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명을 살인한 탈북어민’의 북송을 두고 종북몰이가 거세다. 윤석열 정부는 북송 당시 인계 장면을 담은 자극적인 동영상까지 공개하며 맹공을 퍼붓는다. 문재인 정부가 사법권을 포기하고, 탈북자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논리다.

앞서 논란이 된 ‘월북 공무원’ 문제에 이어 2018년 남북정상회담까지 걸고 들면서 전 정권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고발하며 종북몰이에 몰두하는 목적이 무엇이냐는 데 있다.

일각에선 국정 지지율 반등을 노린 보수 정권 특유의 ‘공안 놀음’으로 치부한다. 나아가 종북몰이를 한 2주간 지지율이 더 떨어지자, 구태 정치로 인해 역풍을 맞았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통일부는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한 어민 2명을 북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12일 공개했다.
▲통일부는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한 어민 2명을 북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12일 공개했다.

종북몰이 부활이 과연 지지율 반등을 노린 것일까?

국정 지지율 반등을 노린 ‘전 정권 때리기’라면 이런 억지스러운 종북몰이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이미 종북몰이가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되었다. 지난 몇 차례 선거에서 공안정국이 조성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도 종북몰이가 지지율 반등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이 문제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냉전과 국가보안법

윤석열 정부가 종북몰이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는 ‘신냉전’에 접어든 국제질서와 관련 있다.

1947년 냉전의 시작을 알린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된 이후 미국 사회는 대대적인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이 불었다.

얄타 회담에서도 동행했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측근 앨저 히스가 1948년 소련 간첩으로 몰리고, 소련에 우호적인 영화를 제작한 40여 명의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가 미 공안기관(HUAC)에 체포돼 11명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여기에 매카시 미 상원의원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205명의 공산주의자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라고 발표했고, HUAC는 1950년 1년간 미 국무부를 비롯한 정치인, 교수, 언론인 등 609명을 소환 조사하며 빨갱이 사냥에 나섰다. 하지만 매카시 의원이 지목한 공산주의자 중에 간첩 협의가 인정되어 기소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냉전 시기 ‘반공’ 이념을 앞세운 이런 마녀사냥은 미국에 국한되지 않았다. 미국은 소련의 남하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사회주의국가와 인접한 모든 나라에 ‘반공법’을 제정해 냉전 질서를 유지하는 제도적 장치로 악용했다.

미군정 하에서 수립된 이승만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제정(1948년 12월 1일)해 냉전 질서에 편입된 것도 같은 시기의 일이다.

이후 국가보안법이 ‘보도연맹 사건’(1950년), ‘조봉암 진보당 사건’(1959년), ‘인혁당 사건’(1964년) 등 수많은 간첩을 조작하며 냉전 질서를 유지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냉전과 혐오 조장

냉전이 ‘반공’을 사회 이념화하는 것에서 시작한 것처럼 신냉전도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와 대결의식에서 시작한다. 다만 냉전 시기 ‘반공’이라는 단순한 대립 구도와는 달리 탈냉전 이후 30년 동안 이념 대립이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자연히 미국은 신냉전 상대국 ‘중국-러시아-북한(조선)’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방식도 각기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 중국에 신냉전적 대립을 시작한 미국은 중국의 인권을 문제 삼아 혐중(중국 혐오) 여론을 부추겼다. 2019년 홍콩 사태로 시작한 미국의 ‘혐중’노선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문제를 들고나오면서 구체화 되었고,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정점에 달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가 제국주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일방적인 주장을 서방 언론을 통해 유포했다. 가짜 뉴스까지 퍼트리며 미국은 혐러(러시아 혐오)를 부추겼다.

신냉전의 또 다른 전선인 ‘혐북’(북한 혐오)은 윤석열 정부가 맡아 나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련의 종북몰이도 결국 혐북 여론을 형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지난 5년간 공석이던 북한인권대사에 이신화 고려대학교 교수를 임명해 ‘혐북’노선을 체계화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인권센터가 자칫 반북대결의 온상이 될 것을 우려해 대사 임명을 단행하지 않았다.

문제는 과거 보수 정권이 즐겨 하던 종북몰이와 달리 윤석열 정부의 ‘혐북’ 노선은 미국이 추진하는 신냉전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더한다. 혐오와 대결이 격렬해질수록 전쟁 위험이 고조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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