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할머니들 일본국 상대로 직접 손배소청구... 할머니들을 지켜줄 나라는 어디있나

영하로 뚝 떨어진 기온이 정오가 돼도 좀처럼 오르지 않는 겨울날, 서울 종로구 평화로 일본대사관을 바라보는 ‘평화의 소녀상’은 털목도리를 여러 개 동여매고 손뜨개질로 만든 털버선을 신고, 담요를 덮고 있었다.

12월28일. 굴욕의 한일합의가 체결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다. 강추위에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90)와 길원옥 할머니(88)도 소녀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았다. 누구보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역사의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겪으며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 9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할머니들의 숙원은 오직 하나다. 일본 정부가 ‘소녀’들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해 진정으로 뉘우치고 사과하는 것.

올해의 마지막으로 열린 1263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2016년 한 해 별세하신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 일곱 분을 추모했다. 이제 생존자 할머니는 서른아홉 분이다.

추위에도 평소 수요시위보다 훨씬 많은 시민이 모인 이유는 한일합의 체결 1년이 되는 이날을 통감하기 때문일 터. 어린아이, 초중고등학생, 청년대학생, 주부,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할 것 없이 500명 가까운 시민들이 돌아가신 할머니들을 추모하고 살아계신 할머니들과 함께하려고 평화로 위에 촘촘히 모여 앉아 ‘한일합의는 무효다’라고 외치며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할 것'을 요구했다.

수요시위 본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모이기 시작한 시민들은 준비한 꽃을 할머니들의 사진이 놓인 추모단 앞에 헌화했다. 청소년들은 앞자리에 담요를 덮고 앉아계신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에게 찾아와 ‘핫팩’을 흔들어 드리거나 손을 꼭 잡으며 "할머니 힘내세요"라고 인사했다.

박원순 추미애 "박근혜표 한일합의 무효다"

'해남나비' 이명숙 대표는 추모사 속에서 공점엽 할머니를 기억했다. 이 대표는 공 할머니의 “단 하나 소원은 일본이 '위안부 같은 몹쓸 짓 하지 않겠다'는 공식사과를 받는 것이었다”라고 말하며 “그런데 할머니 살아계실 때 망국의 한일합의를 안겨드렸다”라고 통탄했다. 그는 “‘박근혜표 정책’인 한일'위안부'합의는 전면 폐기돼야 한다. 일본의 법적 배상과 공식 사죄를 받아내는 날까지 추모식은 추모식일 수 없다”라고 힘줘 말했다.

경주여고 이수정 학생은 차분한 목소리로 “할머니들은 7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진정한 사과를 기다려오셨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때 진정한 사죄라는 꽃을 안겨드리기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수요시위에 참석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일‘위안부’합의를 강행한다는 의사를 밝힌 황교안 총리와 외교부를 향해 “어느 나라 외교부”냐고 비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일본정부의 공식사과 없이 ‘밀실에서’ 이뤄진 한일합의는 무효다”라고 말하며 “유엔특별보고관도 ‘중대한 인권침해의 문제에 대해 진실조사·사죄·배상·형사처벌·재발방지가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일본 정부는 이런 것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피해자 할머니들 28일 일본 정부 상대로 직접 손배소 청구

이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1명과 사망한 6명의 유족들은 직접 일본 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일본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해왔음에도 1년 전 체결된 한일합의는 이러한 ‘국민’의 바람을 철저히 배반한 셈이다.

이와 관련 민변은 “이탈리아 대법원은 나치 독일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이탈리아인이 독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반인권적 범죄행위 등 강행규정에 위배되는 국가의 행위에 대해서는 이탈리아 법원도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가진 인권침해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한국 법원도 일본에 대한 재판권을 인정하고 일본에 대해 불법행위의 책임을 인정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2016년 별세하신 할머니는 최옥이 할머니, 김경순 할머니, 공점엽 할머니, 이수단 할머니, 김모 할머니, 유희남 할머니, 박숙이 할머니 총 일곱 분이다.

이날 충북성화초등학교 학생들이 합창한 ‘고향의 봄’... '소녀'들의 삶은 일본군 성노예로 참혹하게 짓밟히며 ‘봄’을 빼앗겼다. 일본군이 전쟁에 패하며 당시 소녀들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 소녀들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아직도 진정한 ‘봄’은 오지 않았다. 

 

 

[포토  2016년의 마지막 주 1263차 수요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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