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 교수의 ‘한국문학의 필화사건’

'시 분야' 첫 필화사건 <오적>의 작가 김지하의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이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 저항한 대표적 시인으로 1941년 2월 4일 목포에서 태어났으며, 원주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와 중동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 뒤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미학과에 입학하여 졸업했다. 1969년 시 ‘황톳길’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고,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 오적필화사건 및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옥고를 겪었다. 

 

▲ 시집 '오적'에 나온 삽화

2. 작품 줄거리

김지하는 대한제국에서 을사늑약 체결에 찬성했던 ‘을사오적’(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다섯 사람)을 빗대어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다섯 명의 도둑’으로 풍자하여 담시 ‘오적’을 썼다.

김지하는 오적을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의도적으로 ‘개견(犬)’을 변(犭)으로 하여 ‘개’를 연상하게 하고 또 ‘원숭이(오랑우탄)’를 뜻하는 단어를 만들어(조어(造語)) 사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재벌의 재(財)는 미친개 제(狾), 국회의원의 회(會)는 간교할(교활할) 회(獪), 의(義)는 개 으르렁거릴 의(狋), 원(員)은 원숭이 원(猿), 고급공무원의 원(員)은 돼지 원(獂), 장성의 성(星)은 성성이(오랑우탄) 성(猩), 차관의 차(次)는 개미칠 차(犭差)를 차용하는 식이다(송영순, 2007)

 ‘오적’을 뜻하는 조어(造語, 새로 만든 말)로 된 한자

이 시는 400행에 달하는 장시(長詩)이므로 그 가운데 일부 내용을 인용한다.

詩(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흣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엔 으뜸

我東方(아동방)이 바야흐로 단군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고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賢君良相(현군양상)인들 세상 버릇 盜癖(도벽)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 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폭 五賊(오적)의 소굴이렷다. (……)

 

첫째도둑 나온다 재벌이란 놈 나온다. (……)

저놈 재조 봐라 저 재벌놈 재조 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치고 계자치고 고추장치고 미원까지 톡톡쳐서 실고추 파 마늘 곁들여 날름

세금 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

 

또 한 놈이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 (……)

혁명이닷, 舊惡(구악)은 新惡(신악)으로! 개조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重農(중농)이닷, 貧農(빈농)은 離農(이농)으로!

건설이닷, 모든 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사회정화닷, 정인숙을, 정인숙을 철두철미하게 본받아랏!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

 

세째놈이 나온다 고급공무원 나온다. (……)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못해 문들어져 汚吏(오리)가 분명쿠나 (……) 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없어, 책상위엔 서류뭉치, 책상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請(청)해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구름아 물어보자 料亭(요정) 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탈없다더냐.

 

네째놈이 나온다 장성놈이 나온다. (……)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 한 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 먹고 (……)

부속 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 놈 군기잡자 주어패서 영창에 집어놓고

열중쉬엇 열중열중열중쉬엇 열중 (……)

 

마지막 놈 나온다.

장차관이 나온다. (……)

굶더라도 수출이닷, 안팔려도 증산이닷, 餓死(아사)한 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놓아 가미사마 배알하잣!

째진 북소리 깨진 나팔소리 삐삐빼빼 불어대며 속셈은 먹을 궁리

검정세단 있는데도 벤쯔를 사다놓고 청렴결백 시위코자 코로나만 타는구나 (……)

 

오적(五賊)이라 하는 것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소.

으흠,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정녕 그게 짐승이냐?

그라문이라우, 짐승도 아조 흉악한 짐승이지라우. (……)

▲ 소리꾼 임진택선생은 '오적'을 판소리로 만들어 전국을 다니며 공연했다.

* 소리꾼 임진택씨의 판소리 '오적' https://www.youtube.com/watch?v=waSI-y4xGmQ

 

채형복 교수는 프랑스 엑스 마르세유 3대학에서 ‘유럽공동체법’을 전공했다. 이와 관련된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현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으며 시인이기도 하다. <늙은 아내의 마지막 기도>, <저승꽃>, <우리는 늘 혼자다> 등의 시집을 펴냈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