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GMO 표시제도가 무용지물인 이유

▲ 사진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음 GMO가 재배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그리고 우리나라도 엄청나게 수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시민사회단체가 시작했던 일 가운데 하나가 GMO 표시제도의 도입이었다. 다른 나라에 비한다면 우리나라는 비교적 빨리 GMO 표시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그렇게 도입된 후 지난 15년 이상 끊임없이 요구한 것이 바로 그 표시제의 개정이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표시제도는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표시를 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이게 소비자의 알 권리이다) 그 정보를 통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표시제도는 기업에 의해 교묘하게 이용된다. 즉, 장점을 표시하는 것은 눈에 잘 띄게, 단점은 눈에 잘 띄지 않게 표시한다. 그래서 법은 표시의 위치, 표시의 글자크기까지 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GMO도 예외는 아니라서 표시방법, 위치, 크기 등 모든 것이 아주 자세하게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예외로 인해서 이 기준이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예외가 GMO를 사용해서 식품을 만드는 기업에 지나치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GMO 표시제도가 무용지물인 이유는 우선 그 표시를 원료를 기준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품에 대한 표시는 취급이나 보관방법 등도 포함되지만 원료에 대한 표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GMO만은 원료를 기준으로 하지 않는다. 최종산물인 식품에 DNA나 단백질 검출이 안되기 때문에 원료를 알 수 없을 경우에는 GMO 표시를 안 해도 된다. 그렇게 표시 안 해도 되는 것이 바로 식용유, 간장, 올리고당을 비롯한 각종 당류, 주류, 식품첨가물 등이다.

이제 콩을 예로 들어서 표시제도를 생각해보자. 식품기업은 엄청나게 많은 콩을 수입한다. 물론 콩은 우리나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도 수입하고 있고 이곳을 통해 수입하는 것은 모두 GMO가 아니다. 그러나 기업에서 수입하는 콩은 GMO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GMO 콩은 주로 미국에서 수입하고 일반 콩은 주로 중국에서 수입한다. 중국은 GMO면화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게 많은 양을 재배하지만 콩만큼은 그렇지 않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콩의 원산지로 알려져 있고 다양한 콩과 식물이 있기 때문에 GMO로 인한 오염을 염려해서이다. 미국은 사정이 다르다. 미국은 콩을 식용으로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미국에서 재배하는 콩(흔히 메주콩이라 부르는 대두)은 95% 이상 GMO라고 알려져 있다.

▲ 사진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여기에서 종종 GMO를 개발하는 연구자나 식품기업이 주장하는 얘기를 잠시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들은 미국에서 재배하는 콩의 95% 이상이 GMO이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도 GMO콩을 엄청나게 먹고 있다고 종종 주장한다. 이 얘기는 참 속기 쉽다. 95% 이상이라는 숫자의 장난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미국에서 국내에서 소비되는 콩은 전체 생산량의 1-2%라고 알려져 있다. 미국 전체 옥수수의 약 80%가 GMO라고 말하지만 그중 국내 소비량은 5%남짓이라는 것도 덧붙여 두자. 자국의 생산이 남아돌아서 수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수입콩이나 옥수수가 있을까? 당연히 없다. 수입농산물이 없는 곳에서는 가격경쟁력도 없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농산물에 대해 가격경쟁력이라는 말을 써왔는지 생각해보라. 그것은 우루과이라운드 이후부터, 즉 수입농산물이 우리나라에 범람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판매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라. 값이 싼 GMO와 상대적으로 비싼 일반작물이 있다면 값이 싼 것은 어디에 팔고 비싼 것은 어디에 팔 것인지 말이다. 당연히 값이 싼 것은 경쟁해야 하는 시장에 비싼 것은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시장에 내놓을 것이다. 경쟁해야 하는 시장은 수출시장이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시장은 내수시장이다. 그래서 GMO는 미국 내에서보다 수출시장에서 주된 상품이 된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가자. 미국산 GMO 콩과 중국산 일반 콩이 있다. 식품기업은 이 콩으로 두부, 두유, 된장, 고추장, 간장, 식용유 등 각종 콩 가공식품을 만든다. 두부, 두유, 된장, 고추장 등은 GMO를 쓰면 표시해야 하고 간장과 식용유는 그렇지 않다. 여러분이 식품기업이라면 어떤 콩을 무엇을 만드는데 쓸 것인가. GMO 표시를 해야 하는 식품에는 중국산 콩을 쓰고, 표시하지 않아도 되는 식품에 미국산 콩을 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종종 된장, 고추장 등 모든 콩 가공식품의 원료가 수입산 콩이면 다 GMO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기업이 그만큼 바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기업은 이 표시제도의 예외를 교묘히 이용할 만큼 영리(?)하다. 그 결과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GMO 표시를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니 GMO 표시제도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지금 국민들이 원료를 기준으로 GMO 표시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원료가 무엇인지를 알고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것을 가장 반대할까? 당연히 그동안 이 예외 속에서 그 이익을 고스란히 누려왔던 기업이다. 그리고 그 기업의 압력에 꼼짝 못 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다. 이들은 GMO를 써야만 하는 이유로 항상 식량자급률 이야기를 한다. 식량자급률이 20% 남짓인 나라에서 국산만으로는 가공식품을 만들 수 없다고 아주 당연한 듯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나라는 식용유가 대량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80년대 말 이후에 식량자급률이 급속도로 낮아졌다. 식량자급률이 낮아서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수입농산물로 가공식품을 대량으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식량자급률도 낮아졌다는 말이다. 같은 시기에 나타난 현상을 두고 무엇을 원인으로, 무엇을 결과로 보는가로 이렇게 교묘히 말장난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말장난으로 국민들을 속이려 하지 말고 제대로 표시나 해라. 식품기업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다음 번에는 된장, 고추장도 GMO라고 의심하는 이유가 되고 있는 비의도적 혼입률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김은진교수 고려대학교 법학 박사.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농촌진흥청 유전자변형농산물 전문가 심사위원회 심사위원. 국립수산과학원 유전자변형수산물전문가심사위원회 심사위원, 한국농수산식품의약법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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