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책협의단이 4박5일 간의 방일을 마치고 28일 귀국했다.

정진석 대표단장은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 문제의 해법을 한국이 혼자 내놓을 수는 없다는 인식을 일본 정부에 충분히 전했다”라며 방일 성과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윤 당선인의 강한 의지와 기대를 일본에 전달할 수 있었다”라며, “이번 방일 활동을 통해서 한일관계 개선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당위의 문제라는 공감대를 확인하는 성과를 올렸다”라고 자화자찬했다.

한일 정책협의단의 발표처럼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일본정부의 의지 표현은 과연 사실일까?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 시절 굴욕적인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를 이끌었던 주역들이 정책협의단에 포함된 데 따른 걱정은 기우였을까?

방일 성과, 일본 언론보도와 달라

▲기시다 일본 총리에게 윤석열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하는 정진석 한일정책협의단 대표단장. [사진 :  일본 총리 홍보실 제공]
▲기시다 일본 총리에게 윤석열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하는 정진석 한일정책협의단 대표단장. [사진 :  일본 총리 홍보실 제공]

일본 언론에 보도된 한일 정책협의단의 행보는 정 단장의 발표와는 많이 다르다.

정책협의단은 이번 방문에서 기시다 총리를 비롯해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 기시 노부오 방위상 등 정부 주요 관료들을 비롯해 아베 신조, 모리 요시로 전 총리와도 면담하는 등 20여개의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그러나 일본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일정책협의단이 만난 일본 관료들은 하나 같이 “강제 징용, 위안부 문제 등에 있어 한국이 약속을 깼으니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일관계도 개선이 있을 것”이라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여기서 ‘한국이 약속을 깼다’는 것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파기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특히 정책협의단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한 일본 전범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를 막아 달라’는 일본 측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란? 한국 대법원이 일본제철 등 전범기업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것을 판결했고, 이 판결에 전범기업들이 불복하자, 한국 내 그들 자산의 현금화를 통해 강제 배상을 추진하려는 것을 일컫는다.

일본 정부는 “현금화만은 절대 안 된다”며 이 문제를 한일 관계를 가를 ‘레드 라인’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와 관련해 정 단장은 “일본에 자산 현금화를 않겠다는 표현을 쓴 적은 없다”면서도, 방일 당시 자산 현금화를 막아 달라는 일본 측의 요구에 대해 “지금의 한일 관계가 더 악화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겠다”라고 애매하게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책협의단이 일본의 진정어린 사과와 전쟁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촉구하지 않고, 변함없는 일본의 파렴치한 입장을 전달받고 온 것 아니냐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정책협의단이 일본을 떠난 후 나온 일본언론의 보도는 이런 우려를 더욱 가중시킨다.

도쿄신문은 만나기를 꺼리던 기시다 총리가 면담에 응한 이유에 대해 “상대도 관계를 개선하려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라면서, “한국 대표단이 일본 자산 현금화로 인한 관계 악화는 피하고 싶다는 강한 의향을 전했다.”라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조기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일본이 뒷 받침 해야 한다”라고 전제하곤, “한국 정부가 한일 과거사 문제에 해답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기대 섞인 표현을 했다.

일본 공영방송인 NHK는 아베 전 총리의 말을 빌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파기한 한국 정부에 유감”이라며 합의 이행을 재차 촉구했다.

이런 일본언론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일본 정부는 한반도를 강점한 책임, 전쟁범죄를 저지른 책임, 강제동원과 일본군성노예라는 범죄사실에 대해 그 어떤 반성과 사과도 않겠다”라는 기존 입장을 한국 측에 공식적으로 전달한 셈이다.

한일 정책협의단이 어떤 근거로 ‘한일관계 개선 전망’을 밝게 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우리 민족의 반일감정은 어설픈 정치쇼에 넘어가기에는 뿌리가 너무 깊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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