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비’ 여전사 최도은 15년만의 콘서트, 그 연유

덩치 큰 여자 한 사람이 있다. 덩치라는 말에 발끈할 수도 있겠지만 몸을 나타내는 덩치만이 아니라 인간됨의 덩치를 말했다면 금세 “그래?… 아닌데…. 너무 좋게 봐주는 거 아니니?…”하며 부끄러워하고 꼬리를 내릴 여자. 그녀의 소리는 덩치답게 우렁차다. 맘먹고 하자면 쩌렁쩌렁 울리고도 한참을 귀에 쟁쟁 메아리로 머무를 것 같은 소리다. 그 목소리로 20대부터 전국의 노동현장을 누비며 노동가요를 불렀다.

이쯤하면 ‘아, 최도은’하고 알 것이다. 물론 그녀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거나 유명세를 타고 회자되는 가수는 아니다. 하지만 노동현장이나 집회, 농성장에 가본 사람이라면 그녀를 안다. 그녀는 현장에서 노래하기 전 자기 소개를 한다, 이렇게.

“케이비에스, 엠비시, 에스비에스에는 나오지 않지만 투쟁하는 노동현장에 언제나 노래로 함께하는 최도은입니다. 투쟁!”

어쩌면 현장에서의 자기소개 하나로도 그녀의 면면을 알 수 있겠다.

그녀를 잠시 소개하자면 숙명여대 성악과를 나온 그야말로 재원이다. 물론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고 다 재원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면 ‘제대로 배웠네’하는 생각이 든다. 음악의 이론과 본질을 꿰뚫고 있는 자신감이 목소리에서 품어져 나온다.

속되게 생각한다면 ‘저 정도 되면 오페라가수라도 할텐데…, 왜?’라는 물음표를 던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정도로 실력 있는 오페라가수가 되었을 그녀. 하지만 대학시절부터 노래운동에 헌신해온 이력을 따져본다면, 그녀가 자신의 음악성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이미 오래전에 스스로 정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인천에 있는 인천민중문화운동연합 노래패 ‘산하’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인천지역 노래패인 ‘산하’는 당시 파업하는 노동현장을 다니며 많은 노래공연을 했다. 특히 당시에는 다소 파격적인 총체극을 기획하고 공연했는데, 일제강점기부터 미군정과 전쟁 그리고 군부독재, 매판자본의 시대 등을 역사의 흐름에 따라 구성하고 그에 맞는 영상과 노래, 춤, 낭송과 연극적 요소를 접목시킨 공연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산하’의 일원으로 공연에 참여하는 한편 위장폐업 사업장이었던 세창물산 노래지도를 시작으로 인천대, 인하대, 인천교대 등 많은 대학 노래패의 강사로도 활동했다. 명성전자, 코스모스전자, 한독금속, 대우자동차 등 당시 인천지역 노동현장에서 노래공연을 하면서 1991년에는 노래동아리 ‘노래선언’을 만들기도 했다.

그녀가 이러한 현장에서 부른 노래 가운데 ‘불나비’는 “불나비는 역시 최도은이지”하며 그녀를 ‘불나비 가수’로 만들었다. 그만큼 그녀의 노래에는 가사가 가진 의미와 힘을 그대로 전달해서 관객들을 들썩이게 있는 마력이 있었다.

민중가수로 활동한 이후 전국의 노동현장을 다니며 마치 전사처럼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노래로 힘이 되어준 그녀가 2001년 첫 콘서트 이후 15년 만에 갑작스레 콘서트를 기획했다. 어찌 보면 느닷없는 개인 콘서트다. 불과 10여일 앞두고 불쑥 던진 콘서트 포스터.

돌연한 그녀의 두 번째 콘서트는 연유가 있었다. 지치지 않고 노동현장을 다니는 그녀는 집안어르신 병수발을 드는 자식이자 한 아이의 생활을 신경 써야 하는 엄마이자 철도노동자 남편의 아내다.

가정생활을 책임지는 주부로 노동현장의 가수로 노동의 역사와 노동가요를 접목시킨 ‘노래로 듣는 노동운동사’ 강연을 다니는 문화활동가로, 많은 역할들을 하는 그녀의 집에 어느 날 새벽 댓바람부터 난데없이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고 한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집안이 뒤집어지고 컴퓨터와 자료들이 실려 갔다. 그녀의 남편이 운영해온 온라인책방 ‘노동자의 책’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칼 맑스의 <자본론>이니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니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니 하는, 대형서점들에서도 판매되는 책들인데 노동자인 그녀의 남편에겐 이적표현물로 적용된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다른 공안사건 현장에 뛰어다니고 투쟁의 현장에서 노래로 힘을 주던 그녀는 막상 자기일이 되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이리저리 서명을 받고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언론사에 보도자료 뿌리고 다니면서 회한도 많이 들었다는 그녀. 수사를 받고 검찰 기소를 기다리는 남편을 위해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 그녀의 무기인 ‘노래’를 꺼내들기로 작심한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한광호 열사 생일날을 챙기고 성주까지 가서 사드배치 반대를 위한 노래를 부른 그녀는 앞으로 일주일여 남은 콘서트를 위해 무기의 칼날을 갈고 있다.

시대를 노래하는 불나비 가수 최도은, 그녀의 콘서트 ‘최도은 2016 애가(哀歌)’는 오는 9일 오후 7시30분 인사동에 있는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열린다. 관람료는 전석 2만원이다. 그녀의 노래는 남편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한 비용과 이 시대 세월호 가족과 위안부 할머니들, 국가폭력으로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 어르신, 사드배치 결사반대를 외치며 싸우는 성주, 김천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하겠다는 각오의 단단한 무기 하나를 가슴에 챙겨 넣는 일이기도 하다. 건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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