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대표 이진영 씨 이적표현물 소지로 결국 구속

▲ 노동자의 책 국가보안법 탄압저지 공동행동이 5일 오전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1세기에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멀쩡히 시중에서 판매되는 책을 소지 및 배포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5일 자정 서울남부지법 한정훈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노동자의 책’ 대표 이진영 씨에 대해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영장을 발부했다.

이씨가 운영하는 ‘노동자의 책’은 주로 고전 사회과학서적을 다루는 전자도서관이다. 이씨는 3천여 권의 장서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중에는 맑시즘이나 변증법, 사회주의와 관련된 서적도 포함돼 있다. 검찰은 이씨가 소유하고 있는 장서 중 일부가 이적표현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이 이적표현물이라고 영장청구서에 기재한 서적들 중에는 ‘공산당 선언’처럼 대법원 판례를 통해 이적표현물이 아닌 것으로 포함된 서적도 있었다. 검찰은 이씨의 변호인이 문제제기를 하자 “이적표현물이 아닌 것으로 법원이 결정한 서적이 무엇인지 변호인이 알려주면 증거목록에서 제외 하겠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했다. 애초에 자신들이 증거목록을 작성할 때 당연히 확인했어야 하는 사항을 이씨의 변호인에게 떠넘긴 셈이다.

그리고 검찰은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가 저술한 역사서 ‘러시아 혁명’도 증거목록에 포함했다. 검찰은 그 이유를 “소위 운동권 학생들에게는 러시아 혁명과 유사한 방식의 혁명이 필요한 것으로 믿게 할 소지가 짙다”라고 적시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은 전국 주요 서점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책이다. 검찰이 이러한 주장을 하고 싶으면 먼저 이 책에 대해 판매금지 조치부터 취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씨는 누구나 공개적으로 ‘노동자의 책’ 사이트를 운영해 왔을 뿐만 아니라 확실한 생업이 있고 부인과 자녀가 있는 가장이다. 그런 이씨에 대해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법원이 구속영장 신청을 받아들인 점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씨는 열흘간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 머물며 낮에는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고 이후에는 남부구치소로 이송될 예정이다. 노동자의 책 국가보안법 탄압 저지 공동행동은 이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5일 오전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공동행동은 “(이씨에 대한) 급작스런 검찰의 구속영장 신청과 이에 맞장구쳐준 법원의 결정은 촛불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발악일 뿐이다”라며 “촛불과 노동자 투쟁, 진보사상을 분리해 이미 그 역사적 수명을 다한 공안기관과 박근혜 적폐세력에 심폐소생술을 행하는 꼼수일 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검찰은 시중에서 버젓이 판매되는 서적도 이적표현물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출처: 이진영씨 변호인 이광철 변호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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