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할머니들 “우리가 이러려고 25년 싸웠나” 분통

“자기들(일본 아베정부) 입으로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용서해 달라’고 정식으로 사과하더라도 소녀상 이전은 거래대상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단호했다.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에서 만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이 제대로 사죄를 한다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으니 용서하겠다”면서도 "하지만 사죄와 상관없이 민간이 세운 평화의 소녀상은 후손들에게 역사 교육을 위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일본의 요구를 일축한 것이다. 그는 “일본이 소녀상을 반대하면 할수록 세계 더 많은 곳으로 번져나갈 거예요”라고 덧붙여 말했다. 실제 올해 안에 소녀상 건립지는 국내와 해외를 합쳐 50곳을 넘을 전망이다.

하루 전 외교부가 발표한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현금 지급(이하 현금지급)’ 내용에서 정작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배제됐다. 외교부는 일본 정부가 빠르면 이달 내 화해·치유 재단(이하 재단)에 송금할 10억 엔(약 111억 원)의 사용 방안에 대해 생존자 1인당 1억 원, 사망자 2000만 원 규모의 현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길원옥 할머니(왼쪽)와 김복동 할머니.

불통과 독단의 '상처 치유금' 10억 엔

이에 대해 아흔 살 김복동 할머니는 1시간 가까이 말씀을 이어갔다. 그는 “현금지급 얘기도 남에게 들었다. 12.28 한일 합의 직후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이)쉼터에 한 번 찾아와 합의 결과를 전달했을 때 욕을 퍼부었더니 우리한텐 오지도 않는다”며 박근혜 정부와 재단의 불통과 독단을 꾸짖었다.

논란의 대상인 10억 엔의 성격에 대해 일본은 ‘상처 치유금’이라고 밝혔다. 배상도 보상도 아닌 주로 인도적 성격의 사업에 쓰이는 ‘거출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해 정부의 일방적이고 굴욕적인 한일합의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은 돈보다 사죄와 배상이 먼저라는 입장에서 한 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돈 준다 할 때 받아라’고 하는데 모르는 말이야. 아파 본 사람이나 아픈 사람 맘 알지…. 위로금이라고 주고 발뺌하려는 게 더 미워요.” 김복동 할머니의 목소리엔 분(忿)과 한(恨)이 서려있었다.

한편 재단 김태현 이사장은 25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생존자 40분 중 29분 할머니와 소통하며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였더니 대부분 보상금 받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할머니는 “정부가 거짓말을 많이 보태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김 할머니는 “할머니들이 다리가 성하면 떼로 몰려올 거야. 지방에 있는 할머니들 잘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 있으니 가족한테 가서 ‘할머니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다만 몇 푼이라도 받는 게 낫지 않냐’고 선동하는데 가족들 충동질하는 게 더 나빠. 나눔의 집 가봐라, 거기 할머니들 끄떡도 안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90에 가까운 노령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의사표현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부 어물쩍 국민 속이기냐”

앞서 24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의 회담에서 소녀상 문제도 거론됐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기시다 외무상은 24일 윤 장관과 회담한 뒤 기자들에게 “소녀상 문제의 적절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포함해 한·일의 성실한 이행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당장은 소녀상 철거·이전을 거론하지 않겠지만, 재단의 피해자 지원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등 여론이 조성되면 소녀상 철거·이전 문제를 관련 단체와 협의하겠다”는 뜻을 내보였다.

이는 재단의 10억 엔 출연과 소녀상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던 정부의 이전 주장과는 상충한다. 또 재단 김 이사장이 지난 7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소녀상과 10억 엔 출연은 절대 병행할 수 없다”며 “만일 일본이 소녀상 문제를 들고 나온다면 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도 대치된다. '정부가 어물쩍 국민을 속이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238명, 현재 생존자는 40명이다. 이날 김 할머니는 시민들과 함께한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우리가 지난 25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국민이 알아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민간단체에서 역사 바로잡자고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할매들 발굴하고 25년 세월 보호해 왔어요. 이들이 잘 못하면 정부에 다른 대책을 요구할지 몰라도 이때까지 할매들 아프면 한밤중에도 직원들이 달려가서 입원시키고 약 타주고 했는데. 다른 재단 필요 없어요.”

매일 뉴스를 본다는 김 할머니는 걱정이 많다. “몇 십 년 안 가서 또 일본군인들 조선땅에 들어 올끼다. 지금도 (일본 자위대 재무장)설치고 있잖아. 우리가 일본한테 얼마나 당했는데….”

오는 31일 열리는 1246차 수요시위에선 정대협이 일본의 현금지급에 대한 공식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 정대협 쉼터 거실 한켠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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