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위원장 창간 축하 옥중서신]“노동개악 맞선 파업은 당연한 선택”

지난해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플러스 창간을 축하하며 옥중서신을 보내왔습니다.[편집자]

새 봄이 찾아오는 구치소에는 아침이면 까치가 울고, 밤이 되면 까마귀가 슬피 웁니다. 까치 소리와 함께 들려온 민플러스 창간 소식, 현장을 찾고 대중과 함께하는 새로운 언론을 만들겠다는 포부는 이 곳 하얀 방에서도 반가운 소식입니다. 언론협동조합 담쟁이의 이름처럼, 더딜지 몰라도 높은 담을 훌쩍 넘어갈 수 있는 현장언론이 되어주시길 감히 기대해 봅니다. 창간에 즈음하여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몇 가지 말씀을 보태고 싶어 이렇게 글을 더합니다.

감옥살이가 처음은 아닙니다. 저는 ‘해고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를 외치면서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한 죄로 3년의 구속 생활을 마치고 2012년 대선 전에 출소했었습니다. 3년의 감옥생활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해고된 동지들의 연이은 죽음이었습니다. 정리해고자 낙인이 찍힌 노동자들은 어떻게든 살아보려 수백 군데 이력서를 써내며 발버둥을 쳐봤지만 허사였습니다. 단란했던 가정은 파탄이 났고, 인간관계는 단절됐습니다. 절망을 안은 해고자들이 기진맥진해 다다른 곳은 죽음이었습니다.

그 상처가 다 아물지도 못한 지금, 정부와 여당은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을 사장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행정지침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해고는 사용자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한 것이 그나마 노동자의 삶을 지켜주는 빗장이었지만, 정부는 180쪽에 달하는 시행령과 참고서를 뿌리며 이 빗장을 풀겠다고 합니다. ‘공정 인사지침’이니, 합리적 기준의 ‘성과-퇴출제’니, 쉬운 해고가 아니라 ‘일반해고’니, 온갖 꾸미는 말은 많지만 결국은 노동법을 뿌리째 흔드는, 이 땅에서 민주노조의 싹을 뽑겠다는 불법 행정독재입니다.

정부의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은 불법 행정독재

파견업종 제한을 풀고,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모든 국민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현대판 노예제도입니다. 학생 때는 아르바이트로, 청년이 돼서는 저임금 인턴으로, 이어서 기간제-단시간 일자리를 전전하다, 거기서 또 밀려나면 파견노동자로 살라는 말입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하면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고통 받으라는 강요입니다.

재판장의 판사는 제게 왜 파업을 선동했냐고 묻습니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노동개악을 막기 위해 파업을 했습니다. 해고가 일상인 사회를 막고자 했습니다. 사실상 노동조합을 하지 말라는 노동개악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노동조합은 존재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개악에 맞선 민주노총의 파업은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사용자가 정한 기준으로, 사용자가 정한 절차에 따라, 사용자가 정한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해고하는 세상, 민주노총은 이것을 막기 위해 투쟁을 멈출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제 몸을 지킬 민주노조조차 없어서,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사용자의 칼날에 무방비로 당하고 있습니다. 사용자들은 정부의 쉬운 해고 도입으로 명예퇴직금, 희망퇴직금, 위로금마저 내지 않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자본의 숙원이자, 재벌 세상입니다.

저는 개인 한상균이 아니라, 80만 조합원과 1800만 노동자의 대표입니다. 쉬운 해고와 평생 비정규직 재앙을 불러올 박근혜의 노동개악에 온몸으로 맞선 한국 민주노조의 유일한 총연맹 위원장입니다. 이 땅 모든 노동자가 비정규직 차별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고, ‘맘대로 해고’를 막아내야 하며, 모든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찾게 해야 하는 것이 조합원들로부터 부여받은 저의 책무입니다.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해 세계노동절대회가 열리는 5월1일 비록 감옥 안이지만 민주노조 파괴 탄압에 스러져 가신 한광호 열사의 넋을 기리며, 힘차고 당당하게 민중의례를 함께 하겠습니다.

노동개악에 맞선 민주노총 파업은 당연한 선택

지난해 노동개악을 막기 위한 네 차례의 총파업과 11.14민중총궐기는 박근혜 정부의 민생파탄과 노동탄압에 대해 온 국민이 울린 경종이었습니다. 그 결과 노동개악 문제는 이번 20대 총선의 주요 쟁점이 됐으며, 결국 민심은 정부의 독재회귀와 반노동자-반서민 정책 일변도에 엄중한 질책을 내렸습니다. 노동개악은 물론, 역사교과서 국정화 및 세월호 진상규명 외면 등 현 정부의 오만과 독선에 민중이 내린 심판이었습니다. 많은 외신도 ‘정부의 노동개악 강행과 이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총선 결과의 요인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패배가 곧바로 우리 민중의 승리가 되진 못했습니다. 총선공투본을 통해 8명의 당선자를 내며 더 큰 승리를 위한 의미 있는 발판을 만들었지만, 더 큰 투쟁과 더 넓은 진보정치를 만들어 나가라는 명령도 함께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총선이 끝나기 무섭게 보수정치권은 구조조정 운운하며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정리해고-구조조정은 경제위기를 불러온 정부와 자본에겐 면죄부를 주고, 열심히 일해 온 노동자가 그 책임을 모두 지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어떤 노동자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직까지 경영진이 경제위기와 경영실패의 책임을 졌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대우조선해양 전·현직 최고경영진들은 “수조원대의 부실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말만 되풀이 하며 책임 회피에 급급했고, 이를 감독해야 할 의무를 지닌 산업은행도 부실이 심화되는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음이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경영진과 국책은행의 과오를 왜 노동자들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단 말입니까.

경제위기 부른 정부·자본에 면죄부, 노동자에 책임전가

지금 필요한 것은 구조조정 칼춤이 아닌, 법정 노동시간 35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나누기와 같은, 보다 적극적인 고용유지 정책입니다. 또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통해, 구조조정 광풍에 맞서 임금-고용을 지키는 데에 노동자 스스로 나설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통해 보장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지난 1차 공판을 앞두고, 저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평생을 뼈 빠지게 일만 했는데, 내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이라곤 절망밖에 없다”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나쁜 아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쉰 살이 훌쩍 넘은 나이가 돼서야 이런 생각을 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적혀있었습니다. “노동자의 ‘노' 자도 모르고 살았던 내가 이제사 다 늙어서 조합원이 됐다”는 말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이 희망이 되는 걸 이제사 알아서 너무나 기쁘다고 적혀있었습니다.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왔지만 지금 이 순간이 최고로 행복하다 적혀있었습니다. 힘들지만 민주노총을, 민주노조를 잘 지킬 테니, 위원장 동지도 힘내라고 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늙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바라는 세상,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저는 물론이고 아마도 이 땅 모든 엄마, 아빠의 바람일 것입니다.

지금 노동자의 삶 앞에는 수많은 질곡이 있으며, 민주노총에게는 정부와 자본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노동자-민중을 대변해야 할 수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노예 노동을 넘어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주35시간 노동제를 쟁취해서 전 국민 삶의 질을 높여 내는 것, 지금도 재앙이라 말하는 소득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쟁취하는 것, 저임금 노동자의 삶에 미래를 설계할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는 것, 경제위기의 진짜 주범인 재벌의 사회적 책임-조세 책임-사용자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것, 간접고용 특수고용 등 비정규직과 교사-공무원 등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그 길을 뚜벅뚜벅 가고 있습니다. 가는 길이 험하고 어렵다는 것을 잘 알지만, 1800만 노동자와 역사가 부여한 숙명의 숙제를 다 할 것입니다.

언론협동조합 담쟁이와 현장언론 민플러스의 창간을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2016. 4.

서울구치소에서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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