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인제노와 이나진 개인전

서촌의 거리를 걷다보면 눈에 띠는 갤러리들이 있다. 그중 골목의 한 귀퉁이에 있는 갤러리 ‘자인제노’는 몇 년째 갤러리콘서트를 열고 있는 좀 색다른 곳이다. 10월을 시작하는 지난 토요일에도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콘서트 소식을 듣고 가을바람따라 서촌으로 발길을 옮겼다.

▲ 갤러리 자인제노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콘서트를 연다. 사진은 지난 10월 1일 해설이 있는 국악콘서트 중

락음국악단에서 활동하는 정영은, 장현숙, 조수민 등 세 명의 국악인들이 꾸민 국악콘서트는 해금과 신디사이저, 장고와 어우러져 연주된 ‘흔들의자’라는 곡처럼 전시된 그림 위에 앉아서 흔들리는 듯 했다. 불과 20여 명의 관객들은 하우스파티에 초대돼 그들만을 위한 연주를 듣는 듯 편안한 분위기로 음악을 즐겼다.

그런데 이날 갤러리 콘서트에는 아주 특별한 관객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왕관을 쓴 어린 동물들이 귀를 쫑긋거리며 국악의 멜로디에 심취해 있는 듯한 갤러리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갤러리콘서트를 색다른 풍경으로 만들어낸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이날부터 오는 10월 15일까지 전시회를 갖는 ‘이나진 개인전’의 그림으로 그려진 아기동물들이다.

개와 고양이, 원숭이, 팬더곰, 사슴, 기린, 사자, 말, 돼지 등등의 아기 동물들이 왕관을 쓰고 순진한 눈으로 응시하는 그림은, 멀리서 보면 사진 같기도 한, 아주 세밀한 그림이었다. 마치 동물들의 털이 진짜처럼 윤이 나고 반짝였는데, 작가에게 물어보니 직접 개발한 ‘스퀴징기법’이라고 했다. 

▲ 이나진작가의 개인전 작품. 아기동물들의 모습이 귀엽다

 

물감을 직접 만들어 튜브에 넣고 짜는 ‘스퀴징기법’은 물감의 반짝임이 반사되고 그어 내린 선의 두께가 그림자를 만드는데 이것이 진짜 동물의 털같이 수북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내친 김에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나진작가에게 작품에 대해 물었다. 

홍익대에서 미술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동경여자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는 이작가는 유네스코 잡지 삽화작가이며 일본 국립신미술관 춘양전, 서울오픈페어 신인상, 부산미술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한 작가다.

이작가는 아기동물 그림들에 대해 “흐르는 시간 속에 멈추어 있는 현재를 상징하지만 작가의 어린 시절일 수도 있고 그림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어린 시절에 대입해도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어린 딸에게 세상의 이야기를 그림책처럼 보여주고 싶어 그리기 시작했다는 아기동물그림들에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과거의 시간으로 반복해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 어른이 되고 나서도 진정한 어른에 가까워지기 힘든 현실 등을 아기동물의 왕관과 목걸이를 통해서 재연했단다. 영국에서 살았던 느낌을 바탕으로 왕관은 모두 영국여왕의 왕관으로 그렸는데, 천진난만한 아기동물들이지만 그 무게를 견디어 내는 두려움이 눈빛에 담겨 있고, 그것은 세상에 대한 경계의 눈빛이기도 하다.

아기동물을 감싸고 있는 바탕의 흰 줄 그림에는 특별한 비밀이 숨어있는데, 동화 속 풍경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어 그림 감상의 특별하고 소소한 재미가 될 듯하다. 작가는 그림의 비밀을 이렇게 설명했다. 

“원근감으로 인해 마치 실제처럼 보이는 디오라마(diorama)식 배경 위에 축소 모형들을 배치했는데 배경 속에는 꽃을 한 아름 안고 있는 작은 천사들, 오페라 극장에 종이인형 음악가와 발코니석의 관람객, 작은 장난감 등이 있다”며 여기에는 작가의 어릴 적 추억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한다.

콘서트를 보러 갔다가 딸에 대한 사랑을 담은 특별한 아기동물그림까지 덤으로 볼 수 있었던 ‘자인제노’의 갤러리콘서트는 어릴 적, 즐거운 소풍에 갔다가 뜻밖에 찾은 보물쪽지 같은 선물이었다. 

▲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이나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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