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계단 오르기]첫 번째 계단 - 시인 조연희, 詩의 사생활 10

예술가들에게 삶은 그 자체로 원천이다. 어머니의 품 안에 담겨져 있던 몸의 기억들이 순명의 두레박을 타고 한 가득 예술의 영감으로 길어 올려 진다. 그 안에 담긴 기억들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한 단계씩 오르고 올라 예술의 열매를 맺는다. ‘예술로 계단 오르기’는 길어 올리는 과정에서 두레박 밖으로 떨어지는 순명의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은 예술가의 퍼즐 맞추기다. 그 첫 번째 계단을 조연희 작가가 오른다. <시의 사생활>로…,

겉으로는 비교적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굣길에 대장간 앞에서 종종 쇠 매질 소리도 들었으며 그때마다 녀석을 잠시 떠올려보기도 했다. 닭을 묻어주었던 그 능선에 올라 혼자 지는 석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사랑을 한 적도 없는데 버림받은 느낌이라니.

사랑도 하지 않고 사랑을 잃는 것보다는 차라리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실연당하는 게 더 낫다고, 실연당한 게 창피한 것이 아니라 실연당할 만큼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지 않은 게 더 창피한 거라며 능선 위 바람이 몰려다니며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대상 없는 그리움이 형체를 드러내는 것일까. 뿌옇게 보이던 사물들이 초점 맞은 렌즈처럼 선명하게 보이는 것일까. 그런데 내겐 백내장에 걸린 것처럼 세상이 점점 뿌옇기만 할 뿐이었다.

 

쥐가 들끓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즈음 유난히 우리 집에 쥐가 많이 들끓기 시작했다는 것. 아마도 새로 이사 간 집 근처에 공터가 있어서인 듯 했다. 그날 아침도 나는 ‘에구머니나’ 엄마의 비명에 잠이 깼다. 찍-찍-찍-찍 공포에 질린 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또 한 마리가 잡힌 것이다. 엄마는 쥐가 끓으면 우환이 생긴다며 쥐잡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마치 우리 집의 우환이 모두 들끓는 쥐 탓인 양. 잡은 쥐를 차마 직접 죽일 수는 없었던지 엄마는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고 쥐덫을 통째로 풍덩 담갔다.

쥐는 덫의 무게 때문에 물속에 잠긴 채 허우적거리다 벌컥벌컥 기도가 막혀 결국 세상을 하직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쥐 울음소리가 유난스러웠다. 더는 이불 속에 있기를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는 지난밤에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한 덩이 어둠이 오빠의 자리 위에 놓여 있었다. 오빠는 대학 2학년이다. 입대할 때가 되긴 했지만, 아직 학기 중인데 갑작스럽게 영장이 나왔다. 오빠는 알고 있는 것인지. 오후에는 오빠가 다니는 학교에라도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을 나왔다.

 

상담을 하다

기말고사 후 학교 상담이 시작되었다. 점점 떨어지는 성적을 걱정하며 담임선생님은 무슨 과를 가고 싶냐고, 이 성적으로는 서울 근교에 있는 대학 가기도 힘들다는 말을 덧붙였다. 장래 희망란에는 ‘사회 복지’라고 적긴 했지만 그것은 엄마가 미혼모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 복지 관련 일이나 해볼까 하는 막연하게 적은 것이었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

“ ......”

그 질문을 받자 갑자기 목이 멨다. 과연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 것일까. 하고 싶은 게 있긴 한 걸까….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갑자기 아무도 찾지 않는 간이역의 역무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번에 갔던 백마역처럼 그렇게 작고 조그만 간이역에서 지는 석양이나 실컷 보며 ‘무럭무럭 늙고’ 싶었다.

 

하루에 한 번쯤 기차가 들어오는

간이역이 있다면

너무 오랫동안 의자에만 눌러앉아

엉덩이가 뚱뚱한 역무원으로 늙어가고 싶다.

가질 수 없는 사내처럼 불쑥 기차가 들어서면

뒤로 물러서세요, 손짓하며

먼지 뽀얀 사루비아처럼

조금은 분이 뜬 속내 따윈 숨기리라.

입산금지 구역에서 하산한 바람이

무재해 깃발을 흔들어대면

태극기의 펄럭임으로 덩달아 출렁이는 역사.

귀퉁이가 달아난 기차표처럼

환승을 꿈꿔도 좋겠지만

레일은 생각으로 앞서가고

역사 밖 단위농협의 불빛으로

깜박깜박 늙어가도 좋겠지만.

- 졸시 ‘고양이 역장’

 

그런데 나는 엉뚱하게 ‘글을 쓰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친구도 가족도, 그 누구도 위로가 되지 못할 때 내 손을 잡아 준 것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헤세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였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계속 고독하게 살 것입니다.」라고 속삭이는 릴케가 마치 앞으로의 내 인생을 예언하는 듯했다. 나는 끝없는 결핍을 품고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풍란처럼 어디에도 뿌리를 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 글을 쓰고 싶어요.”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한 이 대목에서 선생님도 나도 다시 한 번 놀랐다. 내 글재주를 발견한 적 없는 선생님은 이 성적 갖고는 국문과 가기는 힘들다며 좀 더 열심히 성적을 올려야 한다고 의례적인 독려를 할 뿐이었다.  선생님과의 면담으로 내 미래는 더 어둡고 더욱 불투명해졌다.

 

오빠를 만나다 

오빠네 학교로 가기 위해 나는 사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학교 근처에 대학교가 있어서 우리는 심심찮게 최루 가스를 마셨다. 최루탄이란 말 그대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일종의 독가스인데 눈물을 흘리면 얼굴이 쓰라려 오며 빨갛게 부풀었다. 하필이면 왜 최루일까. 안 그래도 울고 싶은 일투성인데..., 하지만 오늘은 최루탄 가스를 핑계 삼아 울고 싶기도 했다. 사람의 감정에 따라 눈물의 짠맛도 다르다는데, 특히 분노에 찬 눈물은 기쁘거나 슬플 때의 눈물보다 더 짜다고 하는데, 그러나 최루 가스 때문에 흘린 우리의 눈물은 톡 쏘는 겨자 맛이 날 것만 같았다.

▲ 1970년대 쥐잡기 운동 포스터

나는 비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 같은 마음을 품고 오빠네 학교로 향했다. 입구에는 토플 현수막, 고시 합격 축하 플래카드, 자유게시판이 차례로 보였다. 이미터는 족히 될 게시판에는 시대를 풍자한 만화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대자보가 쭉 붙어 있었다. 빨간 매직이 돋보이는 대자보에는 언뜻 ‘박살내자’라는 낱말이 보였다.

서녘 햇살이 길게 대자보를 더듬고 있었다. 교양관 쪽에서 북소리가 울렸다. 굿거리장단이었다. ‘덩 기덕 덩 더러러러 쿵 기덕 쿵 덕’. “국민 기만하는 군부는 물러나고 어용교수 물리쳐서 학내민주 쟁취하자.” 그때 나는 구호 일색인 대자보에서 조금 다른 대자보를 하나 발견했다. 며칠 전 오빠가 구겨버린 종이에서 읽은 바로 그 글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 말입니다. 아주 옛날 조물주께서 천지를 창조한 뒤에 말입니다. 동물들에게 통보했습니다. 십이지를 열두 동물로 상징하겠노라고 말이지요. 모날 모시에 약속장소에 도착한 순서대로 열두 동물에게 각각 시간과 방향을 맡아 지키고 보호하는 영예를 주겠다고 말입니다. 천성의 부지런함으로 소는 일찌감치 출발해서 약속장소를 향해 부지런히 걸었답니다. 미련할 만큼… 쉬지도 않고 뚜벅뚜벅 말이지요. 드디어 약속장소에 도착했다고 생각한 순간, 쥐가 폴짝 뛰어내리더랍니다. 소의 귀에 타고 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순간 쥐가 먼저 스타트 라인을 끊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쥐는 일등이 되었습니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는 이렇게 정해진 것이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가 요즘 왜 이리 아프게 다가오는 것일까요. 천형에 가까운 우직함으로 민중들이 피땀 흘려 역사의 황무지를 갈아놓으면 약삭빠른 지식인입네 하는 사람들이 소 귀에 숨어 있다 뛰어내리는 것은 아닌가요? 그래서 주체자인 민중보다 그들이 늘 서열상 앞서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오늘 이 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학우 여러분 우리는 혹시 쥐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여기까지 읽으면서 문득 나는 ‘쥣과’일까 ‘솟과’일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나는 이 두 개의 갈등 사이에서 영원히 허우적거리게 되지는 않을까. 오빠는 ‘쥣과’일까 ‘솟과’일까. 선택은 늘 갈등의 모습으로 온다. 나는 오빠의 데모를 엄마에게 고자질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 사이에는 깊은 웅덩이가 있다. 조심해야 했다. 어떤 질문은, 질문이 답인 경우가 있는 것처럼 어떤 선택은 최선이 아니라 나머지 것을 선택하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쥐덫이 닫히다

오빠는 나를 발견하고는 대열에서 이탈하여 다가왔다. 나는 오빠에게 입영 통지서를 내밀었다. 오빠의 얼굴이 잠시 흙빛으로 변한 것은 늦은 해거름 때문일 것이다. 젊음이 저토록 왜소하다니. 오빠의 청바지 무릎이 앞으로 나와 있었는데 그 모습이 금세 무릎을 꿇을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오빠는 말없이 다시 대열 속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에서 문득 오빠가 스스로 입대를 자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오빠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나머지 것을 선택하지 않기 위해 군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고. 아침에 유난스럽게 찍찍거리던 쥐 울음소리가 북소리를 타고 환청처럼 들렸다. 그러면서 어디선가 쥐덫이 닫히는 소리가 다시 한 번 크게 들려 왔다.

 

* 조연희 시인은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시산맥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 영상기획 및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빅시스템즈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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