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 교수의 ‘한국문학의 필화사건’

장정일은 1962년 1월6일 대구시 달성군에서 태어났으며, 소설가, 작가, 시인, 수필가이자 극작가이다. 그는 중학교(성서중학교) 중퇴라는 최종 학력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독학과 독서를 통해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책읽기는 그가 그토록 무서워하고 미워하는 아버지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아버지’로 표상되는 권위적인 가부장은 그의 작품세계를 지배하는 근원적인 모티브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강정간다’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작 활동을 하였고, 1987년에는 희곡 ‘실내극’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그리고 같은 해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다. 1996년 발간한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외설시비에 휘말려 필화를 겪으면서 구속되는 등 고초를 겪는다. 

▲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한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 포스터

3. 법적 쟁점과 판단

<거짓말> 필화사건의 법적 쟁점은 이 소설이 형법 제243조 및 제244조의 음란물에 해당하는가 여부이다.

대법원도 헌법 제21조 제1항 및 제22조 제1항에 의해 언론·출판의 자유와 학문·예술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음을 환기하고 있다. 하지만 제21조 제4항에서 언론·출판이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되고, 또 제37조 제2항에서는 사회질서와 공공복리 등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국가는 법률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 소설의 ‘음란물’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대법원은 <반노>와 <사라>사건에 걸쳐 일관되게 ‘문서의 음란성 판단 기준’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고 있다.

“형법 제243조 및 제244조 에서 말하는 '음란'이라 함은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과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을 현저히 침해하기에 적합한 것을 가리킨다 할 것이고, 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으로 판단하되 그 사회의 평균인의 입장에서 문서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규범적으로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문학성 내지 예술성과 음란성은 차원을 달리하는 관념이므로 어느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문학성 내지 예술성이 있다고 하여 그 작품의 음란성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고, 다만 그 작품의 문학적·예술적 가치, 주제와 성적 표현의 관련성 정도 등에 따라서는 그 음란성이 완화되어 결국은 형법이 처벌대상으로 삼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 뿐이다.” 

▲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한 장선우감독 '거짓말'의 한 장면

위 기준에 따라 대법원은 원심판결과 기록을 검토한 결과, <거짓말>의 음란성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있다. 

* 이 사건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38세의 유부남인 작가 '제이'가 서울과 여러 도시들을 다니며 18세의 여고생 '와이'와 벌이는 괴벽스럽고 변태적인 섹스행각의 묘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 사건 소설책의 맨 뒤에 있는 작품해설에 의하더라도 이러한 부분이 3/4이라고 한다)

* 주인공인 '제이'는 여러 여자를 성적으로 탐닉하는 유부남이며, '와이'는 성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한 달여 동안 '제이'와 이른바 폰섹스를 하고 '제이'와 함께 괴벽스러운 섹스행각을 벌이면서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이를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점

* 주인공 외에 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학생을 성의 대상으로 보는 미술선생 및 교수, 동성에 대한 연애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한 여학생 등 성적으로 왜곡된 인물들인 점

* '제이'가 '와이' 등과 하는 성애의 장면이 폰섹스, 구강성교, 항문성교, 가학 및 피학적인 성행위, 1남 2녀간의 섹스 등 매우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 묘사방법도 노골적이고도 아주 구체적인 점

▲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한 장선우감독 '거짓말'의 한 장면

장정일은 검찰의 심문에서부터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일관되게 이 소설이 ‘성을 통한 자기모멸’이라는 주제를 추구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 소설은 피고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주제를 고려하더라도,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보다 개방된 성관념에 비추어 보더라도 음란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 사건 소설을 음란하다고 판단한 원심의 조치는 정당한 것으로 수긍”하고, 피고인 장정일에 대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 선고는 “예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및 각 그 한계에 관한 헌법해석을 그르친 위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장정일의 상고를 기각하고 항소심의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채형복 교수는 프랑스 엑스 마르세유 3대학에서 ‘유럽공동체법’을 전공했다. 이와 관련된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현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으며 시인이기도 하다. <늙은 아내의 마지막 기도>, <저승꽃>, <우리는 늘 혼자다> 등의 시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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