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의 구축 과정과 특징 그리고 한반도

신냉전의 본격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과 나토 정상회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공격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미 2014년부터 돈바스 내전은 시작되었다. 돈바스 내전은 우크라이나의 불안정한 정국과 미국 정치개입의 결과였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돈바스 내전이 격화된 결과였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불안정한 우크라이나 정국 – 미국의 정치 개입 – 돈바스 내전 – 러시아의 군사행동’이라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돈바스 내전 역시 정교한 이해가 필요하다. 2010년 출범한 친러 성향의 우크라이나 정부가 미국이 개입된 반정부시위로 탄핵되고 친미 성향의 새로운 정부가 등장했다. 친러 지역에서 시위가 격화되었고 새로운 정부는 시위 진압을 위한 ‘대테러작전’을 본격화했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돈바스 지역(루한스크, 도네츠크)은 독립을 시도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두 개의 공화국이 등장하게 된다. 따라서 돈바스 내전은 두 개의 독립공화국을 분쇄하려는 우크라이나 정규군과 이들에 맞선 돈바스 독립공화국 반군의 군사적 충돌이다.

민스크 협정 등 돈바스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협정은 판판히 무력화되었다. 돈바스 내전은 2018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 해 1월 우크라이나 의회는 돈바스 지역 재통합법안을 통과시키고, 돈바스의 두 독립공화국을 “임시점령지역”으로, 러시아를 “침략자”로 명시했다. 대통령은 의회동의를 거치지 않고도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그 해 4월 우크라이나 정부는 대테러작전을 종료하고 합동군작전을 시작한다. 군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합동군작전이 시작되던 날 미국의 대전차 미사일이 우크라이나에 인도되었다. 돈바스 내전과 미국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1년 러시아 군사력이 돈바스 인근 러시아 국경 일대에 집결하는 등 러시아의 군사적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미국과 러시아는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몇 차례 협상을 진행했다. 2022년 1월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8시간 동안 진행된 미러 안보회담에서 미국은 러시아군의 철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러시아는 나토 동진의 중단,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불허, 러시아 인접국 나토 무기 배치 금지를 요구했다. 협상은 성공하지 못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우크라이나 내전을 통해 무엇을 기획했던 것일까.

미국의 기획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정책보고서가 2021년 8월에 공개되었다. 미국무부 전직 관리가 미 국방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한 논문의 일부이다.

'2개전선 전쟁 회피 전략'이라는 제목을 딴 이 보고서는 2021년 8월에 공개되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에 동시에 전쟁을 벌일 수 없다. 전쟁에서 이 두 나라를 동시에 마주하지 않도록 시차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중국이 자신의 야심찬 군사 계획을 현실화하기 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으로 패배하여 더 이상 유럽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전략을 제시한다. 즉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심각한 패배를 하는 것이 동시전쟁을 회피하는 전략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가 돈바스 내전이 격화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데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2월 24일 이후 미국이 대러제재에 착수하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준 것을 설명해주기에는 충분하다.

▲ 미국무부 유럽담당 차관보인 빅토리아 눌랜드 '친러정부'를 탄핵하기 위한 반정부시위대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2013년 12월)[사진:National Public Radio]
▲ 미국무부 유럽담당 차관보인 빅토리아 눌랜드 '친러정부'를 탄핵하기 위한 반정부시위대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2013년 12월)[사진:National Public Radio]

최소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는 분명한 사실로 확인된다. 첫째, 미국은 우크라이나 내정에 개입하여 자신에게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도록 했다. 이는 돈바스 내전의 원인이 되었다. 둘째, 미국은 돈바스 내전이 발생하자 무기를 지원했다. 이는 내전이 격화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셋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자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고 동맹국들이 대러제재에 참여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이미 바이든 정부는 지난 해부터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국제적 고립과 봉쇄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왔다. 바이든 정부는 2021년 10월 ‘글로벌 공급망 회복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한국이 포함된, 미국의 14개 주요 동맹국들이 참여한 이 회의에서 바이든은 “실패할지도 모르는 단일 공급원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공급망을 다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공급망 체인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공급망 정상회의가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저지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경제적 차원의 기획이었다면, 같은 해 12월 ‘민주주의정상회의’는 정치적 차원의 중국, 러시아 고립을 위한 기획이었다. 중국과 러시아를 권위주의 정치체제로 규정하고, 이들에 맞서기 위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단결을 강조했다.

따라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러시아를 고립시키고자 했던 바이든 정부에게 더 없이 좋은 구실이 되었다. 푸틴은 ‘전쟁의 화신’이 되었고, 젤렌스키는 ‘평화의 사도’가 되었다. 세계 각국의 언론은 미국발 뉴스를 그대로 옮기기에 바빴고, 소위 전문가들은 ‘반푸틴 프레임’에 빠져들었다.

스페인 마드리드는 미국의 이같은 기획이 종지부를 찍는 장소였다. 나토 정상회의는 나토만의 회의가 되면 안되는 것이었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동맹국들도 하나가 되어야 했다. 미국은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상을 나토 정상회의에 ‘초청’했다.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러시아를 당면한 위협국, 중국을 궁극적 위협국으로 지목했다. 신냉전은 이렇게 본격화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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