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 남는 사람]10주기 맞는 청년운동가 박장홍 동지의 삶과 투쟁

▲ 지난 26일 양산시 솥발산 묘지에서 청년운동가 박장홍 동지의 10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2006년 8월, 그 해도 올해처럼 유난히 더웠다. 땀을 뻘뻘 흘리는 여름이 오면, 동지가 쓰러진 그 날도 오늘처럼 뜨거웠다는 생각에 다시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많은 동지들의 바람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쓰러진 지 19일째인 8월31일 영영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동지의 나이 41세. 지금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열정 넘치는 나이이기에 그 황망함이란 이루다 표현할 수가 없다.

이제 내가 그 동지와 비슷한 나이가 되고, 지난 10년이란 세월 동안 많은 일들이 벌어진 한국사회와 진보운동의 현실을 보면서, 평생을 청년운동과 변혁운동에 바쳤던 동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나의, 그리고 우리의 과제를 생각해본다.

▲ 깃발을 들고 있는 맨앞 줄 오른쪽 두번째가 박장홍 동지이다.

원칙을 중심으로 단결과 투쟁에 앞장섰던 청년 지도자

박장홍 동지는 1991년 부산민주청년회 활동을 시작으로 부산지역을 비롯한 부산울산경남지역 청년운동과 나아가 전국 청년운동까지 책임있게 이끌어갔던 그야말로 청년운동의 지도자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90년대 중반은 80년대 말 90년대 초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94년 김일성 주석의 서거, 뒤이어 닥친 자연재해를 빌미로 미국과 보수진영은 북한 붕괴론을 대대적으로 퍼뜨리며 북에 대한 제재공세와 통일운동세력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하던 시기였다. 그로 인해 전체 진보운동 안에 수정개량주의가 퍼져가게 되었고, 청년운동도 당시 한청협의 분열과 해산 등 심각한 사상노선투쟁과 분열 상황이 벌어졌다. 이 때 박장홍 동지는 자주민주통일의 기치와 노선을 더 튼튼히 들고 부산지역 청년회들을 통합하여 ‘부산민족민주청년회’를 건설하고, 부산울산경남지역 곳곳을 돌며 청년 동지들을 설득하여 부산경남울산지역청년단체협의회를 건설하였다. 또 이 힘을 바탕으로 전국의 청년 동지들을 만나면서 변혁운동과 청년운동의 노선과 방향을 토론하고 설득하며 결국 2001년 분열되었던 청년운동 대열이 하나로 단결하여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를 건설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청이 건설된 이후에도 당시 진보정당운동 등에 둘러싼 이견과 논쟁이 발생하던 때에도 다수의 힘으로 소수의 의견을 배제하기보다는 조금은 늦게 가더라도 존중하고 설득하며 단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래서 지난 27일 진행된 박장홍 동지 10주기 추모제 현장에서 당시 함께 청년운동을 했던 김근래 전 한청 부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박 동지는 청년운동을 다시 규합해 힘을 모아나가던 한청 초기에 서로 색깔이나 이념이 달랐던 제 세력들을 통합하기 위해 헌신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진보운동의 통합이 절실한 이 시기에 박 동지가 많이 생각이 납니다. 이런 박 동지의 정신이 사람들 사이에 많이 전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통일의 그날 꿈꾸며 투쟁했던 자주통일선봉대

많은 사람들이 늘 조국통일위원장이라고 기억할 만큼 박장홍 동지는 통일운동을 헌신적으로 펼쳐냈다.

한청협 시절 청년통일선봉대 대장으로, 청년연석회의와 한청 조국통일위원장으로, 그리고 청년운동을 마감하고 난 이후 6.15남측위원회 부산본부 집행위원장까지 동지는 늘 통일운동의 최선두에 있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의 통일응원단 사업에 이어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남과 북 통일응원을 성사시키기 위해 한청이 앞장서 청년통일응원단 활동을 벌였다. 또 2004년 국가보안법 철폐 전국도보행진을 결의하고 전국의 청년들과 진보진영의 투쟁을 조직하고 이끌었다.

박 동지는 청년들이 누구보다 앞장서 통일운동의 주체로 서고 투쟁을 앞장서 벌여나가기 위해 노력했고, 6.15시대에 걸맞는 대중적 통일운동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했다.

동지의 꿈, 노동자 민중의 자주통일 새 세상! 이제 우리 힘으로

지난 8년여 보수세력의 집권으로 한국사회는 ‘헬조선’이란 말이 떠돌만큼 노동자 민중의 삶은 참담해졌고 재벌 자본가들만 배부른 사회가 되었다. 남북관계는 단절을 넘어 극단의 군사적 대립과 긴장이 일상이 되었으며, 동북아를 둘러싼 패권 다툼에 한반도는 자주와 평화, 예속과 전쟁의 갈림길에서 운명을 제 힘으로 개척해야 하는 격변의 시기에 놓여있다.

분열과 후퇴를 거듭하던 진보세력은 지난해 13만 민중총궐기를 시작으로 들끓는 민심과 단결의 힘을 확인하였고, 성주군민들을 비롯한 수만의 민중이 자신의 힘으로 자주와 평화를 지키자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이렇듯 우리를 둘러싼 정세와 민중들의 투쟁은 진보진영이 하나의 단결된 힘으로 뭉쳐 기어이 수십년간 이어져온 억압의 굴레를 끊기를, 조국의 자주적인 통일로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오기를 갈구하고 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그리고 동지의 삶과 투쟁을 돌아보며 그가 없음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아쉽고 그립다.

박장홍 동지는 우리 곁에 없으나, 그가 가고자 했던 길을 우리가 그의 몫까지 해내야 할 때이다. 원칙과 단결, 투쟁과 헌신으로 기어이 진보진영의 단결과 투쟁으로 새 세상을 열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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