두 가지 얼굴이 공존하는 지역적 이름에 매력적인 보컬이 더해져 오히려 청량리 사창가의 끈적끈적한 마력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은 명혜원의 ‘청량리 블루스’는 요지경 같은 세상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색 있는 노래였다. 가사에 나오는 ‘황혼의 커튼’은 붉은 등이 켜진 홍등가에 내려진 커튼을 표현하면서 자본주의적 쾌락의 끝이 ‘화병 속에 시든 국화’의 쓸쓸한 고독으로 피어오르는 느낌을 너무도 적절히 표현했다.

이제는 사라진 청량리588의 아픔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