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국가보안법 위헌법률심판 공개변론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제2조 1항과 제7조 1·3·5항의 위헌 여부 심리 공개변론 시작에 맞춰 대심판정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이미 일곱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 헌재가 공개변론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 : 뉴시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제2조 1항과 제7조 1·3·5항의 위헌 여부 심리 공개변론 시작에 맞춰 대심판정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이미 일곱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 헌재가 공개변론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 : 뉴시스]

국가보안법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따지는 공개변론이 1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제소한 10건 중에는 필자가 피고인 사건도 있어 당사자 신분으로 방청할 수 있었다.

공개변론이 열리는 헌재 앞은 위헌을 주장하는 측과 합헌을 주장하는 양측의 거센 공방이 오갔다. 확성기에서 울리는 양측의 논거를 뒤로하고 재판정으로 들어갔다.

재판정은 엄숙하면서도 치열했다.

위헌 청구인 측 대리인은 국가보안법이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사례를 열거하며 헌법 위배 사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피청구인 법무부장관 대리인도 “수 차례 위헌 소송에서 국가보안법은 매번 합헌 판결을 받았다”라며 청구인 측 주장을 조모 조목 반박했다.

마약과 이적표현물

양측의 팽팽한 공방은 이적(적을 이롭게 하는)표현물 ‘소지’ 문제에서 균형이 깨졌다.

법무부장관 측에서 “마약과 불법무기도 소지만 하면 처벌한다”라는 예시를 들어 이적표현물 소지죄는 합헌이라는 주장을 펴자, 청구인 측은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논박했다.

청구인 측이 소지죄가 위헌이라고 본 근거는?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는 양심형성의 자유와 양심실현의 자유로 나뉜다.

▶이 중 특히 양심형성(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내면적 기초가 되는 각자의 윤리의식과 사상을 자유로이 형성할) 자유는 침해할 수도 없고, 침해를 시도해서도 안 된다.

▶양심형성 단계에서 어떤 표현물을 소지한 것만으로 그 이적성을 증명할 수 없거니와 그 표현물에 ‘이적’이라는 딱지를 붙일 어떤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쇳덩이를 만지고 있는 ‘갑’에게 “너 그 쇳덩이로 칼 만들려고 하는 거지. 그리고 그 칼로 사람을 찌르려는 거지?”라며 ‘갑’을 기소한 것과 같다. ‘갑’이 쇳덩이로 칼을 만들지, 호미를 만들지도 모르면서 ‘갑’을 칼로 사람을 찌른 범죄자로 만든 꼴이다.

법무부장관 측의 주장대로 이적표현물 소지죄가 성립하려면 첫째 ‘갑’은 쇳덩이로 반드시 칼을 만들어야 하고, 둘째 그 칼로 식재료를 다듬거나 식당에 팔지 않고 반드시 사람을 찌르겠다는 목적이 분명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고, 셋째 그 칼로 사람을 향해 휘둘러야 한다. 이 세 전제를 모두 충족해야만 범죄가 된다.

만약 첫 전제를 충족하지 못하면 양심형성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두 번째 전제를 충족하지 못하면 양심실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며, 세 번째 전제를 충족하지 못하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된다.

특히 지워진 파일까지 포렌식으로 복구해 범죄 증거로 삼는 것은 ‘갑’이 아예 쇳덩이를 구입하기도 전에 기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지죄 논쟁에서 피청구인 측이 이적표현물을 마약과 불법무기에 비유한 것은 패착으로 보인다.

이적표현물을 마약처럼 사회악으로 보이기 위한 목적이겠지만, 마약 유통과는 달리 표현물을 통한 양심형성은 헌법이 보장한 인권에 속한다. 또한 마약은 그 자체로 불법이지만 표현물이 ‘이적’이 되어 불법으로까지 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전제를 통과해야만 한다. 이렇게 질이 다른 ‘이적표현물과 마약’을 동일시한 오류를 헌재 재판관들이 모를 리 없다.

엄격한 적용이냐? 폐지냐?

피청구인 측은 줄곧 국가보안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위헌 소지가 사라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 자장면값을 알려줬다고 ‘국가기밀누설죄’를 적용하고, 서울대학교 추천도서인 ‘역사란 무엇인가?’를 함께 읽었다고 ‘이적표현물 소지‧탐독 및 배포죄’를 적용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에 찰진 욕설을 한 북한 방송을 보며 손뼉을 쳤다고 ‘동조‧찬양‧고무죄’를 적용했다. 이런 우픈 사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가보안법의 오남용 사례는 차고 넘친다.

피청구인 측은 이런 비난을 피하기 위해 1991년 국가보안법 개정(현저한 위험성 삽입) 이후 제한적 법적용으로 최근 국가보안법 적용 대상자가 현저하게 줄었다고 변론했다. 그런데 이 변론이 오히려 헌재 재판관에 의해 허가 찔렸다.

헌재 재판관은 국가보안법이 개정되어 오남용 사례가 줄었다면 이는 국가보안법 개정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최근 10년간 국가보안법 적용 사례가 현저히 준 것은 맞지만, 법이 개정된 1991년부터 2002년까지 10년 동안은 개정 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제한적 법적용에 대한 의구심을 표시했다.

실제 국가보안법 위반 사례가 줄어든 것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부터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에서는 7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엄격한 적용이란 정권의 성향에 따른 것이지 국가보안법 적용의 추세가 아니라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범죄이던 것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무죄가 되고, 또 윤석열 정부가 되면 다시 범법자가 된다면 과연 이런 법이 무엇에 필요하다는 말인가? 이는 국가보안법이 국가 안보를 위한 법이 아니라 정권 안보를 위한 법이라는 것을 실토한 것에 불과하다.

이 밖에 청구인 측 대리인은 “국가보안법 처벌 대상자는 현행 형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라고 한 김병로 전 대법원장의 말을 인용해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완강하게 주장했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