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방한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첫 일정으로 경기 평택 삼성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21일엔 6대 경제단체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10대 그룹 총수들과 만찬을 갖는다. 방한 마지막 날인 22일엔 4대 그룹 총수를 따로 만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 재벌들을 왜 만나?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을 만나는 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방한 당시에도 재벌 총수들은 국빈 만찬에 참석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따로 만나서 면담을 하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재벌 총수들을 만나 미국으로의 투자를 요청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임기 초반부터 가치동맹 벨류체인(가치사슬)을 내걸며 우리나라 국내 주요기업에게 미국 투자를 압박해왔다. 그 결과 한국의 4대 그룹은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미 상무부와의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약 44조 원에 달하는 미국 투자계획을 밝힌 바 있다.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시찰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시찰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이미 삼성전자는 20조원 규모 파운드리 증설을 확정했고, SK그룹 SK이노베이션은 포드와 6조원 규모의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블루오벌에스케이’를 설립을 발표했다. LG그룹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파트너 GM(제너럴모터스)와 배터리 생산 등 사업 협력에 5조원 이상 투자비를 쓰기로 한 상태다. 현대차는 바이든 방한 일정에 맞춰 미국 조지아주에 70억 달러(9조원) 규모의 전기차 전용 생산 공장 건립 투자계획을 발표할 거란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국에 투자하면 우리에게 이익이 될까?
문제는 이러한 투자 전망이 한국에 이익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으로의 투자가 국내 내수와 고용증대 기회를 빼앗고, ▲중국과 러시아 원자재에 기반한 반도체, 배터리 등의 생산에 불안정을 조성하고, ▲미국의 자체 국산화를 위한 시간벌기용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팽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밀한 검토 없이 마구잡이로 미국 내 투자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포괄적 전략동맹과 노동자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대북군사동맹으로 국한하지 않고, 인권, 민주주의, 경제협력 등의 이슈로 확대하는 ‘포괄적 전략동맹’을 강조해 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방한 일정을 포괄적 전략동맹을 완성하기 위한 자리로 만들려 한다. 한국과 경제동맹을 꾀하려는 것이며, 그 일정의 선상에 재계와의 만남이 있다.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가입을 요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런 포괄적 전략동맹을 완성하기 위한 경제동맹 강화의 희생양은 결국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 민중이다.

코로나위기, 기후위기, 국제경제질서가 다극화로 가는 전환기에 각국은 원자재, 제조업, 식량 등의 자급자족을 추구하고 있다.

자급자족 방식으로의 대전환은 내수를 확장하고 국내 고용을 증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대중국 포위를 위한 신냉전을 추구하며 포괄적 전략동맹 강화를 위해 한국에 대미 투자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자급자족 방식이 아닌 대외 투자를 강화한다면 결국 한국은 내수와 고용증대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상실하게 된다. 현대차가 미국 조지아에 투자할 전기차 전용공장만 놓고 봐도 8,500명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규모다. 이런 일자리를 미국에 내줘야 하는 꼴이다. 이런 기회 상실이 반복되고 누적되면 결국 피해를 당하는 것은 한국 노동자 민중이다.

노동자 피땀으로 조공(朝貢) 바치는 격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 위기가 닥쳐올 때도 우리나라 대기업은 천문학적인 흑자를 기록했다. 큰 위기 없이 흑자를 내며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힘은 노동자들의 쉼 없는 노동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정부와 자본가들은 코로나-19를 핑계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거리로 내몰았다.

노동자들을 만나 신냉전과 산업전환의 위기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야 할 재벌기업들은 바이든 방한에 맞춰 미국 땅에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속속 내놓고 있다. 재벌의 곳간을 열어 민생을 돌봐야 할 정부가 되려 미국 내의 투자를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조공(朝貢)’, 속국이 종주국에게 때맞추어 예물을 바치는 일이나 그러한 예물을 이르던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제1동맹이라 여기는 한미동맹으로 인해, 때마침 포괄적 전략동맹이 요구되면서, 한국 노동자들의 피땀이, 이들의 일자리가 미국에게 조공으로 바쳐질 상황에 놓이게 됐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조공을 받은 황제는 그 신하에게 책봉을 내린다고 한다. 지난해 5월, 한국 기업이 약 44조 원에 달하는 투자계획을 약속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 현대, SK, LG 경영자들에 직접 “땡큐”를 외쳤다. 미국의 “땡큐”라는 책봉이 한국 사회와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심히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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