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단일후보로 출마해 국민의힘 후보를 꺾은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당선인을 만났다.

그는 요즘 당선 축하 인사보다 “동구를 살려달라”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동구 주민들은 왜 살려달라는 부탁을 그에게 할까?

보수 텃밭인 영남에서, 그것도 국민의힘 바람이 거셌던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김종훈 당선인은 유일한 진보 구청장답게 낡은 정치 관행을 깨고, 새로운 정치를 선보일 수 있을까?

인터뷰를 마쳤을 때 어렴풋하게나마 이런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선거였는데, 영남지역에서 국민의힘을 꺾고 당선된 비결은 무엇이었나?

‘주민중심, 주민우선’이라는 진보정치의 진심이 전달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노동자 서민이 아프고 힘들 때, 누가 내 마음같이 손잡아 주었던가를 동구 주민들이 이번엔 알아주셨다.

현대중공업에서 3만4천여 명이 쫓겨나고 임금조차 받지 못할 때, 본사를 서울로 이전해 동구지역 곳곳이 폐허처럼 변해 갈 때, 끝까지 노동자와 주민 곁에서 투쟁했던 진보정치가 빛을 발한 덕분에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선거 때 반짝하고 마는 보수 정당과 달리 평소에도 임금을 받지 못하는 하청노동자를 돕기 위한 지원책 마련, 장사가 안돼 문 닫을 위기에 놓인 상인들을 위한 자금지원 조례 제정과 같은 진보당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주민들이 마음을 열어 주신 것같다.

주민대회를 통해 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선거 정책과 공약에도 반영했다고 들었다. 주민투표와 주민대회가 이번 선거에서 어떤 작용을 했나?

2만3천여 명이 주민투표에 참여해 예산 집행 순서를 동구주민들이 직접 결정했다. 이 과정에 제출된 주민요구안과 고충민원을 주민들의 힘으로 해결했고, 남은 과제는 이번 선거에 후보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니 우리 정책과 공약은 주민의 생각과 동떨어질 수 없었다.

특히 출퇴근길과 동네 골목에서 만난 주민의 목소리가 실현되는 과정을 보며 주민 자신이 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단순히 선거용이거나 주민대회라는 형식적 요건을 갖추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자기가 직접해결하는 주민우선 주민중심의 정치, 주민직접정치라는 새로운 정치운동이 싹틀 수 있었다. 울산의 다른 구보다 동구 투표율이 높은 것도 이런 새로운 정치에 대한 주민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7월1일 임기가 시작되는데, 취임하고 첫 방문지와 첫 사업은?

동구청 관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서 정규직화 방안을 논의해볼 생각이다.

첫 사업으로는 선거 과정에 서명을 통해 요구한 하청노동자 지원조례 제정을 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아울러 동구가 오랜 기업정치(기업 총수가 지휘하는 정치)로 인한 폐해를 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 기업이 운영하던 복지‧문화‧체육시설들이 본사가 이전하면서 모두 문을 닫고 매각하는 바람에 엉망이 돼버렸다. 이런 곳들을 주민의 의견을 받아 원상복구하고 더 나은 주민시설이 되게 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이다.

무엇보다 본사 이전으로 현대중공업 울산 공장이 하청생산기지로 전락하면서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임금과 산재사고 등 열악한 노동 현실에 내몰린 상태다. 이런 죽음의 문턱에 이른 노동자를 살리는 정치에 온 힘을 쏟아붓겠다.

 

뭘 하겠다는 것도 좋지만, ‘이런 건 절대로 하지 않겠다’라는 약속도 할 수 있나?

쓸데 없는 다리 놔놓고 사진이나 찍는 전시행정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 다음으로 책상머리에 앉아서 실정파악도 없이 확인도 않고 그냥 결제하는 일은 않겠다. 마지막으로 구청장인 내 생각만 옳다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는데 자기가 잘나서 구청장 된 줄 알고 자꾸 고집을 부리니까 일을 망치는 거다.

사실 똑똑해서 구청장 된 게 아니잖나? 똑똑한 사람 구청장 되는 거면 선거 대신 시험을 쳐야지. 그러니 정치 지도자는 제 잘났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교집합을 찾아 여기에 주민의 힘을 집중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진보당 김종훈이 동구에서 펼칠 진보정치를 미리 그려본다면?

진보당 대표 시절에 “가장 유능한 정치인은 민중이다”는 구호를 제시한 적 있는데, 이 말이 딱 맞다. 진보당은 직접정치를 노선으로 채택하고 주민우선 주민중심 정치를 펼쳐갈 계획이다.

그동안 주민들은 선거해서 뽑아 놨으니 알아서 하겠지 하는 위임 정치, 맡겨 놨으니 잘해보라는 대리 정치에 익숙해 있다. 그런데 직접정치는 주민 스스로가 ‘우리가 정치하자, 내가 주인이다’라고 하는 주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정치에 대한 환멸이 큰데, ‘주민이 직접 정치하자’는 말에 동의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례로 과거 구청장 시절에 어린이물놀이공원을 만들 때 대부분 주민들은 찬성하는데 야간 근무를 하는 한두 명이 소음 때문에 반대했다. 그래서 주민 설명회를 개최해 의견을 들었다. 반대하는 주민의 시간을 고려해 밤 10시에 설명회를 시작했고, 새벽 2시가 다 돼서 끝났다. 주민 설명회 결과를 반영해 물놀이 시설의 장소를 바꾸었다. 그때 주민들은 요식행위인 줄 알았던 주민설명회가 실제 주민의 의견이 반영돼 구정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 말이 씨가 먹힌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직접정치는 자신에게 힘이 있다는 것을 자각한 주민들이 자기 삶의 질을 좌우하는 정치의 주인이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번 선거가 진보정치에 던져진 과제가 있다면?

이번 동구의 승리는 진보4당(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이 후보단일화를 통해 이룩한 쾌거다. 뭉치니까 될 수 있구나 하는 희망과 더 큰 틀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선거를 넘어 더 통 큰 단결을 실현해 진보정치가 한국사회의 새로운 생명력과 희망으로 거듭나는 데 역할이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하겠다.

2002년 울산 광역의원으로 시작해 구청장을 거쳐 국회의원으로 다시 구청장이 된 지금까지 ‘주민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그의 정치 철학엔 변화가 없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동네 아저씨같은 구수한 말씨로 어려운 정치 노선을 설명하는 그에게서 ‘정치 맛집’으로 거듭날 울산 동구의 미래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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