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일 넘긴 서울대병원 앞 농성… “진상규명 청문회 꼭 열 것”

▲ 지난 1월 28일 서울대병원 백남기대책위 농성장의 목요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 전국농민회총연맹]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서 살인적인 물대포 진압의 피해자 백남기 농민은 피해 발생 170일이 넘도록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다. 하지만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앞 농성장을 지키는 이들은 그의 쾌유는 물론,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란 희망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있다.

민중총궐기에서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지 167일 째인 지난달 28일 두 명의 단체 일꾼이 지키고 있는 백남기 농민 대책위원회 농성장이 정오쯤부터 조금씩 부산해진다. 지방에 있던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회원들이 농성장을 지키러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3월부터 전국 시군농민회에서 하루씩 올라오셔서 농성장을 지키는데 오늘은 영암과 장흥군 차례예요. 최근엔 나주, 해남, 영광군 등 전남지역 농민회가 오셨구요. 이제 농번기가 시작돼 아침에 올라왔다가 또 당일 돌아가야 해서 많은 분들이 오시지 못했는데 오늘은 다른 농민회서도 와서 근래에 가장 붐비는 것 같네요.” 전농 이종혁 정책부장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한다. 이 부장의 얘기처럼 이날은 전남 영암과 장흥군농민회 외에도 화순 가톨릭농민회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진주시 회원 등 20여 명이 농성장을 찾았다.

농성장에서 만난 강명구 영암농민회 사무국장은 “올라오면 농사를 하루 건너뛰어야 하지만 그래도 꼭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우리 차례에 동네에 비가 와서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 왔다”고 전했다.

▲ 4월 28일 전남 영암과 장흥에서 올라온 전농회원들이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새벽 출발, 서명운동·유인물 배포 등 홍보활동

“우리 장흥군은 벌써 세 번째 당번인데 저는 오늘 처음 농성장을 방문해요. 오늘 올라온 다섯 명은 농민회장, 사무장 등 간부와 열성회원들입니다. 우리가 장흥농민회의 ‘독수리 5형제’인데 우리가 뭉치면 장흥에서 당할 사람이 없어요.” 장흥에서 온 한 농민이 자기 일행을 농을 섞어가며 소개했다.

농민들은 새벽밥을 지어 먹고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농성장에 도착하면 먼저 백남기 농민 피해 사건을 다룬 영상을 본다. 언론사들이 제작한 백 농민 관련 시사프로그램들이다. 영상을 본 뒤엔 농성장 주변에서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는 홍보활동을 벌인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서명운동 참여를 호소하거나 팻말 시위도 함께 한다.

“유인물을 마지못해 받아가는 사람들도 있네요. 시간이 많이 지나다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적어진 거 같아요. 지역에 내려가면 더 열심히 백 농민 피해 사태에 대해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홍보활동을 마친 다음 둘러앉아 소감을 나눈다. 한 여성농민은 “그 와중에 몇 명이라도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시는 시민들을 보면 힘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도 농성장을 방문한 김영호 전농 의장은 “무관심한 것 같으면서도 시민들은 다 지켜보고 계신다. 사람이 없어 길에 그냥 내놓은 서명대나 모금함에도 혼자 서명을 하고 돈을 넣고 가시는 분들이 많다”고 농성 농민들을 격려했다.

실제 농성장 앞을 오가는 시민들은 잠깐 서서 영상을 지켜보다 가거나 농성장을 지키는 단체 활동가들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눈을 흘기고 가거나 농성장을 아래위로 훑으며 뭐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지나가는 시민도 있었다.

▲ 전남에서 올라온 농민이 백남기대책위 농성장 인근에서 피켓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여소야대 국회, 청문회 열어 사태 진상규명해야

정현찬 가농 회장도 농성장에 온 화순 가농회원들을 격려하면서 “여소야대 국회가 됐으니 살인진압의 진상과 책임자를 규명할 청문회를 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20대 국회에서 꼭 청문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우리가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보자”고 당부했다.

농민단체들은 20대 국회가 열리면 백남기 농민 피해사태의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추진하고 있다. 여소야대로 정치지형이 바뀐 만큼 성사에 힘을 모으고 있다.

“백남기 농민이 사는 보성군이 지역구인 황주홍 당선자(국민의당)를 비롯해 정청래, 진선미, 표창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당선자들도 만나고 있습니다. 개별 의원들은 청문회 개최를 당론으로 채택해달라는 요청에 대해 긍정적인데, 일단은 각 당의 새 지도부 구성 등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최석환 전농 대외협력부장이 설명했다.

백남기 농민의 건강 상태는 최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전농 관계자가 하루 농성에 참가한 농민들에게 현 상황을 전했다. “오랜 기간 의식을 잃고 계시느라 신체 기능이 많이 저하됐습니다. 췌장이 기능을 못해 인슐린을 투여 받고 있고 신장 기능도 약해져 있는데 투석을 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 최 대협부장은 “5월에 네덜란드에 사는 둘째 딸 백민주화씨가 입국하면 가족들과 대책위가 백남기 농민 신변과 관련해 심중한 논의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저녁 7시쯤 매주 목요일 갖는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이날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함께 촛불을 들었다. 문화제는 매주 하나씩 주제를 정해 진행하는데 이날은 GMO(유전자조작) 먹거리가 화두였다. 친환경 밀농사를 지어온 백남기 농민을 뜻을 이어가자는 취지였다.

“5월4일 광주 농민들을 끝으로 지역에서 서울 농성장을 찾는 건 잠시 중단하려고 합니다. 본격적인 농번기라 농민들이 더 올라오기 힘들어서요. 당분간은 전농과 가농 상근일꾼들이 농성장을 지킬 겁니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농성은 계속될 겁니다.” 백 농민이 어서 쾌유하시길, 그리고 살인진압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길. 농성장에서 만난 이들의 바람은 모두 하나였다.

▲ 전남에서 올라온 농민들이 백남기 농민이 입원한 서울대병원 후문 앞에서 서명 가판대를 지키고 있다.
▲ 전남에서 올라온 농민이 백남기대책위 농성장 인근에서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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