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선의 문화정책 돌아보기 14 - 검열은 금지하되, 작품의 평가는 보장되어야

패러디 ‘더러운 잠’ 파문

국회의원회관 로비에서 열린 '곧, BYE 전'에  전시된 '더러운 잠' [이미지 : 트위터]

이구영 화가의 ‘더러운 잠’은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차용해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나체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원작 속 주인공의 얼굴에 합성한 패러디 그림이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관으로 지난 20일부터 국회의원회관 로비에서 열린 ‘곧 바이전’(곧, BYE 展)에 전시된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은 ‘패러디의 정당성, 반 여성, 검열과 표현의 자유’ 등 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문재인 전 대표는 24일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누드그림이 국회에 전시된 것은 대단히 민망하고 유감스런 일”이라며 “예술에서는 비판과 풍자가 중요하지만 정치에서는 품격과 절제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24일 ‘더러운 잠’ 전시회를 주최한 표창원 의원을 당 윤리심판원에 회부하기로 했고, 국회 사무처는 해당 작품 전시를 중단하기로 했다.

민주당의 공식입장, 안희정, 국민의당 여성의원, 여성단체, 박사모 등 친 박근혜 단체들까지 다양한 입장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광화문광장에서 두 달 넘게 블랙리스트 예술행동을 하고 있는 예술인을 비롯해 많은 예술인들이 다양한 의견을 자신의 SNS에 밝히고 있다.

블랙리스트와 ‘더러운 잠’ 전시 중단은 다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검열’의 의미를 명확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검열이 의미하는 것은 기본적인 의미로 ‘국가기관’이 ‘사전’에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검열은 사전 제한의 단위 문제에 대해 논쟁을 예고한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명확하게 ‘정부가 반정부적인 예술가를 사전에 명단을 작성해 지원 사업에서 배제’시킨 명확한 국가 재정을 이용한 지원 제외인 새로운 형식의 검열제도다. 이에 비해 ‘더러운 잠’ 파문은 민주당 또는 여론에 의해 전시가 사후에 중단된 사건이다. 따라서 검열이냐 아니냐는 논쟁에서 애초 제외돼야 한다. 전시된 작품에 대해 관객의 입장에서 다양한 의견은 개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러운 잠’의 파문은 가장 우선적으로 작가와 기획자의 책임이다. 전시를 주선한 표창원의원은 예술계의 입장에서는 선의의 도움을 준 이에 불과하다. 물론 사전에 그림을 보고 국회의원 입장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품을 제외했고 이것이 작가나 기획자의 반발로 문제가 됐다면, 이는 검열의 논쟁을 낳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 없이 전시는 시작됐고, 전시로 인한 파문의 책임은 전적으로 작가와 기획자의 몫이 됐다.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은 당연히 뒤따르는 것이고, 논란은 오히려 사회의 성숙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작품에 대한 논란이 원칙 없이 바람직하지 않는 방면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표창원 윤리심판원 회부는 검열의 전조다

검열의 가장 큰 폐해는 ‘예술가의 자기검열’이다. 표현의 자유, 창의로운 사고를 사전에 제한하는 거대한 사회적 병폐를 잉태하는 것이다. 현재 영화의 검열 폐지는 ‘등급분류제도의 도입’과 2001년 ‘제한상영가 제도의 도입’을 통해 법적으로 폐지됐지만, ‘제한상영관의 부재’는 표현의 제약으로 작용하며 자기검열이 지속되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든, 안희정 지사든, 여성의원들이든, 여성단체든, 친박 단체든, 비판적인 입장을 표현하는 것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예술가들이 일반적으로 표현의 자유 보장의 입장에서 의견을 내는 것도 상관없다.

문제는 민주당이라는 공당이 공식적으로 표창원 의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회를 구성하는 주요한 주체이고, 표창원 의원은 당원이기에 앞서 입법기관의 하나다. 이것은 명백하게 ‘자기 검열의 관례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 이제 국회는 모든 예술 활동을 사전에 정치적 잣대로 제약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회 여러분야로 확산될 우려를 갖게 한다.

예술가들은 이제 국회든, 어디든 작가로서 책임지고 작품을 전시하거나 상영하는 등 자유로운 활동을 스스로 제약하게 될 것이다. ‘예술과 정치는 다르다’는 문재인 대표의 말은 정치인과 국민은 다르다는 말로 들린다. 문재인 대표는 개인의 의견과 별도로 공식적인 단죄인 윤리심판원 회부는 반대해야 옳다. 표창원 의원의 윤리심판원 회부는 검열의 전조다.

이구용 화백이 패러디한 원작 에드아르 마네 '올랑피아'

영화 검열 폐지, 단 한 번의 성공

이번 ‘더러운 잠’ 논란은 지난 1999년 영화진흥법, 공연법 등의 개정을 통해서 공식 폐지된 ‘영화의 사전 검열’ 과정을 되짚어 보게 한다. 1996년 헌법재판소는 영화 사전 검열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영화 ‘오, 꿈의 나라, ’닫힌 교문을 열며‘에서 제소한 소송이 위헌으로 결정됐다. 그리고 1999년 입법을 통해 영상물등급분류제도가 도입됐으며 검열은 폐지됐다. 물론 2001년 등급분류제도 역시 위헌이 결정됐고 ’제한상영가‘제도의 도입으로 법적으로는 위헌의 소지가 제거됐다. 하지만 ’제한상영관‘이 부재하는 현실로 인해 간접적인 검열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98년 영화법 개정을 통해 검열을 폐지하고자 하는 입법 노력은 최희준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의원 주도로 시작됐다. 사실 1996년 헌재의 판결이후에도 실제 입법으로 검열이 폐지될 것을 기대하는 이는 없었다. 영화계를 비롯한 예술계의 노력이 있었지만 국회에서는 사실 부담스러운 주제였다. 당시 최희준 의원은 언론으로부터 포르노를 허용하자는 ’포르노 의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8년 입법에 노력할 당시, 국회 구조는 새정치국민회의와 보수적인 자민련 연합이 겨우 과반을 넘는 수준이었다. 보수적인 자민련 의원 4명이 상임위원에 함께 했고, 이들을 먼저 설득해야 했다. 만약 한명이라도 반대했다면 상임위원조차 통과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영화인협회라는 한국영화계의 가장 큰 단체가 공개적으로 검열 폐지를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한 싸움을 헤쳐서 상임위원회를 10대 9로 통과했고, 소위 ’개혁 날치기‘라는 1999년 1월 7일 본회의에서 입법이 됐다.

그때 입법을 하지 않았더라면 현재까지 검열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해 3월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합은 깨졌고, 여소야대 국회는 2004년까지 이어졌다. 여대야소가 된 2004년 17대 국회 역시 검열폐지를 할 수 없었을 거라고 단언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해내지 못한 것을 보면, 당연이 이러한 결론에 도달 할 수밖에 없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의 노무현 정부는 문화정책 전반의 후퇴를 가져왔었고, 이 구조에서 검열의 폐지 역시 불가능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2008년부터의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는 당연히 검열폐지가 국회에서 입법이 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검열을 지켜냈을 것이다. 1999년의 입법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당연히 국가의 검열이 가능한 국가로 존재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오싹한 전근대 국가가 지금의 대한민국일 것이다.

최희준 의원의 노력을 특별히 공치사 하려는 것은 아니다. 국회 역사상, 의원 개인의 노력으로 국가의 핵심 정책이 변화한 경우는 이 사안밖에 없다. 그만큼 국회는 국민들과 같이 있지 않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영화 검열의 폐지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성공으로 이끈 국회 입법 역사의 중대한 사건이었다.

영화 검열폐지의 사회적 의미

영화 검열 폐지는 제도적 친일 청산의 큰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검열제도는 1907년 총감부가 발표한 '보안법'을 통해 ‘공공장소에서 이뤄지는 행위는 관청에 의해 규제받을 수 있다’는 조항에서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는 검열이 더욱 강화돼 1920년에는 활동사진반이, 1922년에는 '흥행 및 흥행장 취체(단속) 규칙'이 생겼다. 해방이후 역시 검열은 계속됐고, 다만 1960년 4.19 이후 영화윤리전국위원회가 설립돼 영화 심의 업무를 최초로 민간에서 넘겨받게 된다. 이 시기에 사회의식을 담고 있거나 과감한 성적묘사를 담은 작품들이 삭제 없이 상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곧 박정희 군사정권 초기인 1962년 헌법(제 5차 개정헌법)은 영화에 대한 검열을 명시적으로 허용했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다만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를 위하여는 영화나 연예에 대한 검열을 허가할 수 있다.— 1962.12.26 제 6호 헌법 제18조 제2항”이 그것이다. 결국 일제 때부터 이어온 검열제도는 계속됐다.

1999년 영화 검열폐지는 일제로부터 시작된 거대한 사회악의 제거였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 반역의 역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광장을 가득채운 촛불 시민들은 친일 반역의 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1999년 1월 7일 영화 검열 폐지로 표현의 자유를 얻은 대한민국은 제도적인 ‘친일 청산의 성과’를 가져 왔고, 이것은 입법을 통한 유일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국회가 정치개혁의 대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러운 잠’ 사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는 것은 옳지만, 공식적인 단죄 행위를 통해 ‘자기검열’의 확산에 기여하는 것은 새로운 검열의 전조이자, 더러운 역사로 회귀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와 전통 야당, 제1야당에 대해 유감이다. 수권가능성이 높은 정당이기에, 그리고 대권을 거머쥘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후보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미지 : 표창원 의원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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