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선의 문화정책 돌아보기 5

광화문 촛불 집회는 축제다

예술가들의 노래와 몸짓이 광화문 촛불 집회를 축제로 만들었다. 오는 토요일 역시 축제의 장이 될 것이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가수 전인권의 애국가와 행진은 지난 19일의 촛불집회를 축약하고 상징했다. 그의 노래는 촛불을 든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냈고 더욱 크게 전달했다. 예술가가 사회에서 책무를 수행하는 전형을 보였다.

한편 11일 집회에서 문화 프로그램이 과다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진행 측의 행진 불가 판단에 따라 늘어난 시간들이 일부 시민에게 불편함을 주었기에 생긴 지적이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지적이지만 예술가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마음에 걸리는 중요한 한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19일 가수 전인권은 촛불을 상징할 수 있었다. 11일의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이다. 광화문에 울려 퍼지는 ‘이게 나라냐’는 노래도 마찬가지이다. 예술은 촛불 그 자체로 결합했다는 것이다. 집회를 위한 프로그램만이 아니라는 거다. 예술이 결합함으로 축제는 더욱 축제다워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술과 정치의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술과 정치의 상관관계

‘정치는 예술을 사랑한다’는 말은 허위다. 존중한다는 말도 거짓이다. ‘정치는 예술을 이용한다’가 정확하다. 앞서 촛불 집회에 대한 지적도 마찬가지다. 예술을 이용하지 말고 축제의 주체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술가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광화문 예술인 캠핑촌이 추운 날씨에도 지속되고 있음’이 말하는 것은, 정치와 예술 상관관계의 한 단면을 상징한다. 정치와 권력은 예술의 사회적 영향을 우려하여 예술을 감시하고 제약하고 한편 이용한다. ‘변호인’과 같은 영화를 빌미로 민간 기업 회장의 사퇴를 종용하고, 기업회장의 사면을 대가로 ‘연평해전’을 정부 선전에 이용했다는 의혹을 사기도 한다.

▲ 이승만 시절 문화권력자 임화수

과거 일제로부터 이어온 검열의 역사도 그러하고, 친일 반역 예술가를 활용한 일제의 식민지 미화도 이직 종결되지 않은 것이다. 이승만 시절의 문화 권력자 ‘임화수’(반공 예술인단을 조직. 연예인들을 자유당 선거운동으로 내몬 인물), 박정희 시절 예술계 인사의 국회진출이나 검열, 국영방송의 일반적 정권 미화. 전두환 정권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와 권력은 예술가를 자기의 필요에 따라 이용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출발은 이런 점을 좌시하며 정치와 예술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 노력해 왔다. 이에 앞서 14대 국회(1992년 ~ 1996년)에서 코미디언 이주일의 국회 진출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과 별개로 활동은 동료의원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15대 국회 상임위원회 일을 준비하면서 14대 국회의 속기록을 읽어 봤다. 단언컨대 이주일의 상임위원회 활동은 대단히 훌륭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인정되지 않았다. 그것도 그보다 못한 상임위 활동을 한 동료의원들에 의해.

15대 국회(1996년 ~ 2000년)에서 최희준의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은 전국구가 아닌 예술가의 본격적인 정치 현장 진출의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화예술특별위원장으로 활동한 그의 노력은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예술가 집단(당시는 영화계 중심)과 공약을 함께 만들고 이를 발표하면서 정책으로 예술가의 선거 참여를 가져온 것이다. 영상정책 공약 발표와 영화계의 지지 선언이 의미하는 것은 예술과 정치권력과의 관계를 동반자로 만든 획기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이후 노무현 정부의 탄생과정에서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창동 장관을 통해 예술계의 정책 현안이 반영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이창동 이후 문화관광부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으로 몰락의 길에 들어서고 이명박근혜 정권을 맞아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의 노력은 정당하게 인정받아야 한다.

현재의 박근혜와 문화체육관광부 게이트는 김대중 정부로 부터 이어 온 정치권력과 예술의 동반자 관계가 깨지면서 말미암은 것이다. 또한 이 지점에서 게이트의 실행자인 관료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 관료와 예술가 관료

정치와 권력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이용과 통제일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바로 문화·예술 관료와 예술가 관료이다. 문화·예술 관료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정규 관료를 말하고, 예술가 관료는 문화예술위원장과 같은 예술가 출신 정무직 관료를 말한다.

문화·예술 관료는 관료중심 국가의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여 예술과 문화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 문화·예술 행정의 독점적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활용하여 정치권력은 관료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통제와 부정과 치부를 해온 것이다. 특히 관료중심 체계는 권력이 작용하기에 매우 용이하다. 문화·예술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다.

예술가 관료는 정치와 권력의 대변자 역할을 한다. 때론 통제의 실행자다. 권력욕에 사로잡혀 해온 일들이 지금 적나라하게 나라를 흔들고 있다.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적용하는 예술가가 예술가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통제를 하면서 진흥을 말하는 콘텐츠진흥원장이 현실이다.

이들 부역 예술가들은 부패를 더욱 가속화 시켰다. 친일 인명사전 같은 예술가 부역 사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친일 반역자로부터 군사정권 부역자, 부패정권 부역자의 인명사전을 만들어 예술을 망가뜨린 역사를 기록해야한다. 예술이 사회의 공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문화관광부의 관료는 비정규직(전문직 프리랜서 정도)이 돼야 한다. 나아가 한국의 관료주의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전 관료의 비정규직화를 해야 한다. 이는 노동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예술기관의 경우 정규직화를 통해 철밥통과 예술위에 군림하는 예술행정을 만들어 내고 있다.

관료는 순환돼야 한다. 시민이 관료가 되고 관료가 시민이 되어 관료라는 계급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고시는 폐지돼야 하고 역할에 따라 역할의 기간에 따라 계약제로 선발되고 순환돼야 한다. 예술가 역시 관료로 역할을 하고 다시 예술가로 돌아오는 것이 필요하다.

이창동 감독은 장관을 마친 후 영화 ‘밀양’을 찍었고 칸느에서 아시아 영화로는 아시아 배우가 처음으로 주연상을 받는 개가를 올렸다. 그의 입에 항상 오르내리던 장관직의 ‘공익근무’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프랑스처럼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과 사회에 대한 시각으로, 정권의 간섭 없이 관료의 역할을 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예술가는 촛불 시민으로 광화문에 간다

예술가는 도구로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않는다. 시민이 정치에 분노하듯이 분노하고 시민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예술로 촛불에 참여한다. 광화문에 캠핑촌을 차리고 저녁마다 저항을 공연한다. 예술이 사회적 산물이기에 예술가는 광화문에서 예술을 사회에 내어 놓는 것이다.

시민들도 예술가를 예술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하길 희망한다. 노래가 없는 촛불광장은 상상할 수 없다. 구호만으로 꾸며진 광장은 축제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노래와 춤이 함께하는 광장에서 예술가들이 촛불을 든다. 예술가들은 정권에 의해 난도질당한 예술과 예술 행정을 바로잡기를 희망한다.

예술가와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체육관광부를 만들기 위해 촛불이 되어 모이는 것이다. 관료중심 문화체육관광부와 정치권력이 이용하는 예술 권력을 깨고 새로운 문화국가를 만들기를 희망한다. 예술을 도구로 이용하는 정권이 부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술을 치부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정권은 철창으로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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