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하의 저공비행]

▲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리본 조형등

아이들은 봄에 떠났지만 봄에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봄에도 돌아오지 않았고 그 다음 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아도 봄마다 꽃이 피고 비가 내렸다. 떠난 아이들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더 멀리 떠나버렸다.

비오는 날, 진도바다로 떠났다. 마음보다 발이 먼저 떠났다.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처럼 내가 나를 떠났다. 생애 처음 홀로 찾는 진도바다. 세월호 침몰 1주기 얼마 후였다.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남은 제주4·3추념식을 외면하고 구럼비 바위가 사라진 강정으로 갔다가 돌아온 다음이었다. 강정바다의 해군기지 건설현장으로 가는 아스팔트 도로. 그 도로에 나란히 찍힌 노란색 발바닥 도장 위로 벚꽃과 유채꽃들이 떨어져 있다. 꽃들은 목이 꺾여 빛깔을 잃었다.

진도 팽목항에는 구럼비의 노란 깃발이 세월호의 노란 리본으로 바뀌어 있었다. 깃발은 펄럭이지만 리본은 펄럭이지 않는다. 깃발은 머리 위에 있지만 리본은 가슴에 있다. 깃발은 글이 있지만 리본은 글이 없다. 깃발은 말이 필요하지만 리본은 말이 필요 없다. 깃발은 바람 따라 방향이 바뀌지만 리본은 바뀌지 않는다. 바람 속의 깃발은 차갑지만 가슴속의 리본은 따뜻하다. 리본과 가슴은 체온을 나눈다. 가슴은 리본에게 피를 전달한다. 리본은 심장에 꽂혀 있다.

팽목항을 찾은 학생들의 명찰마다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아이들도 그랬고 어른들도 그랬다. 모두 자기 이름을 버렸다. 때로는 자기 이름을 버려야 할 때가 있다. 높은 산 홀로 높을 리 없고 낮은 산 홀로 낮을 리 없다. 지금이 그때다. 이름 없는 노란 리본들이 모여 진도바다의 물결을 이룬다. 물결이 거대한 파도로 변하는 것은 태풍이 올 때이다. 지금은 산개한 바람이 깃발 아래로 결집하는 태풍전야이다.

팽목항의 가는 빗줄기가 내 가슴에 대못처럼 박힌다. 내 가슴을 관통한 대못은 다시 바다를 관통해 아이들의 영혼에 박힐 것이다. 불현듯 넓은 진도바다가 작은 욕조로 변해 나를 급습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있다. 나에게도 있다. 난 생사가 오가던 ‘물’과의 깊은 악연이 두 번 있다. 10살 때 익사 직전에 살아난 출렁거리는 강과 27살 때 물고문으로 신체포기각서를 쓰던 찰랑거리는 좁은 욕조다. 수평으로 찰랑거리던 욕조의 물이 강처럼 수직으로 출렁거리는 순간, 빛은 꺾여 혼절한다. 난 그 혼절을 수없이 겪어 오랫동안 내 인생에는 아예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자기최면까지 걸었다. 물고문을 부정했다. 그것만이 물한테 박살난 내 몸과 정신을 내 스스로 구조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였다.

그러나 비상구는 어둡고 좁았다. 한낮의 빛도 날아오는 화살처럼 보였고, 한밤의 어둠도 복면을 쓴 것처럼 보였다. 여럿이 함께 있을 때는 웃고 떠들며 달관한 도인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는 나의 가슴은 바람도 피해가는 사막의 봉쇄수도원이었다. 27살 물고문 이후 30년 만에 내 가슴의 쪽창을 조금 열어본다. 바람이 피하지 않고 들어온다. 쪽창을 조금 더 연다. 바람이 조금 더 들어온다.

그동안 난 여러 번 팽목항으로 가다가 돌아서고 말았다. 마음이 달릴수록 몸은 더욱 굳어졌다. 여전히 나에게는 넓은 진도바다가 좁은 욕조로 보인 탓이다. 평생 먹을 물을 하루에 다 먹은 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욕조로 보인다. 나에겐 이 세상도 작은 욕조이고 그 욕조가 이 세상에서 가장 깊다. 상처와 죽음은 넓이에 있는 게 아니라 깊이에 있다. 그 깊이 때문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래보다 위로 치솟는다. 아이들은 거꾸로 깊이 가라앉았다. 그들의 영혼에 깊이 박힌 대못이 떠오를 때마다 아득해진다. 아무도 뽑을 수 없고 또 뽑을 수도 없는 못이기에 파도치기 전에 거품이 먼저 일었는지도 모른다. 상처는 더 깊은 상처가 위로하고, 죽은 자는 더 먼저 죽은 자가 위로할 뿐이다.

지금 아이들의 상처는 죽음보다 더 깊다. 죽음은 결과이지만 상처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배에서 바다 아래까지 그 긴 극한의 과정을 눈 뜬 채 한 단계씩 겪었다. 그 극한의 과정을 겪은 이들이 또 있다. 아이들의 부모들이다. 바로 내 앞에서 내 아들과 딸이 탄 배가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는 부모들의 심정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들은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단 몇 시간 만에 다 겪었다. 상처의 과정을 보는 그 몇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진짜 고통은 설명되지도 표현되지도 않는 고통이다. 부모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진도바다 맹골수도에는 9명의 실종자들이 갇혀 있다. 여전히 세월호 침몰 때처럼 인양도 미적거릴 뿐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자는 데 이렇게 이유가 많은 것은 처음 본다. 모든 상황이 증거인멸을 위한 수순으로 보일만큼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본능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몸이 저절로 뛰어든다. 몸에 화살이 박히면 우선 빼고 봐야 한다. 정신은 불순하고 몸은 정직하다. 지금 아이들이 필요한 것은 정신이 아니라 몸이다. 아이 엄마들은 바다를 보며 통곡하고 파도가 치면 혼절한다. 내 아이가 저 차가운 물속에서 나를 부르고 있다면 누군들 제정신이겠는가.

우리네 인생도 바흐의 마지막 ‘푸가의 기법’처럼 어느 날 뚝, 끊어지는 미완성곡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기억하는 동안만큼은 미완성곡이 아니다. 기억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억투쟁이다. 그러므로 잊지 않겠다는 노란 리본은 분노와 진실을 탁본한 붉은 심장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배는 딱 한 번만 뒤집어져야 한다. 물의 세(勢)라는 민심이 분노했을 때다. 그 외에는 모두 부당하다. 오래 전에 본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속의 대사가 자꾸 내 가슴을 찌르는 것도 단순히 먼저 산 자의 자책감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한다. 난 반드시 국가의 죄를 응징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원인은 거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 때문이다. 바로 여러분들이 그동안 책임을 방기했기 때문이다."

4.16 세월호 이후 모든 바다는 진도바다이고 모든 슬픔은 팽목항 슬픔이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아서 죄인이다. 국가와 국회를 믿고 기다린 죄.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죄이다. 아이들은 IMF난파선에서 출생해 세월호난파선에서 사망했다. 우리도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세월호난파선에 타고 있다. 맹골수도는 도처에 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것인가. 아이들의 영혼이 묻는다.

 

 

경북 영일에서 태어나 부산 혜광고와 경희대 국문과 졸업했다. 1982년 필명 ‘이 륭’으로 <시운동>에 연작시 ‘존재의 놀이’를 발표하면서 등단해 그해부터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다. 1987년 ‘제주 4·3항쟁’의 학살과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석방 이후 10년의 절필 동안 전민련과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 실행위원, 국제민주연대 인권잡지 <사람이 사람에게> 초대 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시집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한라산>, 성장소설집 <양철북>, 산사기행집 <적멸보궁 가는 길>, 번역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프리모 레비 지음) <체 게바라 시집>(체 게바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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