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계단 오르기]첫 번째 계단 - 시인 조연희, 詩의 사생활 19
노시인은 늘 베레모를 쓰고 강의실에 들어왔다. 반백의 머리카락이 베레모 밑에서 구불거렸으며, 단정한 양복에 유난히 반짝이는 구두코는 1970년대의 모더니즘 시인을 연상케 했다.
“여러분~시가 뭐여요? 시는 여러분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거여요.” 노시인의 목소리는 언제나 낭랑하고 촉촉했다. 비 오는 날이면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비가 오서요…. 누구 한 번 일어나 시 한 편 낭송해 보서요.” 라고 말할 땐 이미 눈시울까지 젖어 있었다. 나는 노시인의 그 촉촉하고 맑은 눈과 마주칠 때마다 당혹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시란 노시인의 잘 닦인 구두코보다는 삐뚤게 닳은 구두 뒤축 같은 것 일거라고 생각했다.
소설창작 수업
그러나 소설창작 교수님은 조금 달랐다. 풍자소설을 주로 쓰는 현직 소설가였는데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었다. 이마에 패인 세 줄의 굵은 주름이 호랑이의 미간을 연상케 했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꼭 화난 사람 같았다. 하지만 웃을 땐 그 주름들이 꿈틀거리면서 이내 마음씨 좋은 슈퍼 아저씨처럼 변했다.
그날은 내 소설을 강평하는 날이었다. 교수님은 지난 주 나눠준 프린트를 들고 강의실로 들어왔다. 내 소설을 교탁 위에 올려놓더니 다짜고짜 한마디씩 해보라고 했다. 강의실엔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침 넘어가는 소리까지 다 들릴 지경이었다.
이웅평 대위 등 북한 인사들이 남한으로 넘어오면서 몇 번 돌발적인 사이렌이 울려댄 적이 있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라는 긴급대피방송을 들은 기억을 떠올려 난 소설을 완성했다. 실제상황임을 알리는 공습경보가 울리자 가족들이 식물인간인 아버지를 두고 피난을 떠난다는 줄거리였다. 물론 그게 사실은 민방위훈련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꾼 ‘긴 꿈’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제목도 ‘실제상황입니다’였다.
교수님은 빨갛게 줄이 죽죽 그어진 내 소설을 들어 보이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마에 세줄 굵은 주름이 사납게 일그러졌다가 펴졌다.
“문학이 아무리 ‘개성’이라고 해도 그 개성은 보편성을 획득한 개성이어야 한다는 거지.”
그러면서 내 소설은 혼자만의 비문에 갇혀 있다는 의미에서 ‘자폐증’적이라고 했다. 나는 자폐증이라는 말에 가슴을 찔린 기분이었다. 내가 표현의 욕심을 부릴 때마다 문장은 실타래처럼 꼬여갔다. 지나친 수식어의 남용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로부터 점점 멀어져갔고 난 비문과 오역 사이에서 그만 길을 잃었던 것이다. 교수님은 문장이 꼬인 지점을 하나하나 짚어 주었다. ‘사내는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 라는 문장도 ‘건강해지기 위해서’보다는 ‘건강해지려고’ 가 더 간결한 표현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표현은 번역투의 문장이므로 될 수 있으면 사용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가지가 많아 꽃이 지나치게 많이 피면, 열매가 조금밖에 열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지….”
그러면서 대부분 문장이 길어지는 것은 관념 때문이라며, 묘사하라고, 겨울나무처럼 간결하게 쓰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교수님을 정말 화나게 한 것은 소설의 줄거리가 ‘꿈’ 이라는 사실이었다. 조신의 꿈도 아니고 구운몽도 아니고 이제 더 이상 ‘꿈’ 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작가가 비겁한 거라고, 자기의 소재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소설을 불태우다
나는 마치 내가 커다란 잘못을 저질러서 들킨 사람 같은 심정이었다. 교수님 앞에서 울음을 터트릴 뻔한 나는 수업이 파하자마자 혼자 빠져나왔다. 아마도 술집으로 몰려가 수업 시간에 못다 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것이었다. 술이 몇 잔 돌고 나면 교수님은 탁자 위에 손가락 4개를 차례로 튕기며 어깨를 들썩일 것이다. 그리고 턱을 쑥 내밀고 공옥진의 병신춤을 출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술자리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라이터를 들고 학교 뒷산에 올랐다. 내 소설에 불을 붙였다. ㄱ이나ㄴ, 자음과 모음들이 화르륵 검게 불타올랐고 내가 남용했던 형용사나 부사들이 이내 하얀 재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제야 난 내 목에 걸렸던 격음을 쏟아내듯 꺼억꺼억 목 놓아 울 수 있었다.
전당포
멀리서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았던 것일까. Y와 M이 다가왔다. 내가 걱정이 돼서 일부러 술자리에 가지 않은 것 같았다. Y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약국에 가서 수면제를 달라고 했는데 약사가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수면제를 주는 거야.”
소설을 쓴다면 얼굴에 고뇌의 그림자 한 자락쯤은 드리우고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적어도 약사가 수면제 파는 것을 거부하거나 경고의 말이라도 건넸어야 하는데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것도 가는 약국마다 주저 없이 수면제를 주었다는 사실에 Y는 절망했다는 것이다. 물론 처방전 없어도 얼마든지 약을 구입할 수 있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지만 말이다. “난 아직도 멀었나봐.” 그런 그녀를 보며 우리는 조금 웃었다.
“사실 나도 내 시가 불탄 적 있어….”
웃으면 하얀 치아가 8개 모두 반짝이던 M이 이번엔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전 작가실에서 동기끼리 시 합평을 했는데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형이란 작자가 시를 훑어보더니 이걸 시라고 썼냐며 라이터로 시가 쓰인 원고지에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시만 쓰려고 하면 명치가 아프고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 답답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Y와 M은 오늘 같은 날은 해삼이나 멍게 등 싱싱한 해산물에 소주를 마셔야 한다고 내 팔을 끌었다. 몇 번의 절망과 몇 번의 희망이 직조돼야 과연 우린 글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 지금은 마치 형용사와 부사가 남발된 문장의 미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낡은 목조건물 앞에 다다랐다.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몹시 좁고 가파른 계단이었다. 물론 엘리베이터 같은 것은 없었다. 덜걱마루처럼 삐걱거리는 목조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다 숨이 턱에 걸릴 때쯤 낡고 허름한 전당포에 다다랐다. 전당포의 문은 항시 열려 있었다. 젖혀진 철문 뒤로 감옥을 연상케 하는 쇠창살이 보였고 그 너머로 검은테 안경을 쓴 노인이 신문을 보거나 하품을 하거나, 김을 후후 불며 라면을 먹고는 했다. 이곳에 대학 입학 선물로 받은 내 워크맨이, Y의 시계가 저당 잡혀 있었다. 저 금고 속엔 우리의 추억이, 우리의 체온이, 아니 우리의 유예된 청춘이 보관되어 있을 것이었다. M은 쪽창 앞에 14K 반지를 빼놓고 기다렸다.
“얼마가 필요하지?"
노인은 확대경으로 이곳저곳을 살피고 저울에 금의 무게를 재본 후 전당표와 함께 몇 푼의 돈을 건넸다. 저당기간은 6개월이었다. 전당표와 돈을 건네받으면서 문득 글을 쓴다는 게 전당포에 드나드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맡긴 귀중품들은 조금씩 주인의 체온을 품고 있거나 주인의 흠집이나 생채기를 간직하고 있다. 차마 팔아버릴 수는 없는 것들이어서 다시 찾으러 오겠다는 생각으로 잠시 맡긴 것들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런 체온이나 생채기를 잠시 보관해주는 일은 아닐까. 고단한 사람들에게 저 유예시간은 남은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될 것이기에 말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천재 시인을 꿈꾸거나 천기누설을 탐하는 소설가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작은 생채기를 소중하게 다루는 전당포 주인 같은 작가 또는 시인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1층, 2층 사다리를 오르면
옹이가 빠진 자리에 전당포 하나 있다.
이곳에 들른 이들은 누구나 귀중품을 꺼내놓는다.
청솔모는 이리저리 추억의 더께를 가늠하고 상처의 무게를 달아본다.
다람쥐가 가져온 도토리는 잡티가 묻어 있거나 기스가 났지만
생채기가 갖고 온 차마 버릴 수 없는 꿈들을
슬며시 그루터기 쪽으로 밀어 넣는다.
애벌레는 고온다습한 주름을 맡긴다.
사슬벌레는 부러진 더듬이를 보관하고 유예된 시간을 얻는다.
부름켜 가득 동면에 들 수 없는 시간들
나뭇잎이 점점 붉어지는 손바닥을 내밀자
청솔모는 확대경으로 나뭇잎의 일생을 꼼꼼히 꿰뚫어본다.
숭숭 뚫린 벌레구멍으로 기억은 점점 가물가물하지만
나무가 나뭇잎을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은
니뭇잎 속에 스며든 체온 때문이다.
이곳에 제 온기를 놓고 간 이들은
건망증에 걸린 전당표가 그들의 미래를 버리고 도망가도
때때로 돌돌 말린 모습으로 여기저기 굴러다녀도
쉽게 이곳을 잊을 수 없는 것은
떨켜마다 가득한 남루한 기억 때문이다.
겨울눈으로 피어나는 저 전당표들.
-<졸시 ‘청솔모 전당포’ 전문>
우리는 그날 전당포에서 교환한 돈으로 오랜만에 해삼이랑 멍게, 소라 등을 먹었다. 지나치게 단문만을 선호하는 교수님을 성토했고 건방지게 시를 불살라 버린 오만방자한 그 형을 단물이 우러나도록 씹고 또 씹었다. 사실 M은 오랫동안 자신의 시가 불살라진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했다.
우리는 돈이 다 떨어질 즈음 포장마차를 나왔다. 그러면서 우리의 귀중품들을 맡겨 놓은 전당포쪽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내 워크맨을, Y의 시계를, M의 14K 반지를 과연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전당포 창문으로 상처를 꿰매는 체온 같은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조연희 시인은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시산맥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 영상기획 및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주)빅시스템즈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