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의 국부유출과 재벌 경제의 대외의존성 (7)

주요 조세피난처
주요 조세피난처

1. 국제조세체제

20세기 국제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다국적기업의 소득에 대해 어느 나라가 과세권을 행사할 것인가가 국제적인 문제가 되었다.

거주지주의는 자국 기업의 전 세계소득에 대해 거주지국(자본수출국)이 과세한다는 입장이며, 원천지주의는 국적에 상관없이 자본수입국에서 발생한 모든 소득에 대해서 원천지국이 과세권을 가진다는 입장이다. 당시 영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에 대한 과세권을 확보하기 위해 거주지주의를 채택하였고,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은 절충적인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국들은 원천지주의를 주장하였다.

거주지주의(속인주의)는 국내와 해외 어느 곳에 투자해도 동일한 과세가 이루어지므로, 투자자들이 세 부담과 관계없이 가장 생산성이 높은 지역에 자본을 투자할 수 있어, 조세에 의해 투자배분의 왜곡 없이 투자 효율의 극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반면 원천지주의(속지주의)는 소득이 창출된 곳에서 과세가 이루어져야 하고, 소득 창출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해 준 국가에게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른다. 

결국 영국, 미국 등 자본수출국의 이익을 우선하여 OECD 모델조약이 탄생하였다. 이에 따르면 이자, 배당, 사용료, 국제운수, 독립개인용역, 양도 등의 대부분의 소득에 거주지주의가 적용되며, 고정사업장(공장, 매장, 사업소, 창고 등 고정시설)이 있는 경우에만 원천지주의가 적용된다. 하지만 각국의 입장 차이로, 국제조세체제는 WTO와 같은 통일적인 국제규범이 없는 가운데, OECD 모델조약에 근거한 수백 개의 양자간 조세조약으로 난립하게 되었다.

모델조약에 따르면, 외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은 고정사업장을 기준으로 법인세가 부과된다. 예외조항과 이전가격 등의 편법이 있었지만, 산업화시대에는 생산과 판매시 고정사업장이 존재하고 무역은 세관을 통해야 하므로 상품에 대한 과세가 가능했다. 그러나 서비스시대로 전환하면서 디지털화, 금융화, 무형화(지적재산권)가 확대되어, 상품과 공장 등 물리적 실체를 근거로 한 과세 방식에 허점이 발생하였다.

조세피난처 자금규모
조세피난처 자금규모

2. 미국계 ICT기업들의 조세회피

디지털경제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 되는 소프트웨어나 앱이 있으면 세계 어떤 위치에서도 고정사업장 없이도 거래가 가능하다. 이런 조건을 활용한 대표적 사례가 미국계 ICT 기업들의 절세 전략이다.

구글은 미국 매출 비중이 20% 정도이고 해외 매출 비중이 80%이다. 그런데 2015년 해외 수익에 대한 실효세율은 2.4%에 불과하다. 

애플의 경우 아일랜드 자회사에 유보된 이익이 1,020억 달러로 알려졌는데, 이 유보이익을 배당하여 미국으로 환수하면 당시 법인세 35%를 조세당국에 납부해야 한다.

다국적기업의 절세 행위에 대해, 레빈 의원은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계 다국적기업들이 1조 9,000억 달러의 소득을 해외 조세피난처에 축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하면 애플의 해외소득은 2011년 240억 달러, 2012년 368억 달러, 2013년 305억 달러이다. 그러나 위의 그림처럼 해외납부 법인세는 동 기간 중 각각 6억 200만 달러, 7억 1,300만 달러, 11억 3,3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애플의 해외 소득이 전체 소득의 70%를 차지하지만 해외 법인세 납부액은 미국납부 법인세의 10%도 되지 않았다.

미국계 다국적기업 애플의 조세회피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애플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원천지국에서 발생한 소득을 조세혜택이 있는 경유지국을 통과하여 조세피난처로 가져간다. 미국본사로 소득을 가져가지 않고 조세피난처에 소득을 유보하면 조세를 이연할 수 있다. 원천지는 고세율국이므로 현지사업을 할 때 과세가능한 고정사업장을 두지 않고 발생하는 소득을 저세율국으로 이전한다. 여기서는 자산과 리스크를 최소화한다. 조세특례가 있는 경유지에서 다양한 절세 기제를 활용하고 비용공제는 최대화한다. 소득은 최종적으로 법인세가 0원인 조세피난처로 이전한다. 본사가 있는 거주지는 고세율국이지만 조세피난처에 있는 소득이 배당이나 이자로 거주지국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과세가 이연된다.

아래 그림에서 애플의 미국 본사는 유럽에서 법인세율이 가장 낮은 아일랜드에 유럽판매법인과 유럽특수제조법인을 설립하고, 이들과 원가분담협약(CSA)을 맺어 본사의 지적재산권 사용권을 부여하는 대신 본사의 연구개발비 비용을 분담시킨다. 유럽판매법인은 애플의 OEM 메이커들로부터 제품을 구입해서 유럽, 중동, 아프리카, 인도에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소비자들은 해당 국가의 애플 매장에서 제품을 구입하지만, 매출처는 아일랜드의 유럽판매법인으로 처리된다. 따라서 막대한 매출 이득은 원천지국이 아니라 거주지국의 유럽판매법인으로 집중된다. 여기서 유럽판매법인은 회계장부를 본사계정(head office)과 아일랜드 현지계정(Irish branch)으로 분리하여, 대부분의 이익을 본사계정에 넣고, 최소 이익만을 현지계정에 남겼다. 아일랜드는 현지계정의 이익에 대해서만 법인세를 부과했고 본사계정에는 과세하지 않는다. 유럽특수제조법인도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12.5%인데, 유럽판매법인의 2011년 실효세율은 0.05%에 불과했다. 이는 아일랜드가 저세율 혜택을 주면서 자본을 유인하여 등록세 등 별도의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에서 발생한 것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애플에게 본사계정이라는 가상 계정을 인정하고, 동 계정에 귀속된 소득에 대해 비과세 처리하는 특단의 사전세무답변(tax ruling)을 해 주었다. 아일랜드는 관리장소를 거주지로 인정하여 아일랜드에 법인이 있어도 그 경영이 외국에서 이루어지면 아일랜드에서 과세하지 않았다. 페이퍼컴퍼니인 본사계정의 관리장소는 이사회가 열리는 조세피난처(버진아일랜드 등)로 기록하였다. 따라서 본사계정은 아일랜드에 과세 의무가 없다. 이는 법인 소재지와 과세권의 소재지를 불일치시켜 조세를 회피하는 기법이다.

EC는 오랜 조사 끝에 본사계정과 현지계정 간의 이익분배가 경제적 실질(economic reality)에 근거하지 않음으로써 독립기업거래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위배한 것으로 판단했다. 

아일랜드 정부가 애플에게 특단의 사전세무답변(tax ruling)을 통하여 다른 기업보다 세금을 덜 내도록 허용한 것은 EU의 state aid rule을 위반한 것이다.

이에 2016년 EC는 아일랜드 정부에게 2003∼2014년 기간 동안 납부되지 않은 130억 유로(17조 9,000억 원)를 이자와 함께 애플로부터 추징할 것을 명령하였다.

3. 국내 진출한 다국적기업들의 조세회피

한국의 경우도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가 심각하다. 
아래 표의 앱마켓 매출액을 보면 구글과 애플이 88%를 점유하고 있으나, 법인세는 거의 내지 않는다. 6조원의 매출을 올린 구글은 한국에 97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했고, 매출액이 1조원도 되지 않는 네이버는 법인세로 4,633억원(11.2%)을 납부하였다. 구글과 애플에 같은 세율(11.2%)을 적용하면 구글은 6,720억 원, 애플은 2,576억 원의 법인세를 한국에 납부해야 한다.

구글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앱 사업 관련 법인 소득신고와 세금납부를 고정사업장이 있다는 싱가포르에 하고 있다. IT기업의 경우 고정사업장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서버인데, 구글 아시아퍼시픽 서버는 싱가포르에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 다른 나라들처럼 구글세 등을 제정하여 다국적기업에 과세하지 못했다.

2015년 11월 15~16일(현지시간)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에 대응해 국제 조세제도를 개혁하는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BEPS) 대응방안'이 최종 승인됐다. 이른바 '구글세'로 불린다.[사진 :뉴시스]
2015년 11월 15~16일(현지시간)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에 대응해 국제 조세제도를 개혁하는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BEPS) 대응방안'이 최종 승인됐다. 이른바 '구글세'로 불린다.[사진 :뉴시스]

4. 글로벌 법인세 도입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가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많은 나라에서 구글세 등으로 조세주권을 행사하자 결국 미국이 양보하여 G20 제13차 총회에서 글로벌 디지털세 도입이 채택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수익을 벌어들이는 글로벌 대기업들이 본국뿐 아니라 실제로 서비스를 공급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나라에서도 2023년부터 세금을 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법인세는 연간 기준 연결매출액이 200억유로(27조원), 이익률이 10% 이상인 대기업 매출에 대한 과세권(초과이익 25%)을 시장 소재국에 배분하는 필라 1과, 연결매출액이 7억5000만유로(1조원) 이상인 다국적 기업에 대해 15%의 글로벌 최저한세율을 적용하는 필라 2로 구분된다. 
2021년 9월 현재 136개국이 글로벌 법인세 도입에 합의하였다.

한국의 경우 국내에서 이윤을 창출하고도 과세하지 않는 다국적기업들에 대해 과세권을 행사할 수 있어 정부 세수가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의 해외 세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납부하는 것보다는 국내에서 과세권을 행사하는 게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측된다. 

전경련은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여 디지털세(글로벌 법인세)를 최소화하고 범위를 제한해 달라고 OECD에 건의하였다. 이는 다국적기업 과세로 세수가 확대되는 국민경제를 우선하지 않고 대기업 입장만 고려하는 편협한 행동이다.

글로벌 법인세는 자본수출국 중심의 국제조세체제 100년의 역사에서 혁명적 변화이다.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와 선진국 중심의 과세권을, 이익이 창출된 곳, 즉 자본수입국에서도 과세할 수 있는 거대한 전환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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