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지하 환승통로에서 열리는 김광성작가의 만화전시

그가 그린 만화 속 30년대 '경성의 밤'은 코발트블루다. 노란 수은등 불빛이 따뜻한 경성의 밤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모습으로 서있다. 시대의 암울함이 차가운 색채로 느껴진다. 염천교 아래로 뿌연 연기를 날리며 달리는 기차와 시골 간이역 같은 서울역 주변은 활동영화처럼 잔잔한 감동을 준다.

1934년 조선무성영화로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청춘의 십자로’ 주인공들과 ‘청춘의 십자로’가 발견되기 전까지 현존하는 제일 오래된 영화였던 1936년 작 ‘미몽’에 나온 당시 남대문, 용산역 주변. 1941년 영화 ‘집없는 천사’에 나온 ‘청계천과 판자촌. 1946년 영화 ‘자유만세’에 나오는 종로와 북촌. 1956년 영화 ‘서울의 휴일’에서 볼 수 있는 독립문과 한강유원지, 정동길. 1956년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자유부인’의 명동, 옛 국회의사당. 

신상옥감독의 영화 ‘지옥화’와 여주인공 최은희,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의 김희갑과 도금봉, 61년 영화로 한국영화 최초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은 ‘마부’의 장동휘. 신성일, 엄앵란을 부부로 맺어준 1964년 영화 ‘맨발의 청춘’. 4.16탑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진 127번 버스와 안내양의 모습이 애잔한 영화 ‘도시로 간 처녀’....,

서울역 지하철 1․4호선 환승통로에서 지난 14일 개막해 오는 11월 11일까지 전시되는 만화가 김광성작가의 ‘그리다, 옛 서울展’은 좀 특별하게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환승통로의 양 벽면에 전시된 작품 속에는 옛 영화의 장면과 낯익은 배우들, 옛 서울풍경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애잔한 추억거리로, 젊은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서울과 옛 서울풍경을 비교해볼 수 있는데, 그 자체가 흥미로워 통로를 지나다보면 ‘동백아가씨’나 ‘장충동 고개’같은 옛 가요가 흘러나올 것 같은 착각도 든다.

▲ 동료작가들과 작품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김광성작가

이번 전시는 서울시가 서울역 일대 역사문화자원을 알리고 시민들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서울풍경을 그려온 이희재 ․ 김광성 ․ 박재동 등 국내 대표 만화가 3인의 릴레이전시로, 지난 9월 서울시청 로비에서 있었던 이희재작가 전시에 이어 두 번째다.

뒤를 이어 전시할 박재동 작가와 함께 2006년부터 서울 전역을 다니며 드로잉과 전시,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는 작가 모임 ‘달토끼’의 구성원인 김광성작가는 영화,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기록과 자료를 기반으로 서울의 옛 풍경들을 따뜻한 수묵 담채로 묘사한 작품으로 지난 4월 개인전시전을 가졌었다.

특히 그의 작품은 옛 영화처럼 와이드 화면에 구성된 작품에 당시 거리와 건물,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까지 상세하게 묘사돼 있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화의 컷처럼 장면 장면에 담겨져 있을 뿐 아니라 마차와 전차, 증기기관차, 화신백화점, 청계천 판자촌, 한옥이 즐비한 북촌 거리 등등 이제는 사진으로나 볼 수 있는 서울의 변천사를 한 눈으로 볼 수 있어 사료사적 가치로도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시 개막식에 참석한 이희재 작가는 “50년대 전쟁 상황과 풍경을 많이 그렸던 고바우 김성환선생의 작품은 당시의 역사적 사료로 가치가 클 뿐 아니라 세월이 더 지나면 조선시대 김홍도와 같은 풍속회화의 거장으로 불릴 것”이라며 김광성작가가 그린 서울풍경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옛 영화를 보면서 당시의 시대상과 거리풍경을 담는 즐거움이 컸다”는 김광성작가는 이번 전시된 작품들은 빛바랜 장면 속 풍경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로서 공감하는 정한과 연민 가득한 정경이자 자화상이기도 하다며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만화가로 살아갈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는 전시소감을 전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김광성작가는 회화를 전공하고 한국미술대상전 특선을 수상했으며 만화가로는 1988년 <자갈치 아지매>로 데뷔했다. 1993년 제1회 한국만화가협회상 신인상과 2005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로마 이야기>, <나비의 노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 우리만화연대 회장을 역임했다. 

▲ 전시 개막식에서 즉석 케리커처를 그려주고 있는 김광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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