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일기 '김천사드, 택도 없다' 11

사드저지 및 박근혜 퇴진 10차 범국민 촛불집회 12. 31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기 위해 서울로 가는 길. 휴게소에 내려 차 사이를 걸어 나가는데 ‘박근혜 퇴진, 사드 반대’ 등등을 붙여 놓은 승용차가 있었다. 태극기를 목에 두른 한 할아버지가 “김정은이를 이롭게 하는 놈들, 이북에나 가라!”고 하기에 “김정은이는 박근혜가 도리어 이롭게 하는 게 아닌가요?”하고 받아 쳤다.

그랬더니 “이런 거는 돌로 박살을 내야 해!”하기에 “그럼 경찰한테 알리죠” 했더니 “경찰도 이런 놈들 조팰거야”해서 “경찰이 그런 일을 가만 놔둘까요?”했더니 옆에서 그만 하란다. 무슨 봉변을 당할 지도 모르고 말도 안 통하는 노인과 뭔 얘기냐고 무시하란다.

이북 가란 말, 빨갱이·종북 세력이란 말 외엔 별다른 논리가 없는 그들에게 좀 화가 난 탓에 입씨름을 한 것 같다. 예전에 어느 선생님이 한 말이 생각났다.

“선생님, 북한에 가면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오히려 살아남지 않나요? 그들은 늘 그렇게 권력에 순응했으니까요. 오히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체제를 비판하기 때문에 살아남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전적으로 동감이다. 박사모는 오히려 미국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심지어 북한이든 그렇게 체제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서울에 도착하여 롯데 백화점 쪽으로 걸어가는데 덕수궁 앞에 박사모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다수가 노인이고 아줌마들도 보였다. 롯데 백화점 앞에 가니 먼저 와있던 성주 사람들을 만났다. 다들 반갑게 인사했다.

“김천이 와서 다행이다. 외롭지 않아요”라고 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행진해서 롯데 호텔 앞에 가서 시위를 하고 다시 롯데 백화점으로 와서 집회 준비를 했다. 백화점이 굉장히 크고 화려했다. 안에 들어가니 사람들도 많이 돌아다녔다. 호텔에도 백화점에도 중국인이 많았다. 다들 우리 시위 모습이 궁금한지 사진 찍고 개중에는 묻는 이도 있었다. 박희주 공동위원장의 사드깃발에 새긴 중국어 아이디어가 좋았단 생각이 들었다. 박희주 공동위원장은 그 큰 깃발을 열심히 흔들어대고 있었다.

롯데 백화점 측에선 입구에 줄을 치고 문도 일부는 내렸다. 그 앞엔 핵발전소 반대 서명을 받는 단체, 유엔 난민 후원 단체, 한일군사정보 반대 기습시위로 연행됐다 벌금 폭탄 맞은 대학생들이 후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드디어 집회가 시작됐다. 롯데를 꾸짖기 위해 이 자리에서 사전집회를 한다고 성주투쟁위 사회자가 설명을 하고 다들 앉으라 했다. 그러는 동안 원불교 교무님들이 복장을 갖추고 오셨다. 자리가 없어 앞이나 뒤에 서서 집회에 임해 조금 미안했다. 사드저지 전국행동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도 단체 깃발을 들고 왔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기자들도 많이 왔고, 물론 정보과 형사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박근혜퇴진 사드배치 저지 긴급행동 1부 사회자는 원불교 성주 성지수호비상대책위 운영위원 이태옥님이다. ‘근혜는 감옥으로 사드는 미국으로’라고 쓰인 커다란 깃발이 펄럭이고 집회 동안 그 구호를 간간이 외쳤다.

“보내야 할 것이 있어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무엇을 먼저 보낼까?”

“사드배치 철회하라!”

평통사에서 발언했다.

롯데는 부지를 국방부에 제공하려 하고 있다. 사드는 북핵을 못 막고 우리의 평화와 안보만 위협하는 무기이다. 미국과 일본만 위하고 중국을 견제하려고 우리나라를 이용하여 그 전초기지로 내몰 뿐이다.

신동빈 회장이 불구속되고 기소가 기각된 다음날 사드배치가 결정되었다. 사드배치와 신동빈이 지은 죄, 면세점과 맞바꾼 것이 아닌가 매우 의심된다. 롯데가 국방부와 부지 계약을 성사시킨다면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롯데백화점을 이용하는 50%가 중국인이다. 부지로 결정하면 상상할 수 없는 경제적 타격을 입을 것이다. 우리 국민을 전쟁으로 내모는 부지 제공은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롯데는 국민의 편에 서야 한다. 그래서 요구한다.

“롯데는 국민의 요구받아 사드배치 계약 중단하라!”

“롯데가 윗사람 눈치만 보고 정부에 이익 되는 것만 하려는 버르장머리를 국민의 힘으로 고쳐야겠다”라는 이태옥님은 뒤돌아 옷 등 부분에 ‘노사드(NO THAAD)’라 적힌 것을 보여줬다. 원불교는 한겨울을 거리에서 나기로 결의하고 ‘노사드’잠바를 배부했다고 한다.

사드저지 공동행동 노동자연대 김영욱님.

롯데 신동빈 회장은 청문회로 끝낼 수 없다. 감옥문을 열어 최순실 옆방에 넣어야 한다. 박근혜의 탄핵 된 이유는 명백히 사드와 같은 국민의 바람을 무시하고 국민의 안전에 위협되는 일을 밀어 부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여전히 사드를 밀어 부치겠다 큰 소리 친다. 지가 무슨 대통령인 양 트럼프 측과 짝짜꿍이 되는데 이런 자를 가만 두어서 되겠는가? 촛불의 힘을 통해 자신이 무엇인지 정신 차리도록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당도 당론 ‘절대 불가’를 채택해야 한다. 성주, 김천 ‘이럴 줄 몰랐던 일’을 여러분이 하고 있다. 트럼프도 미국도 어찌할 수 없는 촛불이다. 그들은 사드배치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는데 이 걱정을 현실로 만들어줘야겠다. 성주, 김천 촛불과 대도시 촛불이 합해 촛불이 횃불이 되어 사드배치하기를 태워버리자.

성주 예그린 노래패가 나왔다.

“내년 트럼프 사드 관련 예산이 4천억이라 한다. 그러면 운영비 일체를 한국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봉인가? 국민들 생존권 빼앗고 순실이 배만 채우고 경제 정책은 말이 안 되는 이게 나라인가? 하루빨리 사드가 철회되기 바란다”라며 ‘그네는 아니다’를 부르는데 우리 율동맘들이 나와 같이 춤을 췄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다들 사진 찍느라 정신없다. 대단한 우리 율동맘들!

이어서 ‘엎어버려’를 부르는데 성주 투쟁위 이재동 농민회장과 또 한 여성이 같이 춤을 추는데 노래도 잘하지만 춤도 대단하다. 이재동님은 대단히 흥이 있는 사람이다. 그의 춤사위에서 농민의 끼를 느낄 수 있었다.

김종경 공동위원장이 나왔다.

"박근혜 4년동안 철저하게 사람에 속았고, 정책에 속았다.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사드. 한국을 또다시 냉전의 중심에 서게 하고 국익과는 관계없고 오히려 우리를 위협하는 사드를 급하게 배치하려는 이유는 방산 비리 외에는 찾을 수 없다.

롯데는 과연 피해자인가? 절대로 아니다. 대한민국에 적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 기업이라면 졸속적인 사드부지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재벌의 비리와 총수의 비리로 인한 구속을 면하려고 협상에 응하려 하는 것이다.

우리는 롯데가 피해자라 생각해 지켜봐왔다. 그러나 그간 과정을 보면 롯데는 정권과 결탁한 비리 기업일 뿐이었다. 우리는 국방부와 협상을 중단하라 메시지를 전하고 신동빈 회장과 공개면담을 신청했으나 일주일째 답변이 없다. 롯데는 무늬만 한국기업이다. 우리는 롯데를 한국기업으로 인정할 수 없다.

롯데는 재산 앞에서는 혈육도 아랑곳없는 형제간 분쟁의 추잡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저런 롯데가 롯데 CC와 남양주 땅을 교환했을 때 얼마나 가치 있나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다. 국민을 기만하고 국익을 저버리는 롯데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사드는 이로운 무기가 아니며 국익과 국민의 생존권을 무시하는 롯데는 필요 없는 기업이다. "

"사드는 미국으로! 롯데는 일본으로! 신동빈은 각성하라!"

사회자가 “중국은 춘절이 다가온다. 중국은 춘절에 중국에서 오는 전세항공기 요청을 거절했다. 중국의 경제적 보복이 심상치 않다. 사드를 철회하여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와야 한다. 그날이 멀지 않았다”라며 “멈춰! 사드배치!”를 외쳤다.

우리 율동맘들이 ‘사드반대가’와 ‘이게 나라냐 ㅅㅂ’을 하여 또다시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우리 율동맘들은 KTX를 타고 와 합류했다. 예쁜 우리 젊은 엄마들! 율동이 끝날 무렵 일어서서 짐을 정리하고 행진을 했다.

행진 내내 성주투쟁위 이재동 부위원장과 김천시민대책위 박경범 기획위원장이 번갈아 사회를 했다. 간간이 멈추어 서서 서울 시민들에게 홍보 방송을 하기도 하고 간이집회도 했다. 시민들이 엄청 많았다. 차벽으로 양쪽을 막아놓긴 했으나, 그 틈으로 시민들이 많이 구경했다.

“사드배치 철회하라!”

“부지협상 중단하라!”

“롯데를 조사하라!”

“특혜 비리 조사하라!”

“신동빈은 각성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3㎞ 거리를 걸어 본대회장으로 들어서니 사회자가 사드배치 철회를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들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자유발언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들 참 한이 많았다. 전국 곳곳에서 억울한 사람들이 많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옆에 앉은 유선철 자문위원이 “난 조용히 은둔하고 싶었는데... 참 정말...”이라고 했다.

“근데 은둔할 곳이 없어요. 깊은 산에 들어가도 케이블카 만든다 하지요. 골프장 만든다 하지요. 이 나라에선 조용히 있을 곳이 없어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또 어떤가? 책 읽고 공부하고 그렇게 여유 있게 살고 싶었는데 그 평범한 소망이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깨져버렸다. 평범한 나날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은 네 달이었다.

우리 율동맘들이 나왔다. 전국 무대에 데뷔전이다. ‘사드반대가’, 이 율동을 따내기 위해 일 주일간 싸웠단다. 박희주 공동위원장이 무대 근처로 가서 깃발을 휘둘렀다. 율동이 끝나고 맘들이 사드반대 펼침막을 들고 있는 가운데 이재동 부위원장이 발언을 했다. 사드 철회에 함께 해달라는 호소.

그리고 본대회가 시작됐다. 사회자는 박진. 지난 번 파파이스를 보니 이분은 변호사라고 한다. 목소리가 아주 크고 발음도 분명했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내 옆에 여러 명의 여자들이 자리 잡았다. 촛불을 들고 있기에 어디에서 촛불을 나눠주느냐고 물으니 자기 촛불을 선뜻 주고는 자기는 LED 초를 꺼내 들었다. 머리에 작은 전기 초를 꽂은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조희연 서울 교육감이 나와서 국정화 교과서 유예의 꼼수를 말하며 절대로 서울 교육청에선 국정 교과서를 쓰지 않을 거라 다짐하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살라는 얘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교육감이 찬성하고 그 교과서를 쓰라 하면 우린 쓸 수밖에 없다”던 우리 김천의 교사를 생각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교육부가 믿는 곳이 혹시 우리 대구 경북과 울산(지난 번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ㅎ학교)이 아닌지?

내란죄로 몰려 복역 중인 이아무개님의 아내가 나와 조심스럽게 남편에 대해 거론했다. 우리 나라에서 사상범이란 죄가 얼마나 큰 올가미인지 실감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심상정이나 야당들도 이 사건 앞에선 침묵하고 헌재의 통진당 해산에 암묵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던가.

세월호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의 엄마가 나와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홉 사람 이름을 울먹이며 부를 땐 다들 고개 숙이고 가슴 먹먹하게 들었다. 발언이 끝나고 하늘로 노란 풍선이 날아갔다. 아, 세월호여! 그때 우리가 좀더 적극적으로 진상을 밝히는 데에 협조했더라면 우린 좀 더 일찍 박근혜 일당의 국정 농단을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검찰, 경찰, 법원, 언론과 더불어 국민의 방관도 오늘 날 이 파탄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경상도 땅에 원전을 촘촘히 짓고, 사드를 배치하고 하는 일이 경상도 사람들의 무관심과 지역 이기주의에 힘입은 것이기에 그를 바로잡을 책임이 우리 경상도 사람에게 있듯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건 우리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기에 국민들이 그 책임을 다하고자 이렇게 모인 것이 아니겠는가.

‘꽃다지’의 노래를 직접 듣는 것도 좋았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일어섰다. 가야 했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2017년 1월 1일을 맞이했다. 길에서 대책위 사람들과 맞이하는 새해,

새해 내 소원은 사드 철회 싸움을 통해 나를 비롯 우리가 성숙해지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을 이겨내고 공동의 선을 위해 나아가는 것. 우리는 사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이렇게 이질적인 사람이 모여 제각기 다른 생각에서 공통의 목표를 찾아 싸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농소 집회를 주도하는 사람중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진심으로 사드를 반대한 마음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농소, 율곡만의 싸움을 고집해서 처음부터 역 광장에 나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진보단체와 연대하는 것을 싫어했다. 분열책동이 노린 지점도 바로 거기였다. 처음엔 우리만의 싸움, 그다음엔 어차피 안 될 것 보상이라도 받자. 농소, 율곡만의 싸움이었으면 어떻게 시내 사람들이 무심하다고 원망할 수 있을까? 사드배치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는 새누리당을 비판하지 않고 간다는 것은 ‘사람이 적은 제 4후보지로 가도록 하자’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사드 때문에 이혼하지 말자. 이웃간 원수가 되지 말자”란 성주 사람들 구호를 들은 적이 있다. 같은 김천 사람이고 게다가 열심히 책을 읽는다는 사람이 아무 고민 없이 무관심하게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 밉지 않은 바가 아니지만, 우리 싸움이 울분과 분노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교무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래서는 내가 피폐해질 것 같고 사람에게 실망하고 상처가 클 것 같다. 따라서 정말 우리의 일이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라면 그것은 미움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이 맞나, 한 걸음 멈춰 서 생각하면서 나아가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는 것, 그 과정에서 나는 성숙해질 수 있지 않을까?

‘삶과 깨달음이 둘이 아니라 삶 속에서 깨달음이 얻어지는 것이다’라는 흥선 스님의 마지막 법문, ‘이기기 때문에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옳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라는 길 위의 신부인 문규현 신부님의 말씀, 그리고 오랫동안 내가 가훈으로도 삼아왔던 ‘생활은 검소하게 마음은 넉넉하게’란 초원봉사회의 회훈들. 잊었던 많은 것들이 떠오르는 걸 보니 정말 새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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