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차대전 이후 37개 국가에서 2천만 명 이상을 죽였다.

번역자 주

 

이 기사는 2015년 11월에 처음 발표된 보고서(James A. Lucas)를 Global Research에서 다시 소개한 것으로서, 다소 시간이 경과했지만 한국전쟁 70주년을 맞는 올해에 2차대전 이후 전 세계에서 자행된 미국의 전쟁범죄를 정리해보는 데 참고가 될 것으로 보여 번역, 소개한다.

편집자(Global Research) 주

-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1차 세계대전(1913~1918) 동안 1천 5백만 명이 사망했다.
2차 세계대전(1939~1945) 동안의 사망자는 훨씬 더 많았다;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6천만 명이 사망했다.(1차 세계대전 사망자의 4배)
2차 세계대전 최대의 희생자는 중국과 소련이었다. 소련에서는 2천 6백만 명이 사망했고, 중국은 약 2천만 명이 죽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나라는 2차 대전 중 미국과 한편이었고 그들 인구의 상당수를 잃어버렸는데 지금은 서방세계를 위협하는, 미국의 적들로 분류되고 있다. 현재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소위 예방적 전쟁까지도 검토되고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2차 대전 중 약 8백만 명을 잃었으며, 일본은 2백 5십만 명 이상을 잃었다. 미국과 영국은 각각 4십만 명 이상을 잃었다.

제임스 루카스(James A. Lucas)가 세심하게 조사.작성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소위 ‘전후 시대’(1945~)에 미국이 일으킨 전쟁, 군사쿠데타, 정보작전 등으로 인해 2천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여기에는 레바논, 시리아, 예멘, 리비아 등지의 사망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 미국에 의한 지속적인 전쟁상태(1945~): ‘전후 시대’(post-war era)는 없었다.

▲ 아프가니스탄 군인들이 201년 4월 12일(현지시간) 카불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아프가니스탄 군인들이 201년 4월 12일(현지시간) 카불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 [사진 : 뉴시스]

2001년 9.11 사태 이후로 엄청난 슬픔과 절망감 그리고 분노가 미국인들의 정신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미국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감정들을 일으켰었다는 점을 지적하여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했지만, 그런 시도는 (여론 지형에-역자) 작은 파문조차도 만들지 못했다. 비록 미국인들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세계인들의 지혜에 대체로 이해하지만, 우리나라가 행한 잘못들에 대한 지적은 들으려 하지 않았고 곧 ‘테러와의 전쟁’에 가려져 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해와 공감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서 얼마나 많은 9.11들을 일으켰는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 글이 그 노력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 보고서는 37개국에서의 그러한 죽음에 대한 추정 숫자와 왜 미국이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들을 담고 있다. 

전쟁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어떤 경우에는 미국보다는 다른 나라들이 더 많은 죽음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미국)의 개입이 어떤 전쟁이나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면 그로 인한 죽음들에 미국이 책임이 있다고 간주하였다. 다시 말해, 미국이 자기의 힘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런 사건들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인 힘이 결정적이었다.

본 연구는 미군이 한국과 베트남, 그리고 두 번의 이라크전쟁 동안 약 1천만~1천 5백만 명의 죽음에 대해서 직접적인 책임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한국전쟁 동안에는 중국인들의 죽음도 있었고, 베트남전쟁 중에는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도 사망자들이 발생했다.

미국 대중들은 아마도 이런 숫자들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고 미국에 책임이 있는 대리전쟁들에 대해서는 더 모를 것이다. 이 같은 형태의 전쟁으로 약 9백만 명~1천 4백만 명 정도가 죽었는데, 여기에는 아프가니스탄, 앙골라, 콩고공화국, 동티모르,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수단 등이 포함된다.

희생자들이 큰 나라들이나 세계의 한 부분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나머지 죽음들은 지구 전체 국가들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작은 나라들에서 나왔다. 실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 개입의 표적이었다. 

이 연구를 통해 2차 대전 이후 세계 각지의 전쟁이나 갈등들에 있어서 약 2천~3천만 명의 죽음에 대해 미국이 책임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들 희생자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그 원인이 미국의 군사작전이든, 군사적인 대리세력이든, 미국의 군사 장비나 고문단의 공급이든, 혹은 경제적 제재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들은 잃어버린 소중한 이들을 찾아헤매든지 난민캠프로 가든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남을 건지에 대한 결정들을 해야만 했다. 이 고통과 분노는 더욱 확산된다. 어떤 기관들은 전쟁 사망자 1명당 약 1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다고 추정한다. 그들의 지속되는 고통의 모습은 자기 동포들에게 끊임없이 아픈 기억을 환기시키고 있다.

미국인들이 이 주제에 대해서 더 배우는 것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야만 그들이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독일이 2차 대전 동안 “알지 않기를 선택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게 할 수는 없다. 위에서 “2차 대전 이후로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서 얼마나 많은 9.11들을 일으켰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는데, 답은 약 10,000번이다.

숫자(사망자) 집계에 대한 코멘트
이 연구에서 소수의 미국인 사망자들 숫자는 제외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이 보고서가 그 반대자들에 대한 미국의 작전들이 끼친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기 때문이다. 

사망자 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은 쉽지 않은 바, 이 보고서 내의 데이터들의 수집은 그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이루어졌다. 이런 추정치들은 이후에 독자들이나 저자에 의해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백만 명 이상은 될 것이다.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은 아래 두 가지 사례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나는 몇 년 동안 라디오를 통해서 캄보디아에서 크메르 루지의 통치 기간에 3백만 명의 캄보디아인들이 죽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최근에 들은 바로는 1백만 명이었다. 또 다른 사례는 이라크에서의 사망자 숫자이다. 즉, 미국의 1차 이라크 침공 이후 금수조치로 인한 이라크 사망자가 1백만 명이 넘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그보다는 작은 약 50만 명이라는 숫자가 제시되었다.

대체로 전쟁에 관한 정보는 한참 뒤에나 드러난다. 즉, 누군가 폭로하기로 결심한다든지, 소수의 끈질긴 노력으로 비밀정보가 드러난다든지, 혹은 국회 특별위원회가 보고서를 발표한다든지 할 경우이다.

승리한 국가나 패배한 국가 모두 사망자 수를 줄여서 발표할 이유들이 있다. 더구나 미국이 개입된 최근의 전쟁들에서는 “우리는 전사자 수를 세지 않는다”든가 사상자에 대한 완곡어법으로 “부수적인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말들을 흔히 듣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생명이 값싼 것이다. 특히 전장에서 사람들을 마치 체스판에서처럼 조정하는 자들에게는.

정확한 숫자를 얻기 힘들다고 해서 우리가 이것을 포기할 일은 아니다. 2차 대전 중의 유대인 사망자가 6백만 명이었다는 숫자를 얻기까지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숫자는 이제 널리 인지되고 있고 또 다른 홀로코스트를 방지하기 위한 결정에 기여했다. 이 싸움은 계속된다.

37개 희생 국가들
[아프가니스탄]

미국은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간의 전쟁에서 1백만~1백 8십만 명이 죽은 데 대해 책임이 있다.(주1,2,3,4)

소련은 세속 정부 치하의 이웃나라 아프가니스탄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의 세속 정부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 바뀐다면 이것이 소련 전체로 확산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1998년, 파리의 한 매체(Le Novel Observateur)와의 인터뷰에서 카터 대통령의 보좌관 브레진스키(Zbigniew Brezinski)는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에 대한 원조를 촉발하여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도록 한 것이 자기 책임 하에 이루어진 것임을 시인하였다.

공식적인 역사는 무자헤딘에 대한 CIA의 지원이 1980년에, 즉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1979.12.24일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비밀로 되어있는 실제는 완전히 다르다. 카터 대통령이 카불의 친소 정권에 대한 반대자들에 대한 첫 번째 비밀원조 지시서에 서명한 것은 1979.7.3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나는 대통령에게 ‘이 원조는 소련의 군사적 개입을 유인해낼 것’이라는 설명을 담은 보고서를 썼다.(주5,1,6)

브레진스키는 소련에게 그들의 베트남을 선사했다, 소련의 분열을 초래했다면서 자기가 놓은 함정을 정당화했으며, “무엇을 후회한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그 비밀작전은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그것은 러시아인들이 아프간이라는 함정에 빠지도록 만들었는데, 당신은 내가 그것을 후회하길 원하나?”(주7)

CIA는 소련이 출혈하게 만들려고 아프가니스탄 작전에 50~60억 달러를 썼다.(주1,2,3) 그 10년 전쟁이 끝났을 때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으며 아프간 헤로인은 미국 마약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게 되었다.(주4)  

미국은 2001년 9.11공격에 대한 보복 폭격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12,000명 이상의 사망을 초래한 데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으며, 잇따라 미군이 이 나라를 침공하였다.             

[앙골라]
포르투갈의 통치에 대한 원주민들의 무장투쟁은 1961년에 시작되었다. 1977년에 앙골라 정부가 UN에 의해 승인되었는데 미국은 이를 반대하는 몇 나라들 중의 하나였다. 1986년에 미국은 정부 전복을 추진하고 있던 UNITA(앙골라에서 두 번째로 큰 정파. 1966년 결성- 위키피디아)에 대한 물질적인 지원을 결정하였다. 때로는 많은 나라들이 연루되었던 이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앙골라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5만 명의 쿠바 군대의 개입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 대중들에게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존스 홉킨스 대학의 역사학 교수 Piero Gleijeses에 따르면 진실은 그 반대였다. 쿠바의 개입은 CIA가 자금을 대고 이웃 자이레를 통해 은밀하게 진행된 침공과 미국의 동맹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앙골라 수도에 대한 진군의 결과였다.(주1,2,3) 사망자 수에 대한 추정치는 30만 명부터 75만 명에 이르기까지 세 개의 추정치가 있다.(주4,5,6)

[아르헨티나] : 남미, 콘도르작전 참조

[방글라데시] : 파키스탄 참조

[볼리비아]
휴고 반세르(Hugo Banzer)는 1970년대 볼리비아의 억압적 정권의 지도자였다. 전임 지도자가 주석 광산을 국유화하고 토지를 원주민 농민들에게 분배했을 때 미국은 당황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혜택이 되는 이런 정책들은 이후에 역전되었다.

미국이 운영하는 파나마 소재 ‘School of Americas’와 그 뒤 텍사스의 Fort Hood에서 훈련을 받은 반세르는 망명에서 돌아와 미국 공군 소장 로버트 런딘(Robert Lundin)과 빈번하게 협의하였다. 그는 1971년에 미국 공군의 지원에 힘입어 쿠데타를 성공시겼다. 그의 집권 초기 몇 년 동안에 그 이전 10여 년에 비해 두 배 이상의 군사적 지원을 미국으로부터 받았다.

몇 년 뒤에 카톨릭 교단은 1975년 주석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군대의 학살에 대해 고발하였다. 이때 반세르는 CIA가 제공한 정보를 활용해서 좌파 신부들과 수녀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성직자들을 탄압하는 그의 전략, 즉 반세르플랜은 1977년에 9개의 남미 독재정권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주2) 그는 임기 동안의 400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기소되었다.(주1)   

[브라질]: 남미, 콘도르 작전 참조

[캄보디아]
캄보디아에 대한 미국의 폭격은 존슨 및 닉슨 정부 아래서 이미 몇 년간 비밀리에 진행되어왔는데, 닉슨 대통령이 캄보디아에 대한 지상 공격을 위한 준비작업으로서 폭격을 공개적으로 진행했을 때에는 미국 내에서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대규모 저항을 촉발하였다. 오늘날에는 이런 폭격의 광범위함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
캄보디아의 마을들과 도시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난민들이 발생했으며 내부적으로 인구의 이동이 일어났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으로 인해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라고 하는 작은 정당이 권력을 쥘 수 있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캄보디아에서의 수백만 명의 죽음에 대한 크메르 루즈의 역할에 대해서만 반복적으로 들어왔는데, 이러한 대량 살상이 국민들의 죽음과 부상, 배고픔, 이산으로 나라 전체의 불안정성을 초래한 미국의 폭격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따라서 미국은 폭격으로 인한 죽음들뿐만 아니라 크메르 루즈의 활동으로 인해 초래된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약 250만 명이 죽었다. 심지어 1979년에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공격했을 때에도 CIA는 여전히 크메르 루즈를 지원하고 있었다.(주1,2,3)

 

[주석]

Afghanistan
1.Mark Zepezauer, Boomerang (Monroe, Maine: Common Courage Press, 2003), p.135.
2.Chronology of American State Terrorism
http://www.intellnet.org/resources/american_
 terrorism/ChronologyofTerror.html
3.Soviet War in Afghanistan
http://en.wikipedia.org/wiki/Soviet_war_in_Afghanistan
4.Mark Zepezauer, The CIA’S Greatest Hits (Monroe, Maine: Common Courage Press, 1994), p.76
5.U.S Involvement in Afghanistan,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Soviet_war_in Afghanistan)
6.The CIA’s Intervention in Afghanistan, Interview with Zbigniew Brzezinski, Le Nouvel Observateur, Paris, 15-21 January 1998, Posted at globalresearch.ca 15 October 2001, http://www.globalresearch.ca/articles/BRZ110A.html
7.William Blum, Rogue State (Monroe, Maine: Common Courage Press, 2000), p.5
8.Unknown News, http://www.unknownnews.net/casualtiesw.html

Angola
1.Howard W. French “From Old Files, a New Story of the U.S. Role in the Angolan War” New York Times 3/31/02
2.Angolan Update, 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 FS, 11/1/99 flyer.
3.Norman Solomon, War Made Easy, (John Wiley & Sons, 2005) p. 82-83.
4.Lance Selfa, U.S. Imperialism, A Century of Slaughter, International Socialist Review Issue 7, Spring 1999 (as appears in Third world Traveler
 www. thirdworldtraveler.com/American_Empire/Century_Imperialism.html)
5. Jeffress Ramsay, Africa , (Dushkin/McGraw Hill Guilford Connecticut), 1997, p. 144-145.
6.Mark Zepezauer, The CIA’S Greatest Hits (Monroe, Maine: Common Courage Press, 1994), p.54.
Argentina : See South America: Operation Condor

Bolivia
1. Phil Gunson, Guardian, 5/6/02,
http://www.guardian.co.uk/archive /article/0,4273,41-07884,00.html
2.Jerry Meldon, Return of Bolilvia’s Drug – Stained Dictator, 
Consortium,www.consortiumnews.com/archives/story40.html.

Brazil See South America: Operation Condor

Cambodia
1.Virtual Truth Commissiion http://www.geocities.com/~virtualtruth/ .
2.David Model, President Richard Nixon, Henry Kissinger, and the Bombing of Cambodia excerpted from the book Lying for Empire How to Commit War Crimes With A Straight Face, Common Courage Press, 2005, paper
http://thirdworldtraveler.com/American_Empire/Nixon_Cambodia_LFE.html.
3.Noam Chomsky, Chomsky on Cambodia under Pol Pot, etc..,  
http//zmag.org/forums/chomcambodforum.htm.

번역자 박영태 약력 

1963년
경제학.재무관리 공부
코리아국제평화포럼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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