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답 얻으며 차농사 짓는 차의 달인 기철씨

“차나무가 몸살을 앓으면 유난히 차꽃이 많이 피는데, 그걸 꽃차로 만드니 향이 기가 막혀요. 흰 차꽃에 녹차향이 가득 배어서.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아프고 치유하고 그러면서 사람에게 선물 하나 툭 던져주지요.”

지난 해 유난스럽게 많이 핀 차꽃으로 꽃차를 만들었던 기억을 전하는 김기철씨는 ‘자연이 좋아하고, 자연이 좋아지는’ 농사를 짓는 농부다. 쌀이나 밭농사가 아닌 차농사를 고향인 청양땅 칠갑산자락에서 짓는다. 노모와 아내랑 단출하게 셋이서 살지만, 차나무 농사만 1만평이다. 청양군 온직리 그의 집 창문에서 바라보면 듬직한 밤나무들이 있고 그 아래로 반짝반짝 빛을 내는 나지막한 초록군락이 차나무다.

▲ 청양에서 차농사를 짓는 기철씨.

농약도 화학비료도 주지 않고 밤나무산에서 자라니 야생차나 다름없다. 모두 토종이다. 토종이면 한국종이냐는 질문에 ‘원래 차란 것이 물 건너 들어온 것이니 완전 토종일까’마는 차를 오랫동안 재배하고 만들어온 본인으로서는 100년 이상 지나 우리나라 토양에 적응이 된 종자를 토종이라 하니, 본인의 차는 토종이 맞다 한다.

수익성 좋은 일본개량종, 야부기다종은 수확이 많은 다수확 품종이긴 하나 카테킨 등이 토종에 비해 적은 반면, 수확은 적지만 차가 가지는 좋은 성분은 토종이 월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랫동안 차를 공부하고 농사를 지은 그는 차에 대해서는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고, 주위에서도 그렇게 인정한다.

그가 다른 농사도 아니고 기온도 잘 맞지 않은 녹차를 선택한 연유는 이랬다. 1993년 경 우리나라 대표적인 차재배지인 하동에서 녹차재배와 녹차제조법을 배운 그는 10년을 차와 제다법에 대해 공부했다. 고향인 청양으로 내려오게 된 것은 홀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다. 귀향의 시기를 보면서 차곡차곡 준비한 그는 밤나무가 심겨진 어머니의 산에 차를 시험재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온도가 낮아서 차나무가 죽을 거라고 했다.

그도 그런 것이, 원래 차는 적어도 5도 이상의 기온과 1300~1500의 강수량이 돼야 재배가 가능한데 칠갑산자락은 온도차가 심하고 겨울에는 기온이 상당히 많이 내려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차를 아는 사람들은 안될 거라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눈도 많고 추운 지리산 700고지에서 차나무가 자라는 걸 봐왔던 그는 분명 칠갑산 자락에서도 차나무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확신했다고 한다. 차의 북방한계선을 넘어서야 하는 모험을 감행하고 5년여의 시험재배를 한 끝에 충청도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에서 유일한 다원인 ‘온직다원’을 갖게 됐다.

▲ 지난 해 유난히 많이 핀 차꽃으로 한동안 차밭이 환했다고 한다.
▲ 양숙씨가 만든 차잎 반찬

그는 차를 단순히 마시는 음료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이 자연다울 수 있도록 최대한 조건을 맞춰주고 정성을 들였으니 자연도 그에게 보답을 한 거지만, 차에는 분명 차의 정신과 문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산 정약용이나 초의선사처럼 차 안에서 일상의 도를 깨우치듯이 그도 그렇다고 했다.

집 한 켠에 차문화원을 만들어 초중고 학생들에게 다도를 통한 예절교육을 하고 농업기술센터에서는 제다교육도 한다. 일 년에 한 번씩 자비를 들여 ‘차산놀이마당’도 연다. 벌써 8회째다.

처음엔 차나무가 자라는 차산에서 시작했지만 워낙 비용이 많이 들어 그 자리를 집마당으로 옮겼다. 이 날은 동네사람들이 지은 농작물도 가져와서 판매하고 도자기를 굽는 지인이 와서 도자기도 전시한다. 서예, 춤, 노래 등등 전국의 ‘예술 좀 하는’ 지인들이 기철씨가 주최하는 ‘차산놀이마당’에서 재능을 나눈다.

그날은 돼지도 잡고 부침개도 붙이고, 그야말로 잔치집이 따로 없다. 그 많은 일을 아내인 양숙씨가 거의 진두지휘하는데, 그녀 또한 싱글벙글 웃으며 손님을 맞이한다. 내외가 똑같다.

차농사도 힘든데 굳이 사람들 불러들여 잔치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는 “시골에 살면서 그런 인정 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며 처음엔 우전(4월 우전에 맞춰 따는 첫 잎)을 딴 후, ‘차산 신령님께 차농사 잘되게 해주서 감사드린다’는 의미로 봄에 했었는데, 작설도 따야 하고 차도 덖어야 하는 등 너무 바빠서 몇 년 전부터는 가을로 시기를 옮겼다고 한다. 올해도 10월 15일경 준비하고 있다는데, 어떤 지인들은 그 분위기가 좋아서 벌써부터 참여하겠다는 전언을 넣는단다. 

▲ 다양한 약초로 차를 만드는 기철씨는 가끔 축제나 차문화제 등에 참여해 약초차의 효능에 대해 홍보한다.
▲ 차 박람회에서 '온직다원'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기철씨, 양숙씨 부부

충남농업기술원 녹차작목반을 이끌고 ‘온직다원’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인증 ‘티스타팜’으로까지 끌어올린 기철씨는 최근 바쁜 시간을 쪼개서 또 하나의 연구에 몰입하고 있다. 녹차 외에도 지금까지 맥문동, 구절초, 구기자, 삼백초, 뽕잎, 연잎, 차꽃, 쑥 등등 칠갑산자락에서 나는 식물로 10여 가지의 차를 만들어온 그가 몸에 좋은 재료들을 가지고 상시 마실 수 있는 대용차를 만든 것이다.

도시 지인들이 미세먼지와 황사로 고생하는 걸 보고 기관지에 좋은 ‘잔대’와 발효차 등 일곱 가지 차를 넣어 만든 대용차는 차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다. 차농사를 지으면서 수익성은 있는 거냐고 묻자 “세 식구 먹고는 살만은 하다. 하지만 하늘을 믿고 농사짓는데 사람들에게 이로운 식품들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문이 조금 남아도 몸에 좋은 자연식품을 2차 가공해서 만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라고 너스레를 떤다.

치매에 좋은 달구기자차나 기관지에 좋은 잔대보감(그는 새로 만든 대용차를 그렇게 이름 붙였다) 등 산에서 나는 약초를 가지고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이 어떤 소명처럼 느껴진다는 그는 “자연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사람도 좋아지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며 첨가물 넣고 영리적인 목적으로만 가면 자연은 자연스럽지 않게 되고 사람에게도 결국 이로울 수 없다는 게 그의 농사철학이자 신념이다.

좀 더 여유와 시간이 된다면 차를 체계적으로 만들고 그 정신과 문화도 같이 배울 수 있는 차에 관한 교육기관도 만들고 싶다는 큰 꿈도 안고 있는 기철씨에게서 밤나무처럼 듬직하고 차향 같은 향기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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