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선의 문화정책 돌아보기 3

관료중심 문화행정이 최순실 농단 초래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는 예측하지 못한 결과조차 이를 능가하진 못한 최순실 국정 농단은 박근혜 대통령의 불법적 국정 위임에 의한 ‘박근혜 게이트’가 본질이다. 이는 관료중심의 국가행정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역할을 했다. 상명하복의 관료중심 사회에서 명령에 불복하는 공무원은 가차 없이 제거됐다.

장관에서 실장, 국장, 과장들이 줄줄이 옷을 벗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는 대표적이다. 청와대 역시 정무직 공무원들이 교체됐다. 기업과 결합한 각종 이권들, 다양하게 마치 비리의 백화점을 보는 듯하다. 그중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문화부를 보면서 언뜻 이런 생각을 한다. 국방부와 닮았다고.  

▲ 문화창조융합센터 [문화창조융합센터 홈페이지]

문화부와 국방부의 공통점 - 1. 상명하복의 관료문화

박근혜 게이트를 계기로 들여다본 문화부와 국방부의 공통점을 살펴보자. 첫째 관료주의 행정의 폐해다. 문화부는 민간과의 거버넌스, 협치가 중심이 돼야할 가장 대표적인 부처이다. 그런데 문화부가 국방부와 같은 상명하복의 관료시스템으로 운영됐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반대하는 이들의 옷을 벗기고 명령에 단순 복종하며 공공성과 별개의 업무를 수행한 것이 최순실-차은택 농단의 현실이 된 것이다.

최순실이 국방부의 무기도입, 특히 사드도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보도가 이미 있었다.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국방부의 그간 비리는 대부분 명령계통에 의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문화부도 국방부와 다를 것 없는 관료문화의 폐해로 볼 수 있다.  

문화부와 국방부의 공통점 - 2. 정책 결과 평가가 어렵다 

▲ 문화체육관광부 구 로고와 현 로고, 국방부 로고

국방부 정책의 결과를 평가하려면 전쟁을 해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전쟁에 대한 사전 예비가 국방부의 가장 큰 역할이다. 결국 정책 결과를 알기가 사실 참 어렵다. 불량품이라고 밝혀지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전투기나 사드 배치 같은 경우 더욱 그러하다.

문화부의 정책 결과도 역시 비슷하다. 콘텐츠라는 것은 그 성과에 대한 평가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 광고와 같이 대중의 평가는 모호함을 기본으로 한다. 결국 문화부 사업의 경우 국방부 사업과 같이 단기간에 평가가 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외부 개입의 여지가 많은 것이다. 차은택의 문화융성 정책도 이번 게이트가 아니면 책임지는 것 없이 훗날의 해프닝에 불과 했었을 것이다.    

문화부와 국방부의 공통점 - 3. 책임소재 규명이 어렵다 

국방부의 무기 구매에 비리가 있다면 누가 책임자인지, 수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알기가 어렵다. 어느 라인을 타고 시작됐는지 다 밝혀지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에서 꼬리가 잘렸는지, 그 영향이 얼마가 큰지도 개량 되지 않는다.

문화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도 될 것은 언제 결정됐는지, 적은 재정이면 될 것이 어느 단계에서 얼마나 부풀려 졌는지 개량도 어렵다. 언제 어디까지 개입 됐는지 알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 모호하게 된다. 어느 관리자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의도가 있었는지, 지시에 따른 것인지 알 수 가 없다.

문화진흥과 관료 중심 문화행정의 시작

사실 문화부는 김대중 대통령 집권이전에는 문화 진흥의 부서이기보다는 문화검열, 문화건설, 국가홍보의 부서였다. 문화진흥의 부처로서 자리를 잡아가기 위한 노력들이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 이뤄졌다. 문화예산 1%를 달성했고, 영화의 검열폐지 등 개혁적인 정책들이 펼쳐지고 그 중심은 예술계와 문화부의 거버넌스 확대로 집약할 수 있다.

그러나 IMF 여파와 신자유주의는 문화에게 경제성을 요구하게 됐다. 이는 그간 권력의 도구역할을 했던 문화부의 관료주의 확장으로 연결됐다. 경제위기는 예술정책의 퇴행을 가져왔고, 신자유주의는 문화콘텐츠 중심의 부처 개편으로, 겉보기에 화려한 한류, 영화, 게임 등 문화콘텐츠 산업에 주목하게 했다. 그 결과 문화부에는 관료 중심의 독자적 문화 행정 구조가 만들어졌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첫 이창동 장관은 ‘새 예술의 힘, 창의한국’이라는 정책 매뉴얼을 펴면서 문화계와 문화 관료의 협치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는 얼마가지 않았고 이 장관 이후 노무현 정권에서 신자유주의는 문화부의 예술국 약화와 문화콘텐츠산업국의 강화로 이어졌다. 협치보다는 정부지원을 미끼로 문화계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관료중심의 체계화를 가속시킨 것이다.

이후 이명박 정권에서 더욱 심화되고, 박근혜 게이트에 이르러 차은택의 농락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 가장 관료 중심의 정책을 주장한 유진룡 전 장관의 해임은 부메랑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관료중심국가가 될 거라 믿었지만 결과적으로 관료제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 문화로 행복한 대한민국 이미지 [문화융성위원회 홈페이지]

예술정책 퇴행의 본보기 '문화예술교육'

얼마 전 14개 광역문화재단 중 대구를 제외한 13개 문화재단이 ‘예술강사 지원사업’을 포기해서 내년도 학교 예술교육의 파행이 우려된다는 기사가 나왔다. 앞서 예술정책의 약화가 이어진 결과다.

2005년 ‘문화예술교육진흥법’제정을 계기로 출발한 예술 강사 파견제도는 지금까지 처음 그대로다. 시간당 4만원에 주 15시간미만으로, 초단시간 근로자로 분류돼 주휴일, 연차유급휴가, 퇴직금 등의 적용은 물론 국민건강보험의 직장가입대상에서도 제외돼 있었다. 10여년이 흘렀지만 처음 도입할 때의 열악함이 연속돼 온 것이다.

이번 사건은 열악한 환경에 대한 예술 강사의 개선 요구에 의해 시작됐다. 앞으로 진행 사항은 지켜봐야 하겠지만 문화예술교육의 파행은 문화부와 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의 확장과 지속 여부에 예술 강사나 광역문화재단이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보다 문화콘텐츠 등 눈에 보이는,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관료의 영향력이 큰 사업에 집중한 결과인 것이다. 정말 어렵게 오랜 시간을 걸쳐 노력해온 제도가 제대로 된 역할도 해보지 못하고 2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온 것이다. 그것도 교육과 결합한 가장 기초적인 예술 정책사업 임에도 말이다.    

▲ 문화예술교육 [이미지 출처 ; 문화예술교육진흥원 홈페이지]

민간 행정 중심의 거버넌스가 대안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거버넌스 강화’ 외에는 방법이 없다. 거버넌스를 위해 민간 행정이 우선되는 새로운 문화부가 돼야 한다. 예술과 문화콘텐츠, 체육 분야의 행정은 특히 민간 중심의 거버넌스 도입이 실시돼야 한다.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민간위원회가 행정권을 갖는 것은 정책결정권의 민간위원회 위임을 의미한다. 이런 형태를 협치 즉 행정 거버넌스로 볼 수 있다.

지난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문화정책 구조에 대해 문화예술위원회와 문화산업위원회를 제시했다. 지금의 문화예술위원회가 아닌 독립된 공연예술, 시각예술, 문학·출판, 전통예술 등 장르별 독립위원회와 각 위원회 협의체로서 문화예술위원회이다. 문화산업위원회 역시 영화, 대중음악,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방송영상 등의 독립위원회의 협의체 구조였다. 다시 이를 실천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미 수립된 정책이 실천되지 못한 결과가 오늘의 문화부 재앙을 초래한 것이다.   

 

김종선 국회문화관광위원회 위원 보좌관(1996~2004)/ 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문화정책담당 행정관(2003) / 문화관광부 문화행정 혁신위원회 간사(이창동장관 정책보좌역) / 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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