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본에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러시아의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과 일본은 러시아를 몰아내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우크라이나는 전쟁 상대국인 러시아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 한다. 과연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러시아를 퇴출시키는 것은 가능할까.

미의회, 러시아 안보리 퇴출 방법 모색하다 포기

러시아를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이번 77차 유엔총회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러시아는 ‘특수군사작전’이라 부른다) 직후 미의회에서 이 문제가 검토된 바 있다. 미 하원 소속 몇몇 의원들은 러시아의 유엔안보리 제명을 촉구하는 미의회 결의안 채택을 모색한 것이다.

유엔헌장 23조를 개정하여 러시아를 제명하자는 방안이었다. 유엔헌장 23조는 안보리 구성을 적시하고 있다. 안보리는 15개국으로 구성되며, 이들 중 “중화민국, 불란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영국 및 미합중국”은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갖는다는 내용이다. 미국 의원들은 유엔헌장 23조를 개정하여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을 상임이사국에서 삭제하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미의회에서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설령 미의회에서 그런 내용의 결의안이 통과되더라도 러시아의 안보리 퇴출은 산넘어 산이기 때문이다. 미의회 결의안에 따라 미국이 그같은 절차에 착수한다고 하더라도 유엔총회라는 첫 번째 관문을 넘어야 한다. 유엔헌장의 수정은 회원국 2/3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유엔 총회에서 가결되더라도 두 번째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유엔총회는 안보리의 승인을 얻어야 효력이 발생한다. 유엔안보리의 의결은 15개국 중 2/3 즉 10개국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 10개국 안에는 5개 상임이사국 전원의 동의가 포함된다. 즉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단 한 개의 국가라도 반대하면 안보리 의결은 이뤄지지 않는다.

안보리의 권한은 상상 이상이다, 하물며 상임이사국이야······

현재 뉴욕에서 77차 유엔총회가 진행되고 있다. 총회는 국제평화와 안전에 관해 그리고 군비축소 및 군비규제에 관해 회원국이나 안보리에 권고할 권한을 갖는다. 그러나 권고는 권고일 뿐이다. 아무런 강제력을 갖지 못한다. 그마저도 안보리가 다루고 있는 사안의 경우 안보리의 요청이 있지 않는 한 권고조차도 하지 못한다.

유엔 회원국의 가입과 제명도 마찬가지다. 유엔회원국 가입은 안보리의 권고에 따라 유엔총회가 결정한다. 안보리의 권고가 없으면 총회는 결정할 수 없다. 회원국의 권리를 정지하는 것도 안보리 권고가 있어야만 총회에서 결정할 수 있다. 정지된 권리 회복은 유엔총회와 무관하게 안보리가 결정한다. 제명 역시 안보리의 권고에 따라 총회에서 결정된다.

이렇듯 안보리의 권한은 상상 이상이다. 2년 임기인 비상임이사국은 연임이 불가능하며, 해마다 5개 국가씩 교체된다. 이들 비상임이사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5개국, 동구유럽에서 1개국, 남미에서 2개국, 서구 및 기타에서 2개국으로 구성된다. 이에 반해 상임이사국은 영구적으로 지위를 유지한다. 이들 상임이사국은 소위 ‘거부권’도 갖는다. 14개국이 찬성하더라도 상임이사국 중 한 나라가 거부하면 그 안건은 통과되지 못한다.

이번 총회에서 러시아 제명 이야기가 나오자 중국과 러시아의 대표들이 뉴욕에서 회동을 가졌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누구도 러시아의 이러한 권리를 박탈해선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거부권’을 갖고있는 또 하나의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분명한 반대 의사를 피력한 것이다. 유엔총회에서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안보리에서 러시아를 퇴출시킬 수도, 유엔에서 제명할 수도 없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교체 사례: 대만에서 중국으로, 소련에서 러시아로

물론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교체된 사례는 두 번 있었다. 대만에서 중국으로 교체되었고, 소련에서 러시아로 교체되었다. 관찰력이 있는 독자라면 유엔헌장 23조에 중화민국과 소련이 명기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가졌을 것이다. 오타가 아니다. 지금도 유엔헌장 23조엔 중국과 러시아는 없고 중화민국과 소련이 있다. 유엔 헌장이 단 한번도 개정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유엔헌장엔 지금도 중화민국(대만), 소비에트연방(소련)으로 표기하고 있다.
▲ 유엔헌장엔 지금도 중화민국(대만), 소비에트연방(소련)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교체 절차는 어땠을까. 러시아의 경우 소련의 외교적 지위를 계승했다. 따라서 별다른 절차를 밟지 않았다. 그래서 러시아의 유엔 가입일은 소련의 가입일로 명기되어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은 다시 복잡한 절차를 밟았다. 유엔 창립 당시 중화민국(장개석 국민당 정부, 이하 대만)은 유엔회원국이었으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71년 10월 25일 “유엔에서 갖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가지는 합법적 권리의 회복”이라는 제목의 결의안(유엔총회 결의 제2758호)이 통과된다.

이 결의는 “중화인민공화국정부 대표가 유엔에서 중국을 대표하며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임을 승인”하고 “유엔에서 합법적인 중국의 대표는 오직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대표임을 인정하며 유엔 및 관련 조직을 불법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장제스 정권 대표를 즉시 추방하기로 결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미국은 이같은 결의안에 반대했다. 그러나 당시 유엔에는 미국을 지지하지 않는 국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미국과 입장을 같이 하지 않았다. 이 결의안은 “찬성:76, 기권:17, 반대:35”로 통과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유엔총회의 결정은 안보리가 거부할 수 있지 않던가.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렇다.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할 기회조차도 갖지 못했다. 왜냐하면 유엔총회 결정에 반발해 대만이 스스로 유엔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대만이 자진 탈퇴함으로써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중국은 미국의 거부권을 ‘뚫고’ 상임이사국이 될 수 있었다. 중국은 대만에게 빼앗겼던 권리를 되찾았다. 그래서 중국 역시 유엔 가입일은 대만의 유엔 가입일로 표기되어 있다.

▲ 유엔홈페이지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1945년 10월 24일 가입했다고 소개되어 있다.
▲ 유엔홈페이지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1945년 10월 24일 가입했다고 소개되어 있다.

유엔이 기능은 사실상 무력화

이번 유엔 총회에서 많은 국가 정상들이 유엔 개혁, 유엔 가능 강화를 외쳤다. 그러나 유엔의 기능은 오히려 무력화되고 있다. 유엔은 러시아 제재를 결정할수도, 제명을 단행할 수도 없다. 사실상 유엔을 좌지우지하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더 이상 어떤 합의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러시아가 유엔 헌장을 위반했다”고 지적하며 “우크라이나와 계속 연대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과) 냉전을 원하지 않는다”고 발언의 수위는 낮췄으나 이미 미국 의회에서 대만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는 대만정책법 제정 절차를 밟고 있다.

신냉전을 상징하는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더욱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미중러 3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핵심 멤버들이다. 이들의 대결은 안보리의 무력화로 귀결된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엔 구조 상 신냉전이 진행되는 동안 안보리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한반도 유일합법정부설’은 유엔 결의가 아닌 한일기본조약의 산물

기왕 유엔 총회 이야기를 하는 김에 이번 총회 연설에서 보인 윤석열의 무지 혹은 의도적 왜곡을 지적해야겠다. 윤석열은 총회 연설에서 “UN이 창립된 직후 세계 평화를 위한 첫 번째 의미 있는 미션은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고 언급했다.

▲ 유엔총회 결의 제195호는 대한민국을 38선 이남의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 유엔총회 결의 제195호는 대한민국을 38선 이남의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1948년 12월 12일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결의 제195호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결의는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인정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유엔한국임시위원회가 감시하고 협의할 수 있는 한반도 지역에서 수립된 합법 정부”라고 명시했을 뿐이다.

유엔한국임시위원회(이하 임시위원회)는 1947년 11월 14일 한국의 독립국가 건설을 돕는다는 명분 아래 만들어진 유엔의 임시기구였다. 임시위원회가 미국의 주도 아래 만들어졌기 때문에 북측과 소련은 이 위원회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임시위원회는 38선 이북에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1948년 1월 임시위원회는 38선 이북에서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유엔총회에 보고하고,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당시 유엔총회에서는 선거가능한 38선 이남에서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5.10 단독선거였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38선 이남에서의 단독선거 결과로 수립된, 38선 남쪽을 대표하는 정부로 출범하게 되었다. 유엔총회 결의 제195호는 이같은 사실을 적시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결의안의 “this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라는 대목을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번역하지만, ‘such Government’는 “임시위원회의 감시 아래 실시된 선거에 의해 수립된 정부”라는 뜻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라는 표현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명기된다. 박정희 정권은 일본에게 식민지 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일본은 한국에게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라는 타이틀을 주는 것으로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라는 표현은 유엔의 결의가 아니라 굴욕적 한일기본조약의 산물이다.

만약 윤석열 혹은 그의 보좌진들이 이같은 사실을 몰랐다면 한국에서 정부를 운영할 자격이 없음을 의미한다. 한반도 문제에 초보적인 지식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외교를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윤석열 혹은 그의 보좌진들이 이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왜곡한 것이라면 일본에게 잘보이기 위한 발언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윤석열은 이번 총회 기간에 기시다 총리와의 ‘회담’(기시다는 애써 ‘간담’이라고 격하했다)을 성사하기 위해 온갖 굴욕적 외교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일기본조약의 산물을 의도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일본의 환심을 사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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