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일 광화문광장서 뮤지컬 <화순1946>이 전하는 역사 메시지

‘1946년 화순탄광 15호 갱도가 무너졌다’ 이렇게 시작되는 스텐딩뮤지컬 <화순1946>이 오는 8일 저녁 8시 광화문 북측광장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의 손으로 해방을 맞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아쉬움이 여기저기서 새어나왔던 연유를 알게 해준 화순탄광사건. 1946년의 화순탄광 광부들과 그 가족들의 일은 마치 바람의 흔적과도 같은 것이어서 기억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뮤지컬 <화순1946>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역사책 속 몇 줄의 글로만 남겨져 있었으리라.

예술은 사라져버리는 것들에 대한 기억과 연민을 끌어내는 작업이라는 걸, 그것이 또 하나의 예술의 사명이라는 것을 <화순1946>은 화순사건이 발생하고 광부들이 광주로 가던 길목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지 70년 만에 화살의 시위처럼 ‘툭’ 우리에게 튕겨주었다.

오랜 고민과 작업 끝에 시위를 당겨준 제작자이자 연출, 시나리오작가 등을 맡은 총기획자인 류성(42)씨를 최근 만났다. 종로5가 아주 지독하리만큼 머리를 쓰게 만들며 찾아간 연습실은 가시덤불을 헤치고 찾아낸 숲속의 궁전 같은 느낌이었다.

겉이 화려해서가 아니라 긴 원형의 하얀 천장이 주는 시각적인 느낌과 100명에 이르는 출연진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때문이리라. 남성과 여성으로 배치된 두 무리의 군중씬을 연습 중이었는데 주고받는 합창의 울림이 천장을 치고 가슴선으로 내려앉았다. 거기에 한 남성이 의자에 올라가 목청을 올리며 배우들에게 움직임과 노래의 의미를 던지고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기획자 류성씨다. 마흔 초반의 그는 잠시 기다려 달라는 양해를 구하고 배우들과 연습에 몰입했다. 오후 5시쯤 참여한 배우들은 92명, 총 출연진 98명이니 거의 다 온 셈이다. 40여분 연습을 하는 동안 배우들은 다 도착해서 자신의 자리를 채워나갔다.

‘1946년 화순탄광 15호 갱도가 무너졌다’ 나직한 한 남성 배우의 독백이 끝나자 “여기 사람이 있디‘로 시작되는 외침들이 합창으로 흘러나오고 배우들의 표정은 굳건해지기 시작한다. 잠깐의 연습장면에서도 무엇을 이야기할지 알 것 같았다. 1차 동선과 움직임 연습이 끝나고 잠시 류성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에게 묻고 싶은 첫 마디가 이거였다. “왜 화순탄광사건인가요?”

그가 대답했다. “7~8년 전인 거 같아요. 우연히 화순탄광사건에 대해 알게 됐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충격적이었어요.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건 우리 사회에 계속 닮은 일들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쌍용자동차, 세월호사건, 성주 사드배치 건 등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는 거지요. 사실 화순탄광사건 자체를 알리거나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이런 사건들이 비극적이고 절망적이라고 무릎을 꿇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용기를 내자 이런 얘기인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과 오버랩이 됐어요.”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뒤통수를 한 대 때리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조국은 우리를 구하지 않는다’ 이런 가사가 있어요 노래 속에요. 작년에 쓴 건데 올해 성주 사드배치 반대 현수막에 이 문구가 있는 거예요. 서로 알지 못하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국가에 대해서. 국가가 있고 정부가 있는데도 이게 우리를 구하지 않는 거지요, 보호하지 않고. 그런 부분에서 많이 놀랐어요.“

미군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정부가 광복절 기념행사에 가는 광부들에게 겨누는 총구를 묵인했다는 건 믿기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36년간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을 견뎌내며 버텨왔던 내 나라 국민들에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시대만 바뀌었을 뿐 뭐가 다른가’라는 생각이 그에게도 ‘훅’ 들어왔던 것이다.

2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발목을 잡고 있는 세월호 참사며 국가안보보다는 미국의 국익에 훨씬 무게가 실린 사드배치 문제 등이 화순탄광사건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역사의 자연스러운 물길을 강제로 막아버렸으니 그 아래에서 생기는 일도 결코 다를 수 없다는 것이리라.

우리의 근현대사를 끌어내고 잊혀가는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의미를 넘어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 <화순1946>은 지난해 7월부터 연습을 시작해 초청 공연 포함, 4차에 걸친 공연에서도 한 명의 배우도 이탈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계속 ‘화순’의 배우로 남고 싶다고 한다. 처음 배우를 모집할 때 ‘페이 없음, 변명도 해명도 핑계도 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일주일만에 출연인원 50명이 꽉 찼다고 한다. 그가 만든 극단 ‘경험과 상상’ 단원과 모집한 배우를 합해서 말이다.

그리고 오는 8일 광화문광장 공연을 무모하게 준비하고 배우를 50명에서 100명으로 증원해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모집했는데 역시 단번에 출연진이 꽉 찼다는 것. 그 가운데엔 지난해 공연을 본 배우들이 있었는데 <화순>이 배우를 뽑기를 기다렸다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고. 어떤 배우는 다른 출연작품을 조정하면서까지 이 작업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왜 <화순>은 배우들이 꼭 출연하고 싶은 작품이 됐을까?

오혜진, 박종욱 배우부부는 6개월 된 아기인 서인이를 데리고 함께 출연했는데 그 아이가 벌써 20개월이다. 최연소 배우로 등극한 셈이다. 나이가 어린 배우들은 이 공연에 출연한 뒤 함께 안산에 있는 세월호 분향소를 찾기도 하면서 사회 문제에 눈 뜨기도 한단다. 자신이 몰랐던 역사의 진실을 공연을 통해 터득하며 찾아나서는 것, 그래서 비로소 역사를 알게 되는 배우다움을 갖춰가는 것, 그런 마음들이 이 작품에 계속 출연하고 싶은 이유가 아닐까.

하루 밥값만 100만원이 나가고 연습실 사용료까지 합하면 일주일이면 1000여 만원의 돈은 기본으로 나가는데 출연진을 줄여서 갈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인원이 많아지면 내부 문제도 발생할 수 있을텐데..., 제작자로 가장 아픈, 이런 질문도 해봤다.

그는 대답한다. 이 공연을 하면서 집단의 기운을 느꼈다고. 오히려 소수일 때보다 문제가 적게 일어나고 서로 챙겨주기도 한다고, 가족처럼. 광화문공연 한 달여를 앞두고 지난달 1일부터 연습에 들어갔는데 아주 짧은 연습기간임에도 아무 탈없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는 것은 기존에 참여했던 배우들이 새로 들어온 배우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걱정이 크다. 광화문광장 공연 규모는 적어도 3억에서 5억 정도의 예산이 들 텐데, 음향이나 조명 등은 대부분 실비로 도와준다고 해도 이것 저것 잡비 등까지 합하면 아낀다 해도 1억을 봐야 하고 그 돈을 감당하려면 3년 정도는 다른 일로 벌어 충당하겠다는 각오를 했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작년에는 아끼고 아꼈는데 티켓 판매를 했으니 다만 조금이라도 배우들에게 ‘페이’라기보다는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얼마 정도 똑같이 나눠줬지요. 누가 더 많은 일을 했다고 더 주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 대신 더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요. 후후”

지난 공연은 전석 매진으로 그나마 빚은 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후원만으로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빚을 질 거라는 설명을 하면서도 너털너털 웃는 류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을 배우들의 열망과 화순탄광사건 70년 그리고 광화문광장에서 2년째 농성 중인 세월호 가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순>의 마지막을 광화문광장에서 느낌표로 찍겠다는 그는 누군가는 이 결정을 ‘신의 한수’라고 했고 누군가는 ‘최악의 결정’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소음 등 여러 악조건을 감수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화순탄광사건’을 통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리고 다시 이런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뮤지컬을 굳이 스텐딩뮤지컬이라고 했는데 배우들이 거의 서서 대사하고 노래하거든요 물론 등퇴장을 하지만, 그런데 공연을 본 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뮤지컬이다. 힘이 나는 뮤지컬이다.’ 이렇게요. 사람을 세우는 뮤지컬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투자 제안도 받았지만 왜 민감한 ‘미국’에 대한 얘기냐, 일본으로 바꾸면 안 되겠냐는 말에 배우들과 상의해서 단박에 거절했단다. 적어도 뮤지컬의 진정성이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는 것을 기획자인 그도 배우들도 싫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보다도 작품을 더 큰 판으로 만들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다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는다면 기획을 넘길 수 있다는 당찬 생각도 하는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미군정에 대한 돌직구 같은 가사와 대사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 맞아 관객들이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고 공연을 자평한 그는 인원이 많은 만큼 집단이 주는 에너지와 힘을 가지고 광화문광장에서 후련한 공연 한판을 열심히 준비하겠다며 다시 연습의 끈을 잡으러 일어섰다.

류성씨는 법학과를 다니다가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전과한 뒤 그간 마당극과 집회현장 등에서 활동해왔으며 2년 전부터는 극단 ‘경험과 상상‘을 만들어 대학로에서 활동하고 있다. 배우와 스텝, 현장 자원봉사자까지 총인원 170명의 거대한 뮤지컬 <화순1946>이 무대에 서는 8일 광화문광장 저녁 8시가 기다려진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406202-01-349324 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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