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의 국부유출과 재벌 경제의 대외의존성 (9)

이제까지 한국경제의 최대 화두는 수출과 성장이었다.

개발독재 시대에는 수출 대기업에 관치금융, 정부조달, 수출장려금 등이 주어졌으며, 역대 정부들은 ‘수출만이 살길’이라면서 재벌 대기업들의 실적을 국민경제의 성장이라고 선전하였고, 수백조 원의 외국환평형기금을 조성하여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 대기업을 지원하였다.

WTO 규제로 정부의 대기업에 대한 산업보조금은 공식적으로는 없지만, 공기업을 통한 연구개발 지원, R&D 세금감면 등이 지속되고 있다.

납품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하청기업이 되어 불공정거래가 고착되었고, 저임금과 비정규직 사용으로 수출가격 경쟁력을 유지하였다. 따라서 수출이 늘어날수록 재벌 총수와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머니는 볼록해졌지만 낙수효과는 사라지고 양극화만 확대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수출 대기업들은 내수를 떠받치는 국민들의 소득보다는 대외무역 조건을 우선하게 된다. ‘외국의 지불능력’, ‘외국기업의 요구’, ‘환율’, ‘무역장벽’ 등이 수출기업의 최대 관심사다. 따라서 ‘자기 나라 국민에 대한 서비스’, ‘국민들의 소비 여력(고용과 소득 안정)’ 등에는 관심이 없고 외국의 대외정책과 외국 바이어(Buyer) 눈치 보기에 바쁘다. 한국의 자동차회사는 미국 등에서 발생한 제품결함 리콜 서비스에는 매우 책임적이나, 비슷한 결함이 발생한 국내 소비자에 대한 리콜에는 인색하다.

▲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나아가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재벌기업들은, 미국에 공장을 짓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순응하여 아래 표와 같이 현지공장을 크게 늘려 왔다. 2018년 화성·평택에 설립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제외하고는, 최근 20년 동안 한국에 규모 있는 제조 공장이 신설된 경우가 별로 없으며, 국내에서 생산하던 수출 물량은 미국(무역압박 때문)과 개도국(비용절감 때문)의 현지생산으로 대체되어 국내 생산능력이 감소하고 국내 고용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 트럼프 집권 이후 주요 대기업의 미국 투자 현황 (단위: 달러, 자료 : 각 언론사, 해당 기업)
▲ 트럼프 집권 이후 주요 대기업의 미국 투자 현황 (단위: 달러, 자료 : 각 언론사, 해당 기업)

바이든 시대에도, 2021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국내 4대 재벌이 미국에 44.2조 원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9.1조 원, 1.1조 원을 투자하여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설립하기로 하였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에 15.7조 원을 투자하기로 하였다. 현대차는 전기차 생산과 충전 인프라 등에 8.3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한편, 한국 대기업의 수출은 원료와 부품을 수입하여 최종재를 조립하는 가공무역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있어, 주요한 소재·부품·장비의 수입 비중이 크다. 한국이 반도체를 수출하려면 반도체 원료인 실리콘, 핵심 소재와 부품, 반도체 장비 등을 일본, 미국, 독일 등에서 수입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에서 한국은 수출한 만큼 수입도 증가하므로 무역의존도가 G20 국가 중 독일(70.8)에 이어 세계 2위(63.5%)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1위인 독일은 관세가 폐지되고 단일 통화가 실현된 국가연합 수준인 유럽연합(EU)으로의 거래(59%)를 수출로 계산하므로 무역의존도가 높지만, 한국의 경우는 전적으로 대외의존적형 경제구조 때문이다.

무역의존도란, 한 나라 경제가 무역에 의존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1년간의 수출액과 수입액의 합계를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비율이다. 우리나라 무역의존도는 1960년대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취해 온 이래 꾸준히 증가해 1990년대 중반까지 40%대를 유지하다가 이후 상승을 거듭해 2000년에 60%대로 증가했다. 그리고 2007년에 62.1%를 기록한 데 이어 2008년에 사상 처음으로 80%를 넘어섰다.

보통 인구가 작아서 내수기반이 취약하거나, 부존자원이 없어 생존 차원에서 국제무역에 주력하는 도시국가 형태인 싱가포르, 홍콩, 대만,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은 무역의존도가 높다. 반면 미국, 일본, 중국 등 인구가 많고 내수기반이 튼튼한 국가들의 무역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아래 그림과 같이 인구 5천만 명을 넘는 OECD 국가 중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종속적인 국제분업구조에서, 무역의존도가 높을수록 국부유출과 양극화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

▲ 2019년 G20 12개국의 무역의존도 (단위: %, 자료 : 통계청(2021))  * 중국은 2017년 통계이며 G20 국가는 아님.
▲ 2019년 G20 12개국의 무역의존도 (단위: %, 자료 : 통계청(2021)) * 중국은 2017년 통계이며 G20 국가는 아님.
▲ 무역의존도 증감 추이 (단위: %, 자료 : 통계청(2021))
▲ 무역의존도 증감 추이 (단위: %, 자료 : 통계청(2021))

위 그림은 금융위기 이후 한국 무역의존도의 하락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수출의존도(수출의 대 GDP 비율)는 코로나 충격으로 2020년 32.9%를 기록하여, 2007년 31.7% 이후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위와 같이 ‘세계적인 보호무역과 유가변동’, ‘미국의 금리인상’, ‘환율 변동’, ‘전염병과 봉쇄’ 등 대외변수가 발생하여 한국경제는 양적 성장마저 유지하기 어려운 조건에 봉착한다. 따라서 민간소비 등 내수와 정부투자 비중을 높여야, 수출의 한계를 만회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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