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계단 오르기]첫 번째 계단 - 시인 조연희, 詩의 사생활 16

대학 가서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것이 바로 담배를 피우는 일이었다. 하얀 연기를 허공에 내뿜으며 지긋하게 그 연기의 사라짐을 바라보는 일. 언니는 식구들이 없을 때면 종종 창문을 열고 하얀 연기를 내뿜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적막하고 적요롭던지. 그때마다 나도 어서 담배를 피워야지 생각했다.

담배를 피우다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 여의도의 국회의원들이 토론을 벌이면서 담배를 피우거나 TV 대담 프로에서 출연자가 담배를 피우며 사회자와 담소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택시를 타도 아저씨들은 담배부터 꼬나물었고 고속버스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우곤 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남자들의 자유로운 흡연에 반해 여자의 흡연은 지나치리만큼 완고했고 통제가 심했다. 대로변에서 담배를 피우다 뺨을 얻어맞은 친구도 있을 정도니까. 엄마는 가끔 내게 한숨을 쉬며 언니가 담배를 피우는 것 같다고 토로했지만 나는 고개를 도리질하는 것으로 안심시키곤 했다. 엄마에게 담배를 피우는 언니는 타락한 자식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당시 여성흡연에 대한 인식이 그랬다.

나는 등교할 때마다 언니의 가방에서 지폐 몇 장과 함께 담배 한두 개피를 꺼내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방에 담배가 없는 날이면 버스정거장에서 ‘까치담배’를 한두 개피 사기도 했다. 당시에는 버스 토큰 파는 곳에서 껌이나 사탕 등과 함께 낱개의 담배도 팔았다.

처음 담배를 피웠을 때가 기억난다. ‘뻐금담배’였는데도 빈혈이 일 때처럼 어지러우면서 눈앞에 뿌연 안개가 일 듯 출렁거렸다.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기침이 나거나 목이 따갑지는 않았다. 오히려 연기의 뒷맛이 구수했다. 낙엽이나 솔가지 태우는 냄새 같았으며 오래된 고서를 펼쳤을 때 나는 냄새 같기도 했다. 머리를 풀어헤친 듯이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보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로소 하나의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것 같았다. 일종의 성인식이나 할례를 치룬 기분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초경이나 처음 브레지어를 찼을 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사고의 지평이 넓어진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면 어쩌면 그 순간이 바로 내가 청소년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간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같은 종류의 담배를 피워도 피우는 사람에 따라 냄새가 달랐다. 구수한 냄새가 있는가 하면 독한 냄새도 있다. 혹자는 얼마큼 연기를 들이마시느냐에 따라 내뱉는 연기 냄새가 달라진다고 하지만, 피는 사람의 식습관과 체질에 따라 뿜어져 나오는 담배 냄새도 다른 듯했다. 나는 지금도 종종 담배 피는 사람 옆에서 담배 연기를 맡아보는 습관이 있다. 연기 냄새로 담배 피우는 사람의 건강 정도가 짐작될 정도이니….

담배를 나눠 피다

그러다 그녀를 만났다. 그녀에게서는 늘 절은 담배 냄새가 났다. 몸에 밴 담배 냄새가 아니라 이상하게도 재떨이에서나 날 법한 오래된 담배 냄새가 풍겨 나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담배값을 아끼기 위해 담배를 두 번에 나눠 피웠다. 반쯤 피운 담배를 끈 후 보관함에 넣었던 것인데 그 담뱃진 냄새가 절은 독한 냄새를 풍겨댔던 것이다.

우리는 공모자처럼 같이 담배를 나눠 피며 급속히 친해졌다. 학교 뒷산이나 강의가 끝난 텅 빈 강의실이 우리가 주로 담배를 피우는 곳이었지만 가장 우아하게 담배를 필 수 있는 곳은 학교 앞 카페였다. 당시 카페는 테이블마다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토하기 직전까지 줄창 담배를 피워댔다. 점심 값으로 커피를 마셨기 때문에 빈속에 줄담배를 피워대다 보면 속이 쓰리고 어지러웠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그녀가 반쯤 핀 담배를 끄더니 담배보관함에 넣으며 말했다.

“나 가출했어.”

“무슨 일 있었어?”

“담배 피다 들켰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엄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권사님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담배를 피우다가 들킨 것이다. 그날도 그녀는 엄마가 출근하길 기다렸다가 대문이 닫히자마자 담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우리 언니처럼 창가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댔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녀의 엄마가 창문 밑을 통과할 때쯤, 하필이면 담뱃재를 털다가 실수로 떨어뜨린 그녀의 담배를 목격해버린 것이다. 그녀의 엄마는 머리를 들고 창문을 쳐다보더니 재빨리 집으로 되돌아왔다. 물론 그녀의 방에는 담배 연기가 채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의 엄마는 마치 그녀의 몸에 사탄이라도 들린 것처럼 어깨를 쥐고 흔들어대면서 울부짖었다는 것이다. 그 길로 그녀는 가방을 싸들고 나온 것이고.

“다시는 들어가지 않을 거야.”

그녀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난 문득 소라게를 떠올렸다. 소라게는 어느 정도 자라면 자신의 집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그 시기를 놓치면 커진 몸뚱이가 그 옛집에 갇혀 죽게 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태어난 집을 떠나는 일일까. 집이 만든 관습과 규율을 버리는 일일까. 그러면서 새로운 집을 만드는 일일까.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집은 이제 예전의 그 집이 아니라는 걸 알 것 같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집이 있다.

다시는 꺼내면 안 되는 고백이 있다.

쓴 커피 같은 어둠이 엎질러져 있는 방에

가지런한 것은 지난겨울을 차곡차곡 개어놓은 이부자리

다시는 펼치면 안 되는 계절이 있어

돌아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웃자란 길

더 이상 새 살이 돋지 않는 나무

담을 덮어버린 숲

앞으로 가던 바람이 뒤돌아본 울타리

병든 강아지 한 마리 굳어가는 다리를 핥고 있다.

 

-졸시 ‘귀가’ 전문

마돈나와 처녀막

“늘 파이프를 입에 물고 살았던 영국 수상 처칠은 92세까지 살았고, 주례 설 때에도 심지어 세수 할 때에도 한 손에 담배를 들고 있었다는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시인은 70세까지 살았고, 담배의 대명사 임어당은 82세까지 살았어. 난 담배를 끊고 싶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와 비장하게 담배를 나눠 피웠다. 돈이 없어 선택한 황금색 커버의 ‘청자’는 너무 독했다. 머리가 핑 돌면서 음악은 더욱 아득하게 들렸고 사물은 점점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생각만은 한 줄기로 모아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열심히 줄담배를 피워댔지만 감히 담배 연기를 깊이 삼키지는 못했다. 폐부 깊숙이 삼켰다가 한 줄로 내뱉는 담배 연기의 묘기는 우리에겐 아직 요원한 일이었다. 학교 앞 분식집 만두 찜기를 열었을 때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보던 그녀가 갑자기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을 틀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릴린 몬로를 연상케 하는 외모의 마돈나는 당시 섹시 심벌이었다. 특히 입술 위에 찍힌 점이 실룩일 때마다 얼마나 관능적이던지. 뮤직비디오가 귀하던 시절 마돈나의 뮤직비디오는 화제를 몰고 오기에 충분했다. 사원 기둥 같은 곳에 사자 한 마리가 누군가를 기다리듯 어슬렁거리고 그곳에 헝클어진 머리에 야한 화장을 한 마돈나가 배를 타고 도착한다. 그러면서 화면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마돈나와 도발적인 옷차림의 마돈나가 교차편집되고, 사자와 사자의 가면을 쓴 사내가 교차편집되면서 속삭인다. 황야의 당신. 당신 앞에서 난 언제나 처녀에요.

웨딩드레스를 입은 마돈나의 얼굴을 얇은 망사의 웨딩베일이 가리고 있었다. 망사 속에 살짝 가려진 마돈나의 얼굴은 더욱 신비하고 순결해보였다. 우리는 그 베일이 처녀막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돈나처럼 그 베일을 우리 스스로 걷어버리리라 다짐했다.

“빨리 처녀막이 찢어져버렸으면 좋겠어.”

내가 한 말인지 그녀가 한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막 성년이 된 우리에게 스스로 걷어내야 할 베일이 너무도 많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베일 밖 모든 것은 황야였고 사자였으며 담배 같은 것이었다. 담배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검지와 중지 사이에 인이 밴 담배 냄새처럼 지독한 연애였을까.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늘 처녀 같은 것이었지만 그러나 세상은 지독하게도 매혹적이고 유혹적이겠지. 저 사자 가면을 쓴 사내처럼.

…아아 나는 한 마리의 사자를 길들일 때 먼저 그의 밥이 되어 줄 거예요. 그의 혀에 내 살점이 찢겨나가도 피가 흘러내려도 놈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훗날 놈이 내 피 냄새 살 냄새가 그리워 다시 올 때까지. 그게 내 조련법이에요…

그해 봄은 그렇게 담배에 불을 붙이다 머리카락을 태우거나 거꾸로 문 담배를 돌려 무는 사이에 지나갔다. 여기저기 카페를 전전하면서 모은 성냥갑 속의 유황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화염을 도모하는 것도 모른 채 그렇게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조연희 시인은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시산맥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 영상기획 및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야매미장원에서'가 있다. (주)빅시스템즈 기획실장.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