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을 둘러싸고 남‧북‧미 3국이 모두 딴 꿈을 꾸고 있어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어느 쪽도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정전체제를 끝내고 평화체제로 가기 위한 도입부라는 종전선언 본래의 취지에는 전적인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종전선언에 대한 각국의 속내를 살펴보자.

미, 비핵화 불씨 살리기

미국이 지금까지 입 밖에도 꺼내지 않던 종전선언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꺼져버린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본심을 숨기지 않는다.

지난 24일 미국 국무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 추진에 대한 질문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면서, 종전선언에 대한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삼가면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 기조를 거듭 강조했다.

앞서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미국은 종전선언 논의에 열려 있지만 복잡한 문제라며 애매한 입장을 표명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종전선언 추진을 미끼로 북을 비핵화 협상장에 끌어들이려는 속셈이다.

실제 미국에 있어 종전선언 추진은 매우 부담스러운 사안이다. 종전선언이 제 궤도를 타게 될 경우 자칫 평화협정으로 이어져 북한(조선)과의 국교 수립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종전선언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북이 응할 리 없는 한반도 비핵화를 의제로 허구한 날 대화만 구걸할 수도 없는 딱한 처지가 되다 보니, 종전선언을 그저 미끼로밖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북한(조선)이 그 미끼를 물 리 만무하다.

남, 대선 전략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말 종전선언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는 대선 정국에 북미대화 재개와 남북관계 개선이 정권 재창출에 도움 된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남‧북‧미‧중 정상회담을 갖고 종전을 선언하는 그림을 연출하려고 구상했다. 그러나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으로 발전할 것을 우려한 미국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부추겨 북한(조선)의 올림픽 공식 참가를 불허해 버렸다. 이에 IOC를 설득하는 한편 유엔총회 자리에서 종전선언을 재차 추진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임기 말에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은 ‘4.27판문점선언’같은 빅 이벤트를 통해 정권 재창출을 시도해 봄 직하다.

북, 대북 적대정책 철회

종전선언에 대한 북한(조선)의 입장은 아주 담백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종전선언과 관련해 “북남 사이의 불신과 대결의 불씨로 되고 있는 요인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종전을 선언한다 해도 적대적인 행위들이 계속될 것이고 그로 하여 예상치 않았던 여러 가지 충돌이 재발될 수 있으며 온 겨레와 국제사회에 우려심 만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며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거듭 표명했다.

이어 “종전을 선언하기에 앞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되어야 한다”는 선결 과제를 제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 “지난 8개월간의 행적이 명백히 보여준 바와 같이 우리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적대시 정책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으며 오히려 그 표현 형태와 수법은 더욱 교활해지고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할 때까지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이 이날 발표한 대남정책으로 볼 때 종전선언은 물 건너갔지만, 남북 정상회담은 성사될 가능성이 아직은 남은 듯 보인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만이라도 ‘도발’이라는 이중기준을 적용해 북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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