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계단 오르기]첫 번째 계단 - 시인 조연희, 詩의 사생활 11

예술가들에게 삶은 그 자체로 원천이다. 어머니의 품 안에 담겨져 있던 몸의 기억들이 순명의 두레박을 타고 한 가득 예술의 영감으로 길어 올려 진다. 그 안에 담긴 기억들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한 단계씩 오르고 올라 예술의 열매를 맺는다. ‘예술로 계단 오르기’는 길어 올리는 과정에서 두레박 밖으로 떨어지는 순명의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은 예술가의 퍼즐 맞추기다. 그 첫 번째 계단을 조연희 작가가 오른다. <시의 사생활>로…,

신분을 입다

그때 나는 ‘사도세자’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 사도세자가 쌀을 보관하는 뒤주에 8일간 갇혀 굶어 죽었다는 내용이었는데, 마침 오빠가 입대할 때 입고 간 ‘민간인복’이 배달돼 왔다. 오빠가 상자 속에 한 벌의 옷으로 접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각뒤주 속에 갇힌 사도세자와 자꾸 겹쳐지는 것이었다.

오빠는 어쩌면 달라질 지도 모른다. 경계선을 넘으면 베일 것 같은 날 선 ‘군복’의 오빠가 자기규율과 제도를 구겨버린 것 같은 헐렁한 ‘민간인복’의 그 오빠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생각도 달라지는 법이니까. 복장이 생각과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상자에 허물처럼 담겨온 셔츠를 보자 나는 오빠가 스스로 사각 뒤주에 구겨져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괜히 슬퍼졌다.

 

두 강박증 환자의 해프닝, 임오화변

알다시피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었다. 그것도 영조인 친부에 의해서. 이 사건을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난 지극히 개인사적인 측면으로 읽혔다. 그 부자는 둘 다 극단적인 강박증 환자였을 것이다. 아버지 영조는 외향적 강박증 환자. 그는 밖에서 돌아오면 옷부터 갈아입었고, 불길한 얘기를 하거나 들은 뒤에는 귀를 씻고 양치질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기분에 따라 출입하는 궁문도 달랐다. 만안문을 들어서는 날은 우울한 날이고, 경화문을 들어서는 날은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이런 강박증적인 성격은 호불호도 분명해 한번 싫으면 무조건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사도세자의 우유부단함과 실수들을 용납하지 못했다고 한다. 무조건 싫어하는 자식 중의 하나가 바로 사도세자였다고 하니까.

▲ 사도세자가 갇혀 죽은 수원 화성행궁의 뒤주

아버지의 이런 강박증적인 기질을 내리기 한 사도세자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강박증 환자로 보인다. 아버지와는 조금 다른 점액질 적이고 내성적인 환자. 사도세자는 아버지와는 반대로 극단적으로 옷을 갈아입는 것을 싫어했다. 한번 옷을 갈아입히려면 10벌쯤 준비해두어야 했고, 이것저것 트집 잡아 불태워버리거나 없애버리기 일쑤였다. 간신히 옷을 갈아입으면, 때가 덕지덕지 앉을 때까지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그런데 특정한 옷에 대해서는 이상한 집착이 있어, 궁녀의 옷이나 상궁의 옷을 보면 입고 싶어서 자제력을 잃고는 했다는 것이다.

무수리 출신 어머니를 둔 영조는 출신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42살에 귀하게 얻은 세자를 훌륭하게 교육시키고 싶은 열망이 더욱 남달랐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요즘 말로 영재교육을 시켰다. 사도세자는 3살 때 효경을 외웠고, 7살 때 동몽선습을 독파할 정도로 비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한 치의 실수도 용납지 않는 엄한 아버지와 결핍된 구강기를 보냈기에 성격이 기이해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임오화변이라 부르는 이 사건이 내게는 자꾸 두 강박증 환자가 벌인 비극적 해프닝으로 읽히는 것은, 벗어버릴 수 없는 옷에 관한 상반된 기호를 가졌던 두 강박증 부자의 이야기로 읽히는 것은 왜일까. 사실 모든 아버지는 아들, 특히 장손에 대해 강박증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는 강박증 환자였다. 반듯한 네 꼭짓점을 붙들고서야 비로소 균형 잡는 ‘마주 보는 변의 길이가 다르거나’‘마주 보는 두 쌍의 길이가 평행이 아닐 때’ 떨어진 모서리 한 조각 주워들고서도 정맥이 불거지는 아버지는 사각뒤주였다. 난 영원한 의대증(衣帶症)환자였으므로 이 옷 저 옷 기웃거릴 뿐 스스로 신분을 끊을 수도 다른 신분으로 갈아입을 수도 없었다. 사각뒤주는 유일한 내 도포였다. 윤달 같은 골방이었다. 아버지에게 우린 언제나 다운증후군에 걸린 딸 들이거나 정신분열의 아들들이었으므로 아버지는 뒤주 하나씩 던져주고 이상하게도 밤마다 우리는 네 각이 거세된 방을 꿈꾸었다. 학질에 걸린 세상 달도 꽃도 나무도 모두 네모나게 보일 때쯤 문득 사각형의 내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네모나게 굴러갔다. 내 혁명은 고작 바람이거나 별이거나 어쩌다 왕실의 미늘창을 기웃거리는 자귀나무쯤이었으므로 모든 불행은 아버지의 힘이 넘칠 때 시작됐다. 불화의 전모를 알 수 없는 뒤주 속에서 이 땅의 의심 많은 아버지와 유약한 아들들이 一家를 이루고

 

(가로인 어머니의 길이)×(세로인 사도세자의 길이)×(아버지의 높이)=사각 뒤주의 부피

 

강남구 압구정동 어느새 높게 키가 자라 있는

사각뒤주와 뒤주 사이

눈물 많은 어머니들 밑넓이로 누워 있으면

주먹 센 아버지, 그 각을 밟고 섰고

우유부단한 아들이나 딸들,

대칭을 이루며 한 변을 쏘아보고 있었다.

 

사각 숲 모서리 모서리들 속으로

익명의 수많은 사도세자들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졸시 ‘사각뒤주의 추억’ 전문

* 의대증:특정한 옷에 대한 기피나 선호사상

 

나는 아버지를 보며 문득 잠시 숨을 멈춘 종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혈통을 이어가기 위한 일종의 휴면상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아들이 없던 할아버지는 40살 넘어 양자를 들이고 나서야 늦둥이를 줄줄이 3형제나 보게 되었다. 그중의 첫째가 아버지였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종손에게 아들이 없자 집 안에서는 다시 지금의 어머니와 결혼을 시킨 것이고 지금의 오빠, 단 하나의 종자를 간신히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 외로운 종자 안에 어떤 유전자 정보를 담고 싶었던 것일까. 그토록 무심하고 무관심한 아버지도 대학생들의 데모에 대해서는 철없는 짓이라고 한마디 하며 반감을 표시하곤 했다. 상자 안에는 오빠의 옷과 함께 편지도 한 통 들어 있었다.

 

 

청춘의 푸른 골방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조금 전 신병훈련이 끝났습니다. 곧 자대 배치가 되겠지요. 그날 아버지의 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연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일부로 오셨는지 알 수 없지만 가투를 벌이던 날 아버지가 그곳에 나타나셨지요. 아버지는 다짜고짜 다가와 제 손을 끌어당겼습니다. 그리고 손가락 깍지를 끼고 놓아주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앙상하고 악력이 센 손은 처음이었습니다. 단단한 나무뿌리가 내 손을 얽어매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그 뿌리에서 세찬 물줄기가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버지, 까닭 없이 피가 끓어오르고는 했습니다. 군대는 어쩌면 제 청춘의 푸른 골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빠의 편지는 그 다음부터는 의례적인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군기가 각 잡힌 군복 같은 내용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큰 소리로 편지를 읽어주었다. 어떤 구절에서는 엄마의 요청으로 몇 번씩 다시 읽었다. 그러는 사이 으스름 햇살이 편지 위로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조국을 위해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는 말을 끝으로 난 편지를 접었다.

 

중력을 견디다

창밖을 보았다. 산동네에서 내려다보니 세상은 첩첩이 쌓인 사각형의 형국이었다. 높은 빌딩과 빌딩 사이로 둥그런 해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문득 사각형이란 4개의 힘으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력과 항력, 추력, 양력. 아래로 누르는 힘과 비상하려는 힘,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과 뒤로 당기는 힘. 그 4가지 힘의 조화가 진정한 사각형의 모습이 아니던가. 우리가 산다는 것은 어쩌면 ‘중력을 견디는 일’이고 아버지는 중력과 항력, 추력, 양력 그 교차점에서 안간힘을 썼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는 ‘찌그러진 사각형’이었고 우리는 ‘일그러진 힘’이었다.

나는 오빠의 민간인복과 편지가 들어 있는 상자를 다시 잘 접었다. 오빠 말대로 ‘청춘의 푸른 골방’처럼 상자는 마지막 스러지는 석양을 받으며 우울하게 빛나고 있었다.

 

 

* 조연희 시인은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시산맥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 영상기획 및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빅시스템즈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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