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대표의 <단계적 퇴진론>을 비판한다

▲ 사진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4일 박근혜 대통령의 알맹이 없는 2차 사과 직후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소위 <단계적 퇴진론>을 제기했다. 내용인 즉 ▲별도 특검과 국정조사, 대통령 조사 수용 ▲권력유지용 일방적 총리 후보 지명 철회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 떼는 것과 국회 추천 총리 수용 등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당 차원에서 국민과 함께 정권 퇴진 운동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핵심은 전제조건이 충족되면 정권퇴진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최근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내용과 같다.

주지하듯이 조선일보는 중앙 지도력이 파산한 새누리당을 대신해 비박계 수구보수집단의 지휘부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사망선고받은 지난달 26일 향후 수구보수세력의 기본적인 정국대처방향을 사설에서 밝힌 이래 거의 매일 그때그때의 구체적인 정국대처 방향을 사설과 칼럼으로 내놓고 있다.

추미애 대표가 요구한 세 가지 전제조건과 일치하는 조선일보의 입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박 대통령은 이 시간 이후로 국내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선언하고 그 분명한 행동으로 여당을 탈당해야 한다”(사설.10.26 <부끄럽다>)▲“진상 규명과 국정 수습은 선후(先後)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갈 수밖에 없는 문제다. 어차피 검찰 수사에 이어 특검까지 예정돼 있다.” (사설. 11.1 <野, 국정 마비 즐기는 것 아니라면 거국 내각 앞장서라>) ▲ “박 대통령이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김 내정자 지명을 철회하고 국회에 새 총리 추천을 요청하는 것 외에는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사설.11.4 <대통령과 與野 대표 바로 만나 국정 수습 논의를>) 사실상 조선일보가 민주당보다 먼저 청와대에 같은 요구를 하였다. 소위 이 땅의 정통 민주세력이라는 제1야당과 친미친일의 대명사, 수구보수세력의 원조가 이처럼 뜻을 같이하는 장면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조선일보가 이 같은 방안을 내놓은 목적은 단 한 가지다. 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미 국민의 지지를 완전히 상실한 박근혜 정권과 집권 9년 동안 무능과 독선, 부정과 반칙으로 너덜너덜해진 새누리당을 재포장하여 권력의 한 자락이라도 차지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산물이다. 지금과 같은 국기문란 사실상의 헌정중단 사태를 초래한 것은 비단 박 대통령 일파만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조선일보도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조선일보가 사설 제목대로 진정 ‘부끄럽다’고 하고 그 책임을 안다면 마땅히 그에 대해 최소한 자체 정간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보여주는 모습은 자신들이 어느새 민주세력이라도 되는 양 정권을 비판하고 이리저리 훈수짓을 하면서 차기를 도모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전히 국민의 하야요구를 무시하고 나아가 “더 큰 위험한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등의 협박까지도 하고 있다. 후안무치하다.

적어도 민주당이 조선일보의 이런 의도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의 하야 요구가 압도적임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수구세력과 보조를 맞추어 마치 고심 끝에 나온 요구를 하는 것처럼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만약 민주당, 조선일보의 요구대로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고 야당이 동의하는 총리를 세워 소위 거국내각을 세운다면 국민들의 정권 퇴진 요구는 잦아들 것이라고 보는가. 또 그렇게 되어 식물대통령이 계속 자리를 지킨 상태에서 총리에게 권력이 이양되면 그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점에서 민주당은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않다. 민주당은 모호한 태도로 눈치보기를 하고 있다. 오히려 조선일보가 분명히 그다음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그다음 일정으로 제시한 방안은 개헌이다. 여야를 두루 넘나들었던 김종인이나 손학규 전 대표를 거국 총리로 내세워 단기간에 개헌을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개헌의 내용이 기존 주장하던 내각제나 이원집정제가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데 초점을 맞춘 개헌”을 제안하였다. 즉 “실질 권한을 가진 총리제도와 함께 대통령과 검찰을 완전히 분리하는”(양상훈 칼럼. 11,3 <거국 총리가 개헌하고 조기 大選을>) 개헌.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점 하는 개헌이 복잡한 셈법이 교차하여 시간이 많이 걸리는 내각제나 이원집정제 개헌보다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민주당이 당론으로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지난 총선 이후 당 정책연구원인 <민주정책연구원>이 발간한 <4.13 총선 평가와 더민주의 진로>, <협치의 권력구조 : 분권형 대통령제>에서 제안된 개헌안이다. 이 문건은 총선 이후 민주당의 기본 성격을 “타협의 정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수권정당”으로 정식화하였다. 그 타협의 정치를 제도화한 것이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것이다. 민주당이 총선 승리 이후 일관되게 강조한 ‘협치와 타협의 정치’는 모두 이 문건에 나온다. 지금까지 국민의 강력한 분노와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와 타협을 앞세우며 국민의 뜻을 배신해온 민주당의 태도는 바로 이런 평가와 지향에 있는 것 같다.

사실 민주당의 기회주의적 행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까운 사례만 보아도 사드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세월호 특조위 연장과 특검은 하겠다 해놓고도 지금까지도 내세운 대책이 없디. 과반수 이상을 만들어준 국민의 염원을 뭐 한 가지라도 실현한 게 없다. 이제는 아예 비박계와 국민의 당까지 합쳐 소위 ‘비상시국회의’라는 걸 추진하고 있다. 노골적 야합이다. 이게 어찌 서민과 중산층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제1야당이 보일 태도인가.

새누리당 비박계의 다수는 이명박의 직간접 영향권 내에 있다. 이들 역시 이명박 전정권 시절 나라를 망쳐놓은 일등 공신이다. 오늘날 ‘헬조선’의 시초가 이명박 전 정권이다. 그럼에도 부끄러움도 모르고 이명박 본인이 직접 나서 “차기 정권을 반드시 내 손으로 창출하겠다”라고 언론에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이명박계는 비단 새누리당 비박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재호 전의원이 주도한 ‘늘푸른한국당’에도,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주도한 개헌 그룹인 ‘새 한국의 비전’에도 그리고 국민의 당내에도 퍼져있다. 이들이 자신을 소위 ‘합리적 보수’요 ‘개혁적 보수’라고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바로 이들과 이해를 같이한다. 누구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민주당이 이들과 손 잡는다는 것은 곧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뜻이다. 이들은 청산의 대상이지 협력의 대상이 아니다.

지난날 민주당은 최소한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 6월 항쟁 당시 김대중,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여 전두환 군부정권의 장기집권을 막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 적어도 이후의 분열은 차치하고라도 중요한 결정적 시기에 민주당은 국민의 뜻에 따라 선두에 나서서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것이다. 이것은 한국 민주화 역사의 중요한 전통이다. 더구나 지금의 민주당은 6월 항쟁 당시 앞장서 싸웠던 당사자들이 지도부로 있다. 그럼에도 그 전통을 부정하고 차기 정권의 유불리나 따지면서 눈치나 보는 행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추미애 대표, 우상호 원내대표는 역사의 평가가 무섭지 않은가.

정세 전환의 결정적 시기에 누구와 손잡고 누구와 대립할 것인가는 자신과 민중과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절대적 기준이다. 역사의 정의는 항시 민중과 민족의 편에 선 자들만을 기억할 뿐이다. 작은 이해를 앞세워 대의를 놓친다면 결국 파산의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제라도 국민의 명령에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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