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시스템이다 ⑩ 의회주의가 관료주의를 넘어설 때 민주주의는 출발점에 선다.

관료주의는 의회주의 무력화를 만든다

▲ 특검장에 출두하는 최순실 모습[사진 출처 : 방송 켑처]

제왕적 대통령제를 말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관료주의이다. 최순실은 국회 청문회 출석을 거부하고 구치소까지 찾아간 국회의원들을 단지(?) 만나주겠다고 한다. 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일관된 증인의 출석거부와 국회 권위의 무시다. 예외가 없다. 가장 큰 이유는 강제 구인 집행과 징벌에 대한 규정이 미약해서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같은 이는 아예 통지서 수령을 회피하는 방법을 통해 합법적으로 도피했다.

오랜 시간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왜 관련법의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을까. 지금이라고 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을까. 그 해답에 숨어 있는 것이 관료주의다. 제왕적 대통령제 뒤에 관료주의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군사정권을 비롯한 부당한 권력의 핵심 동반자였다.

관료주의는 의회주의 무력화로 작용한다. 독재정권이 관료주의에 의지하는 이유는 봉건적인 구조가 독재를 지탱하기 때문이다. 관료주의 포장은 권력을 독점한 계급들의 연대다. 재벌과 언론, 정치인, 관료의 연결고리는 언제나 이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결탁하고 성장해 온 것이다.

관료에 의한 개돼지 발언이 새삼스럽지 않은 것과 그 말이 영화 ‘내부자’에서 한 언론인의 말처럼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 역시 오랫동안 이 사회를 지배해온 구조 때문이다. 관료에 의한 부당한 권력과 금력이 결합된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이다. 관료주의가 결국 의회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 제왕적 대통령제 뒤에 관료주의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군사정권을 비롯한 부당한 권력의 핵심 동반자였다. 관료주의는 의회주의 무력화로 작용한다. 독재정권이 관료주의에 의지하는 이유는 봉건적인 구조가 독재를 지탱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국회 야경, 출처 국회홈페이지]

특검의 압수수색 확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장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대한 압수수색이 집행됐다. 특검은 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이들의 압수수색 근거 중 하나로 삼았다. 그렇다면 기존의 검찰은 할 수 없었을까. 특검이기에 가능한 것은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였다. 검찰은 검찰을 위해서 움직인다고 한다.

관료주의의 가장 큰 권력이 바로 검찰이다. 검찰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기본적인 요건이다. 결국 제왕은 봉건시대와 같이 관료와 함께 정권을 유지한다. 이는 문민정부가 돼서도, 민주화가 돼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미국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그렇지 않다. 연방 대통령으로 구조적으로 우리와 다르다. 그렇다면 다른 국가들은 봉건적 독재국가가 아니고서 이렇게 관료 중심의 국가는 드물다. 검찰은 관료주의의 중심으로, 권력과 금력이 가장 필요로 하는 힘이다. 이를 국민에게 돌려주려고 스스로 독립돼서 권력과 금력의 눈치 보지 말고 잘하라고 했던 대통령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에 맞선 젊은 검사 놈들의 패기를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의 검찰을 본다. 이럴 때 민주주의는 피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관료주의

사실 봉건국가인 조선만 하더라도 임진왜란 이후 봉건국가이기 보다는 관료들에 의한 귀족국가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과정과 지배의 과정에 가장 많은 민족 반역자인 부역의 무리가 바로 관료였다. 이승만 정권을 출발로 제왕적 독재국가에 접어든 한국은 다시 일제에 충성한 부역자인 관료를 중심으로 출발했다.

▲ 관료주의의 가장 큰 권력이 바로 검찰이다. 검찰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기본적인 요건이다. 결국 제왕은 봉건시대와 같이 관료와 함께 정권을 유지한다. 사진은 박근혜정권 실세인 김기춘 비서실장과 예술인 블랙리스트 실질적인 작성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진 조윤선 문체부장관[사진출처 : 국회방송 켑처]

결국 독재는 국민의 힘에 굴복했지만, 군사쿠데타를 통한 군사정권의 장기 집권은 관료 중심의 국가 운영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이런 상태에서 대통령은 옛 봉건제도하의 귀족국가의 대장을 뽑는데 지나지 않았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대통의 시기의 가장 큰 실패 원인 중 하나로 관료주의의 적폐를 깨뜨리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관료주의는 의회주의를 제한하는 것으로 작용한다. 불완전한 청문회제도가 그것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시절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확대할 때 비서진이나 내각이 반대했지만 노대통령은 “아마도 이후에 그들(당시 다수당이자 야당인 한나라당)의 발등을 찍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청문회에 대한 법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말에서 필자는 노대통령 조차 관료주의에 경도됐다는 판단을 한다.

혹자는 노대통령의 대범함을 말하지만 대범함에 앞서 관료주의의 편의성에 경도돼 의회주의의 제도화에 소홀한 태도를 무의식 중에 보인 것으로 여긴다. 결국 관료주의는 시민의 권력으로 만들어진 의회가 활발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의회 개혁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국회 국정감사 시즌이 되면 당연히 나오는 뉴스가, 국회에 출석해서 대기 중인 관료집단을 보여주며 국회가 관료들을 일도 못하게 한다고 한다. 이것이 관료들이 노리는 여론 조작의 대표적인 것이다.

시민의 의지를 모은 국회가 제 역할을 해서 국가 운영을 잘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어야지 관료들에 의해 국가가 독점 운영되는 것을 방기하도록 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공부한 대가로 공무원이 되고, 오랜 시간 행정의 기술자가 되어 국가 전체의 행정을 독점하는 관료 시스템은 민주주의 국가에선 최소한 없다. 의회의 능동적인 권한이 작용할 때 민주주의를 향한 출발점에 서게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관료주의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관료다

현재는 로스쿨제도로 바뀌었으나 과거 사법고시는 한꺼번에 세 가지 직업을 만들어 낸다. 사법부와 행정부와 고급 프리랜서 자격의 직업을 동시에 생산하는 것이다. 판사가 되면 사법부에 소속되고 검사가 되면 행정부에 소속되고 그냥 변호사로 직행하면 고급 프리랜서 자격증을 획득한 것이다.

그중에 최고의 권력집단은 단연 검찰이다. 그리고 검찰은 권력이 강할 경우(이 강함에는 검찰 내부의 통제자가 권력과 함께 할 때)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권력이 페어 플레이를 하려고 하면 권력을 무시하고 자체 권력을 도모한다. 그래서 검찰 공화국인 것이다.

그리고 검찰에 맞먹는 권력이 금력을 관리하는 경제부처 관료다. 결국 재벌과 검찰과 경제관료의 카르텔이 정권을 도모한다. 여기에 야합한 정권의 모습이 지금의 박근혜 정권이다. 검찰을 중심으로 수립되어 경제관료와 재벌에게 나라를 맡긴 것이 박근혜 게이트인 것이다. 이는 군사독재정권의 모습이었고 한국 현대사의 경제발전이라는 유령 아래 숨어있는 고질병이다.

▲ 검찰은 권력이 강할 경우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권력이 페어 플레이를 하려고 하면 권력을 무시하고 자체 권력을 도모한다. 검찰에 맞먹는 권력이 금력을 관리하는 경제부처 관료다. 결국 재벌과 검찰과 경제관료의 카르텔이 정권을 도모한다. 여기에 야합한 정권의 모습이 지금의 박근혜 정권이다. 검찰을 중심으로 수립되어 경제관료와 재벌에게 나라를 맡긴 것이 박근혜 게이트인 것이다.[사진 : 영화 '내부자' 중에서]

정치는 시스템이다

민주주의는 시민 권력의 강화로부터 출발한다. 민주공화국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이 지배할 수 있는 의회,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국회의원의 정보공개, 국회 상임위원회의 온라인을 이용한 상설화, 입법이력추적제의 실시, 국회 보좌진 제도 입법화 등 과제들이 개혁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청문회 제도로부터 관료주의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행정고시 제도의 폐지를 비롯한 공무원 선발 제도의 개혁, 영화진흥위원회와 같은 정부기구의 민간 협치 기관 설치의 활성화 등 관료주의 시스템을 깨야 한다. 이것 역시 정치이다. 그래서 정치는 시스템인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할 것인가에 시민들은 더 이상 혹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정치인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약속했다. 박근혜만 하더라도 집권 1년차에 이미 공약을 날려 버렸다. 정치인이 무엇을 하겠다고 해서 믿고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중심으로 정치인을 판단할 것이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노무현이었다. 어려운 출발을 이기고 시민이 이기는 정치 경험은 정권의 승패와 상관없이 중요한 역사적 경험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러한 경험과 아울러 이를 지켜낼 수 있는 시스템이 승리하는, 보다 진일보된 민주주의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개헌을 말할 때 관료주의를 깨는 방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정책을 말하기에 앞서 입법부인 국회의 개혁을 말해야 한다. 공무원의 노동권 보장을 말하기에 앞서 공무원 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 그들은 고급 프리랜서, 즉 개방형 민간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종선 국회문화관광위원회 위원 보좌관(1996~2004)/ 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문화정책담당 행정관(2003) / 문화관광부 문화행정 혁신위원회 간사(이창동장관 정책보좌역) / 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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