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격변기, 한반도의 선택 (2)

지난해 7월 10일 김여정 제1부부장은 “미국 독립기념일기념행사 DVD를 꼭 얻으려 한다는 데 위원장 동지의 허락을 받았다”는 알쏭달쏭한 내용이 담긴 담화를 발표한다. 세간에서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이 담화에 담긴 대미 메시지는 이 담화가 품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이 9일 “북미 고위지도자들이 다시 모일 수 있기를 매우 희망한다.”며 사실상 북미정상회담을 제안한 지 6시간 만에 나왔다는 점에서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화답이다. 조건만 맞으면 김정은 위원장 또는 자신이 미국독립기념일행사에 참석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폼페이오의 북미정상회담 제안은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에게 정치적 위기를 돌파할 카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던 김 제1부부장이 같은 담화에서 “위원장께서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에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한다는 인사를 전해달라 하셨다.”고 말한다. 트럼프의 재선을 위해서는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참석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이와 함께 김 제1부부장은 “미국은 대선 전야에 아직 받지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될까 걱정할 텐데 미국의 처신에 달려 있다.”는 말도 한다. ‘아직 받지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북이 미국의 태도전환을 촉구하며 통보한 2019년 말 시한을 한 달 앞둔 2019년 12월 3일 리태성 외무성 미국담당부상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할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고 말한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트럼프에게 대선을 앞두고 독립기념일행사 참석이라는 선물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ICBM 발사와 같은 선물을 받을 건지 선택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트럼프는 세계사의 향방을 결정할 결단을 하지 못했다. 트럼프는 결단하지 못했지만, 북은 트럼프의 재선 행보에 훼방을 놓는 선물을 보내지도 않았다. 트럼프 재선 이후 협상 여지를 남겨 둔 것이다.

1. 북미 비핵화협상은 완전히 끝났다

트럼프의 낙선과 바이든 정권의 등장으로 북미협상의 여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는 바이든 정권이 트럼프 정권보다 대결정책을 들고나올 것이라는 분석에 기초한 것만이 아니다. 길게는 70년 넘게 짧게는 90년대 이후 대결과 협상을 반복해 온 북미대결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진입함을 말한다.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후반에 이르는 북미 비핵화 협상은 자위적 핵무장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북, 중동지역에 힘을 집중해야 했던 미국의 사정, 남측에 평화 지향적인 정권의 등장 등이 맞물린 결과이다.

하노이 회담에서 시작된 북미협상에 북이 미국의 태도 변화를 기대했는지 아니면 핵보유국을 기정사실화하고 핵무장 강화를 위한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전술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북은 핵보유국, 전략국가로서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과시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핵능력을 고도화해 나갈 수 있는 명분도 축적했다. 핵무장 완성단계에서 있을 수도 있는 미국의 군사적 공격을 무산시킨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 해석이 어떠하던 북은 핵억제력을 고도화하는 조치에 본격 돌입할 것이다. 핵과 미사일시험 중단은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이라는 단서가 붙어있었다. 이제 핵과 미사일 시험은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 핵무기는 소형화 경량화, 대량생산은 물론, 초대형 핵탄두, 전술핵무기 개발 등이 본격화할 것이고 운반수단은 ICBM의 대기권재돌입기술, 다탄두 등 요격 회피능력,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SLBM 능력의 고도화와 함께 군사위성 발사도 본격화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향후 북의 핵과 미사일 시험 등이 지금까지 군사기술적 준비와 함께 미국을 협상으로 끌어내기 위한 공세적 측면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핵능력을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직진한다는 것이다.

북은 과거와 같은 협상은 결코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시간벌기용, 여론몰이용 대화놀음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이 최근 최선희 부상의 담화를 통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두 가지이다. 대북 적대정책 철회와 서로 동등한 조건의 협상이다. 한마디로 핵보유국 대 핵보유국 간의 동등한 관계정상화협상이 아니면 그 어떤 협상도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2. 힘의 균형에서 힘으로 제압 단계로

김정은 총비서는 8차당대회 총결보고를 통해 대외정책을 “최대의 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사키는 데 초점을 맞출 것”임을 분명히 했다.

2017년 화성12형 발사 시기 김정은 총비서가 ‘힘의 균형’을 말한 점을 상기해 보면 북의 목표가 힘의 균형단계를 넘어 미국을 힘으로 제압 굴복시키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0년대 이후 핵무력 완성에 이르는 국면이 ‘사회주의 수호기’였다면 핵무력 완성 이후 힘의 균형기를 넘어서 힘의 우위를 통한 제압을 준비하는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북은 8차당대회를 통해 이를 ‘사회주의 혁명의 새로운 고조기. 장엄한 격변기를 열기 위한 공세기’로 규정하였다.

북이 미국을 힘으로 제압하는 노선을 갑자기 가진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는 결코 제 발로 물러나지 않으며, 오직 전민중, 전 민족의 힘으로 몰아내야 한다는 ‘반제전민항쟁’ 노선은 북의 일관한 전략 노선이었다.

그러나 8차당대회를 통해 확인된 북의 대미정책은 일반적인 전략적 입장의 표현만은 아니다. 실질적인 군사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힘으로 제압하는 반미전민항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것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정은 총비서는 이 싸움을 장기전으로 보고 있다. 협상을 통해서는 그 어떤 선의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된 조건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력으로 미국을 제압하는 길로 가겠다는 결심인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우리 편이다.”는 김정은 총비서의 말에서 최종적인 승리에 대한 확신도 느껴진다.

“조선은 누구 편이냐?”라는 물음에 “(중국) 명나라 편입니다”라는 답변만으로 평온해질 수 없는 상태를 격변기라 부른다. 광해군과 인조반정이 일어난 ‘명청교체기’, 구한말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만주진출 시기가 대표적인 격변기다. 우리 근대사는 두 번의 격변기에 모두 국운이 몰락하고 말았다. 1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격변기, 역사의 교훈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편집자]

(1) 격변기를 알리는 3가지 징후

(2) 북, 반미 전민항쟁 준비에 박차

(3) 적대관계로 돌아선 남과 북

(4) 격변기, 한반도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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