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한·일 순방 일정을 마치고 24일 귀국길에 올랐다.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전략적 경제‧기술 파트너십,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어려운 표현들이 많이 나왔지만 결국 바이든 행정부가 평소 강조하던 ‘가치 동맹’에 따른 ‘신냉전’ 체계 구축으로 요약된다.

신냉전은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포위하기 위해 쿼드, 오커스, 민주 정상회의, IPEF 등 안보‧경제 동맹을 결성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의미한다.

미국 줄서기는 재앙의 덫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순방 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IPEF의 출범이다.

IPEF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동맹, 협력국을 규합해 추진하는 일종의 경제협의체다.

특히 각국의 생산 기술력 수준이 상향 평준화하면서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하고 대신 원자재 공급망이 세계 무역 시장의 판도를 결정하게 되자, 다급해진 미국은 IPEF 출범을 서둘러야 했다.

문제는 ‘세계 최대 FTA’로 불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해 아시아의 경제 공급망을 좌우하는 중국에 맞서 IPEF가 성공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미국은 과거 냉전 체제에서 사회주의를 무너트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신냉전’ 질서가 구축되면 이번에도 승리할 수 있다고 동맹국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많이 변했고, 미국도 예전 같은 강대국이 아니다.

무엇보다 과거 냉전은 세계 경제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양분되었기 때문에 배제와 포위가 자유로웠다. 하지만, 사회주의 붕괴와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영향으로 중국은 아시아 모든 나라와, 러시아는 유럽 대부분 국가와 긴밀한 경제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1992년에 국교를 수립한 한국만 하더라도 미국의 2배가량을 중국과 교역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은 미국과 중국 중 굳이 한 나라를 선택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섣부른 IPEF 참여가 가져올 후과다.

당장 중국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지적에 윤 대통령은 “중국과 경제적 협력을 소홀히 한다는 건 절대 아니기 때문에 중국에서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라고 발을 뺐다.

중국이 윤 대통령의 해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향후 IPEF에 따른 공급망 배제나 대만 문제 등이 불거지면 미국은 또 줄서기를 강요할 터.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에 구체화한 ‘신냉전’ 질서는 언제든 우리 경제와 안보에 재앙을 가져올 덫이 된 셈이다.

러시아 제재와 신냉전의 운명

우크라이나를 매개로 한 러시아 고립전략도 성공을 낙관하기는 힘들다.

우선 미국의 러시아 제재에 따른 가스 공급망 차단으로 당장 독일이 오래 버틸 것 같지 않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독일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천연가스를 확보하기 위해 2012년 러시아에서 독일 해안에 이르는 장장 1,230㎞의 파이프라인(노르트 스트림-2)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2022년 2월 공사를 완공한 시점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했고, 미국은 러시아 제재를 위해 이 가스관 개통을 불허해 버렸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독일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느냐에 달렸다.

미국은 (미국산) 셰일 가스로의 공급 다변화를 주문하지만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할뿐더러 독일이 10년에 걸쳐 건설한 가스관을 이제 와서 포기할 리도 없다.

시간은 오히려 러시아 편이다.

러시아는 현재의 에너지 차질이 유럽 경제를 강타해 결국 반러 연합이 깨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실제 독일과 유럽은 현재의 비축분으로 겨울을 날 수 없다. 올가을 유럽에 무슨 일이 생길까?

신냉전과 국익 사이

미국의 러시아 제재로 인한 피해는 한국도 만만치 않다.

이미 75%를 러시아에서 수입하던 유연탄 공급이 막히면서 시멘트 대란을 예고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조선업계에서 터졌다.

러시아 선주의 대금 미지급 사태가 빚어지면서 10조 원 규모의 러시아 수주물량을 보유한 국내 조선업계에 비상이 걸린 것.

미국의 금융제재로 러시아가 국제은행 간 달러 결제망(SWIFT)에서 퇴출당함에 따라 현실적으로 러시아 선주가 국내 조선사에 대금을 지급할 길이 마땅치 않아 업계는 ‘대규모 계약 해지 사태’라는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는 소식이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한미 공동성명에서 “러시아에 대한 자체적 금융 제재와 수출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울러 한미관계를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라고 명명하면서, 러시아를 반대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선언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맹도 없다’는 국제사회의 관행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지도자라면 중요한 외교적 결단에 앞서 최소한 국민의 눈치는 볼 것으로 기대했다면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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