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은 물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전 세계가 지금 고물가 고금리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5월 기준)는 미국 8.6%, 유로존 8.1% 인상했고, 한국도 5.9%나 올라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통계 숫자만 보면 미국이나 유럽보단 우리가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미국보다 한국이 더 낮은 이유는 물가조사품목에서 집값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인상 세계 1위인 한국이 집값을 물가품목에 포함하면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미국을 초월할 수도 있다.

또한 GDP(국내총생산) 대비 104%로 가계부채 세계 1위(2위 미국 76%)인 한국은 고물가만큼이나 고금리로 인한 피해도 막심하다.

왜냐하면, 가계부채 대부분이 내 집 마련을 위한 주택담보대출 등 시중은행과의 거래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75%로 치솟았고, 덩달아 시중은행도 최고 5.68%까지 대출금리를 인상함으로써 그만큼 가계의 대출 이자 부담도 가중되었다.

체감은 50%인데, 고작 5.9%라고?

집값 인상률이 빠졌다고는 해도 물가 5.9% 인상은 체감 물가와는 차이가 너무 크다.

올 들어 마트에서 판매하는 삼겹살 가격이 50% 안팎 오르고, 치킨과 피자 등 배달음식 가격도 30% 이상 치솟은 것을 감안하면 5.9%는 미미한 상승폭이다.

물가 폭등이 체감과 다른 이유는 통계청이 소비자물가를 산정하는 460개 품목에 적용하는 가중치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번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 오르는 전세 가중치는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5%에도 못 미친다. 또 대체불가 식재료인 달걀이 2.6인데 비해 일반 가정에서 한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생선회 가중치가 9.0으로 자장면 1.6보다 높다.

이처럼 물가산정 품목과 가중치 적용이 비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개선하지 않는 이유는 물가 인상률에 영향을 받는 최저임금이나 임금 협상 등에서 정부와 자본가의 부담을 덜기 위한 꼼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푸틴 때문에 물가가 올랐다고?

‘푸틴 플레이션’(푸틴 러시아 대통령 때문에 발생한 인플레이션)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물가 폭등의 원인을 온통 우크라이나 사태로 몰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호도한 측면이 강하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고유가가 시작됐고, 고유가가 고물가를 추동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작 고유가의 직접적인 원인이 미국의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돈바스 전장에 러시아군이 투입되자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거래를 차단하고, 달러 결제망(SWIFT)에서 러시아를 퇴출시켰다. 이것이 유럽과 한국을 비롯한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국가들에서 휘발유와 경유 그리고 가스값이 폭등한 직접적인 이유다.

이 때문에 지금이라도 유가를 안정시키려면 러시아가 제안한 종전과 평화협상을 미국 나토가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전쟁을 지속해 무기 팔아 위기에 처한 미국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괜한 욕심만 버린다면 고유가는 당장 막을 수 있다.

물론 제 욕심을 채우기에 바쁜 미국이 종전을 선택할 리 없지만, 설사 유가를 안정시킨다고 해도 미국 경제에 불어닥친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 미국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대인 0.75%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음에도 인플레이션 악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다음 분기 0.75%를 또 올린다고 해도 고질적인 쌍둥이 적자(재정적자, 무역적자)를 '찍어 낸 달러'로 메꾸어 온 미국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공황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정부가 물가를 안 잡겠다고?

윤석열 정부는 첫 민생대책으로 ‘시장 친화적 물가관리’라는 엉뚱한 정책을 발표했다.

말하자면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의 물가관리에서 벗어나 기업의 세금을 깎아 시장의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세 부담이 줄어든다고 해서 고물가 시대에 제품 가격을 낮출 리도 없거니와 설사 일부 공산품의 가격이 하락한다고 해서 물가가 잡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부자 감세’를 통해 재벌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것을 ‘시장 친화적 물가관리’라는 말로 포장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경기 침체 우려에 “전 세계적 고금리 때문에 벌어진 구조적인 문제이므로 근본적으로 대처할 방도가 없다”라고 했고, 가계부채 해법을 묻는 질문에는 “우리라고 해서 해법을 내기는 어렵다”라고 답했다.

고물가 고금리로 인한 경기 침체와 가계부채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매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3인칭 유체이탈식 화법’을 비판하면서, “잘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국가 지도자가 제 할 일을 방기하면 직무유기라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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