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에이브러햄 링컨’ 미 핵추진항공모함이 울산 동쪽 공해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3일과 14일 양일간 미일 합동군사훈련을 전개했고, 14일에는 원인철 합참의장이 승선해 6시간 동안 머물렀다.

그러나, 동해상을 빠져나간 16일까지 한미합동 해상훈련은커녕 한국 영해 안쪽으로 진입조차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미 해군 핵 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 [출처 : 미 해군 홈페이지]
▲미 해군 핵 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 [출처 : 미 해군 홈페이지]

미군 핵항모의 동해 진입은 2017년 11월 이후 4년 5개월 만이다. 그 때문에 한국 해군과 미 핵항모와의 연합훈련 기회를 놓친 이유에 대해 억측이 난무한다.

대체로 미일 합동훈련에 미군이 한국 해군의 동참을 요청했으나, 문재인 정부가 동해상에서 일본과의 합동훈련에 부담을 느껴 거부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부 언론에선 “미국 측이 ‘링컨’항모 이동 전 한국에 동해 영내에서 한·미·일 3국 연합훈련을 제안했으나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안다”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종섭 국방장관 후보자도 “훈련을 하지 않는 군대는 존재 의미가 없다”라며, 한미 해상훈련 불발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

그렇다면 임기 말 문재인 정부가 과연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고, 일본 자위대와의 연합훈련을 거부한 것일까?

아니다.

“미 해군 측에서 우리 측 해군으로 (훈련 참가) 요청이 온 것은 없다”라는 해군의 공식발표가 있었고, 이미 일본과는 여러 차례 합동훈련을 전개한 바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한일 관계를 이유로 미국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미국 측이 한국과의 해상훈련을 거부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해상훈련 못한 이유

한미 해상훈련을 거부한 당사자로 미국을 지목한 이유는 지난 7일 윤석열 당선자가 평택 미군기지를 방문했을 때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과 나눈 대화 내용 때문이다.

국민일보가 보도한 데 따르면, 윤 당선자는 주한미군과의 5+5회의에서 핵항모 등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대북 선제타격을 위한 한미 연합훈련(TTX)의 야외 실기동훈련 재개 등을 요청했다. 그러나 북측의 반발을 의식한 미군 측이 답변을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백악관이 거부 의사를 전달했다고도 전해진다.

이를 증명하듯 5+5회의에 참석했던 이종섭 후보자는 미 전략자산 전개 검토 여부를 묻는 질문에 “북한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미국이 전략자산 전개를 약속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실제 지난달 24일 북의 ‘화성포-17’형 발사 때도 미국에 전략자산 진출 등 한미 연합 대응을 요청했지만, 미군이 이를 거절함에 따라 서욱 국방부 장관의 현장지휘 아래 우리 군만 단독으로 무력시위를 전개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공군기지를 방문해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 훈련을 현장 지휘했다. 그러나 한국군 단독 훈련이라 미군의 승인 없이 F-35A 스텔스 전투기를 출동시킬 수는 없었다. [사진 : 국방부]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공군기지를 방문해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 훈련을 현장 지휘했다. 그러나 한국군 단독 훈련이라 미군의 승인 없이 F-35A 스텔스 전투기를 출동시킬 수는 없었다. [사진 : 국방부]

윤 당선인이 요청한 야외 실기동훈련 재개도 주한미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18일 시작된 상반기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실기동훈련 없이 현재 연합지휘소훈련만 진행하고 있다.

미군, 전략자산 전개 미루는 이유

미군이 윤석열 당선인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전략자산을 전개한 선제타격 훈련을 꺼리는 이유는 인도-태평양전략의 선결과제 때문이다.

신냉전으로 불리는 인도-태평양전략의 선결과제는 미일 동맹군의 전투력을 증강하여 중국의 군사 활동을 억제하는 일이다. 아울러 EU 동맹국들을 부추겨 우크라이나와 전투 중인 러시아를 고립 압박하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포위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그런데 여기에 대북 전선까지 확대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른다는 것을 미국은 알고 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와는 달리 북은 미 본토에 대한 선제공격 의사가 있는 데다 그 능력까지 갖추었기 때문에 여간 까다로운 상대가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 에이브러햄 링컨 등 미 핵항모가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출처: PM3 Jarod Hodge / 미 해군]
▲로널드 레이건, 에이브러햄 링컨 등 미 핵항모가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출처: PM3 Jarod Hodge / 미 해군]

미국은 이번에 진행한 미일 합동훈련 때도 북의 군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군 ‘링컨’항모가 일본 자위대와 연합해 ‘탄도미사일 정보공유훈련’(미사일 탐지레이더가 포착한 탄도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훈련)을 마치고 동해를 빠져나가던 지난 16일 오후 6시경, 난데없는 북의 신형 유도무기 발사 소식을 들어야 했다.

문제는 이번 미일 합동훈련에서 사용된 미국산 요격미사일(RIM-66 스탠더드 개량형)은 비행속도가 마하 3.5밖에 되지 않는데, 북이 쏜 신형 유도무기는 마하 4.0의 속도로 날아간 것이다.

더구나 중국인민해방군 동해함대 소속 6,000톤급 전자정찰함이 미일 합동훈련 중인 ‘링컨’항모를 지켜보고 있었고(4월 13일 자 일본 방위성 기관지), 러시아의 태평양함대가 15척의 전투함과 2척의 잠수함, 그리고 여러 대의 해상작전기를 14일 동해에 출동시켜 전범국 일본과 군사훈련을 하는 미국에 시위한 사실이 러시아 국방부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이처럼 미국의 신냉전 전략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눈치 없는 윤석열 당선인이 대북 선제타격 운운하며 자꾸 미국에 떼를 쓰니 바이든 미 행정부도 난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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