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사회 성격’ 탐구] (6)

[본문요지] 198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격을 고찰함에 있어 그 기준으로 전기 신식국독자에 관한 논의를 통해 파악한 4가지 기본 요소 즉 대외의존성, 저임금구조, 폭압적 국가권력, 재벌체제를 지표로 삼을 수 있다. 우선 대외의존성 측면에서 볼 때, 199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대외무역 비중이나 수출의존도는 그 이전보다 더욱 엄중해졌다. 그러나 이 시기 한국사회의 대외의존성 문제의 핵심은 '자본시장 전면개방'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후기 신식국독자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4. 후기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성립

1) 4가지 지표

지금까지 전기 신식국독자 전환의 필연성과 그것의 선진국독자 전환의 좌절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런 전환 이후의 한국사회는 여전히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결론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왜냐하면 현 단계 자본주의는 전체적으로 볼 때 여전히 국가독점자본주의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때문에 어느 한 사회가 만일 국가독점자본주의라면 그것은 당연히 선진국독자이든지 혹은 신식국독자이든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필자는 현재의 한국사회를 그 전기와 구분하여 '후기 신식국독자'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이론진영에서는 1987년 이후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이 민간자본 주도의 경제운영으로 바뀌었고, 또 과거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민주적 형태로 바뀌었다고 해서 한국사회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는 사실상 신식국독자이론에 대한 그간의 잘못된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한국사회가 여전히 신식국독자인가 라는 문제에 있어 단순히 위의 삼단논법의 논리에만 의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앞서 전기 신식국독자에 관한 논의를 통해 그것이 갖는 4가지 기본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즉 대외의존성, 저임금구조, 폭압적 국가권력, 재벌체제가 그것이다. 이들 4가지 요소는 모두 선진국독자와는 다른 신식국독자 고유의 특징을 잘 나타내면서도 또한 내부적으로는 상호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다. 이들 지표를 사용하여 우리는 지금의 한국사회 성격에 대한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 대외의존성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성은 우선 대외무역 비중과 그중 수출이 전체 경제활동과 경제성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이는 한국경제가 과거와 마찬가지로 국내시장보다는 해외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래 표4-1에서 보듯 외환위기 전인 1988년과 1997년 무역의존도는 각각 59.4%와 58.7%이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인 2004년과 2005년 이 지표는 각각 72.8%와 71.2%로 높아졌다. 또 최근 2013년과 2014년에는 다시 102.8%와 95.9%로 한 단계 더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심해지고 있는 추세를 보여준다.

무역의존도의 증가는 양적 측면에서 대외의존성의 증대를 보여주는 것이긴 하지만, 그 질적인 좋고 나쁨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때문에 그와 관련된 판단을 위해서는 다른 보조적 지표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1990년대 들어선 이후 국내 산업연관의 약화에 따라 수출 증가가 생산 증가를 유발하기보단 수입 증가를 유발하는 효과를 낳고 있는 문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수출 증가의 생산유발계수는 1990년 1.99에서 2000년 1.87로 감소한 반면 수출 증가의 수입유발계수는 1993년 0.28에서 2000년 0.37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수출의 취업유발계수 즉 수출이 10억 원 증가할 때 늘어나는 일자리 역시도 1990년 46.3 명에서 2000년 15.7명으로 10년 동안 66%나 감소하였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분업연관 약화,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간의 분절, IT산업과 비IT산업 간의 양극화 등의 결과"1)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성을 잘 나타내 주는 다른 지표로는 생산수단의 수입의존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지표는 1990년대 중반까지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그 이후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예컨대 중화학공업에서 사용하는 중간투입(원자재, 부품) 중 수입품의 비중이 1970년 49.2%에서 1993년 25.7%까지 감소하였는데, 그 후 감소세가 중단되어 2000년에는 32.1%까지 증가하였다. 특히 제조업부문 전체의 민간 총고정자본 형성 중 수입품의 비중은 1993년 31.3%에서 1995년 37.6%, 2000년 42%로 급증하였다.2)

이처럼 199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대외무역비중이나 수출의존도가 그 이전보다 더욱 높아졌으며 이 때문에 대외의존성은 더 한층 엄중해졌다. 그러나 이 시기 한국사회의 대외의존성 문제의 핵심은 그것들보다는 '자본시장 전면개방'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점은 후기 신식국독자 전체를 통틀어 그 전기 때와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경제개발 초기에 투자자금의 해외조달과 이를 상환키 위한 수출주도형 경제의 고착화로부터 생겨났던 '대외의존성'과는 대비되는 것이며, 또 이후 중화학공업화의 진척에 따른 과잉생산물의 해외시장 판매를 위한 '대외의존성'과도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자본시장 개방은 1980년대 들어 시작되었는데,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그 정점에 이른다. 그 후 2005년 한미 FTA에서 투자자유화와 지적재산권 보호 및 서비스분야 등 나머지 분야의 추가개방을 실시하면서 사실상 한국경제의 전 방면에 걸친 전면개방이 이루어졌다. 이렇듯 자본시장 전면개방은 한국경제의 전 방위 개방을 유도하는 첨병역할을 하였다. 사실상 이는 한국경제에 대한 현대제국주의 요소의 경제적 침투에 있어 전면화직접화를 의미한다. 여기서 '직접화'와 관련해서 부연하자면, 이는 전기 신식국독자에 대한 경제적 침투방식과 비교할 때 그러하다. 전기에 있어서는 상품수출입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이 주요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자본시장에 대한 직접적 투자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특히 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공격적 자유주의는 한국과 같이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극히 높은 자본주의 국가의 '대외관계'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다. 과거의 대외관계라는 것이 주로 수출입시장을 의미했다면 이제 대외관계는 자본시장의 개방을 의미하게 되었다. 80년대까지는 상품시장 개방이었지만 90년대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자본시장 개방이 요구"3) 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현대제국주의의 경제적 침투방식이 바뀌게 된 것은 다음 두 측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현대제국주의가 이 시기에 신자유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전 지구적 개방화 특히 금융자유화를 적극 요구하였던 점을 들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그간의 한국경제의 변화 역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는데, 즉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경제는 아직 발전이 미숙하였기 때문에 현대제국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경제적 의도의 관철은 상품의 수출입무역으로도 충분하였다. 비록 자본수출이 필요하였다 할지라도 차관이나 국제신디케이트론과 같은 간접적인 '대부자본' 형식으로도 충분하였으며, 굳이 주식시장과 같은 자본시장에의 직접투자가 절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차츰 한국의 경제개발에 따라 그 경제성장의 과실이 가시화되면서부터 그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공유' 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재벌과 같은 사적 독점자본이 한국에서 점차 성장하여 선진국 자본과 경쟁하게 됨에 따라, 기존과 같은 외부로부터의 대부자본의 수출만 가지고서는 이에 대한 통제와 활용이 부족하게 되었으며 보다 강력한 관여 수단이 요구되었다. 이 같은 의미에서도 보다 '직접적'인 경제침투 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는 한국 자본시장의 전면개방을 통해 주식시장에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자유로워짐으로써 실현되게 된다. 이제부터는 한국사회 '내부'로부터의 경제침투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때문에 자본시장 전면개방은 단순히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성을 넘어 한국사회의 기존의 종속성과 신식민지성의 한 단계 상승을 의미한다.

자본시장 개방이 갖는 의미는 각국마다 분명 다를 수 있다. 그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한데, 한국이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수용한 자본시장 전면개방에 대해 우리는 미시와 거시 두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미시적 측면에서 보면, 한국에 있어 자본시장 개방의 중점은 주식시장의 개방이었다. 주식시장을 통한 상장기업에 대한 외국인투자가 거의 무제한 허용됨으로써, 경제잉여가 대량으로 해외에 유출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됨과 함께, 한국 기업지배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각국의 주식시장은 그 나라 우량기업들을 집결시켜 놓은 곳이다. 한국주식시장 역시 그러하였는데, 여기엔 국내 재벌의 간판급 기업들이 대부분 상장되어 있다. 이들 기업들은 그간 국가의 집중적인 지원에 의해 육성되어 왔다. 그리하여 현재는 선진국들이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철강‧화학‧조선 분야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전자‧정보통신 등 일부 첨단 제조분야에 있어서도 나름의 입지와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 기업들의 해외시장 경쟁력을 지원키 위해 한국정부는 법인세 감면 등 각종 특혜조치를 베풀어 주고 있으며, 또 국내 독점적 시장구조를 사실상 묵인하는 한편 장시간·저임금의 노동 관행 역시 방치한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 독점자본은 자신들이 직접 이들 제조업 분야에 진출하지 않더라도, 이렇듯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우량 재벌기업들에 투자함으로써, 이들 기업들이 위의 각종 특혜를 통해 획득한 '초과이윤'을 전혀 힘들이지 않고 향유할 수 있게 된다.4) 이런 방식으로 국외로 유출되는 국내의 경제잉여는 아래 표4-2에서 보듯 막대한 규모에 달하는데, 한국 상장기업 전체 주식배당금의 30%~45%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5)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 전면개방'으로 인하여, 외국인들은 필요할 경우 언제고 적대적 M&A라는 방식으로 한국 상장기업에 대한 사냥에 나설 수 있다. 이는 미국과 서구 자본에 있어선 자국 정부가 쉽게 찍어 낼 수 있는 종이화폐(달러와 유로)를 가지고 와서 한국 민중들이 수십 년간 허리띠를 졸라매며 키워온 국내 우량기업과 맞바꿀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 외국자본의 이 같은 위협 때문에 이제 한국 기업들은 자신의 소유권 방어에 많은 역량과 자금을 쏟아붓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특히 재벌개혁에 필요한 '출자총액제한'(이 제도는 2009년 3월 폐지됨), ‘금융그룹 종합 감독시스템 도입’과 같은 제도의 엄격한 실시를 제약하는 등, 한국 재벌집단의 낡은 기업지배구조를 유지하는데 있어서도 자본시장 전면개방은 간접적인 공헌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직접적인 적대적 M&A의 위협이 아니더라도,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증시에 있어 점유율 확대(특히 몇몇 우량기업에 대한 투자집중)는 자연히 평상시 상장기업들의 의사결정과 경영활동에 대한 이들 외국인들의 입김이 강해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국내 유수 대기업들이 요즘 들어 장기적인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눈앞의 경쟁력 유지와 단기수익에 급급해하는 관행은, 이처럼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계 기관투자가들의 단기이윤추구 성향과 일정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6)

다음으로 '자본시장 전면개방'의 거시적 측면의 영향을 살펴보자. 이는 한국정부가 수행하는 화폐금융정책의 효력을 약화시키고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달러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것을 들 수 있다. 현대 시장경제에 있어 화폐금융수단은 재정수단과 함께 각국 정부가 국민경제에 개입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이다. 자본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외국인들이 주식시장과 시중은행 지분의 점유 비중을 높임으로써 한국정부의 화폐금융정책의 효과는 적지 않게 반감되고 있다. 외국자본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은행과 금융기관이 "정부의 방침을 잘 따르지 않으며, 리스크 관리 시스템의 공동책임을 부정하고 무임승차하려는 경향"7)이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 원인이다. 이는 결국 국가의 경제 전반에 대한 거시조절능력을 약화시키며, 정부가 수행하는 경제성장, 물가안정, 빈부격차해소, 산업구조고도화, 과학기술증진과 같은 중요 정책은 제약을 받게 된다.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미국 달러의 영향 증대와 이로 인한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은 자본시장 전면개방이 가져온 또 다른 무시할 수 없는 거시적 영향이다. 이는 앞서 미시적 측면과 함께 한국경제의 종속성을 심화시키며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현대제국주의의 규정성을 크게 강화시킨다. 세계 각국의 국제 분업상의 위치를 볼 때 한국은 현재 상대적으로 제조업 강국에 속하며, 이로 인해 대미무역에서 상당한 흑자를 보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달러패권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국제수지 적자로 인해 이처럼 해외로 유출된 달러에 대해 잘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 한국과 같은 대미 무역흑자국의 자본시장 개방은 매우 중요한 조건을 제공한다. 미국의 금융자본들은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점유율을 확대하여 일정 정도 주도권을 장악한 후, 평상시에는 얌전히 주식배당을 받고 있다가도 필요시 언제든지 보유주식을 처분하고 빠져나갈 수 있다. 이 경우 일시에 이루어지는 외국인의 대량매도는 1997년 외환위기 사태 때 경험했던 것처럼 주식시장을 공황상태에 빠트리며, 필연적으로 이에 긴밀히 연동된 외환시장을 크게 교란시킨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한 외국투자가들이 자신들의 주식매도 대금을 달러로 교환하여 일시에 빠져나가는 사태가 발생할 것을 상정해보자. 그 경우 한국 외환시장에서는 원화가치가 폭락하게 될 뿐만 아니라 외화부족으로 인해 과거와 같은 '외환위기'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 때문에 한국은 이 같은 위험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 대미무역에서 벌어들인 달러의 상당부분을 수익률이 낮은 미국정부 채권에 투자하여 일정수준 이상의 외환보유고를 항상적으로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8) 이는 달러의 국제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강화시켜주는 셈이 된다. 결국 한국과 같은 신식국독자의 존재와 그 자본시장 개방을 통해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더욱 강화하게 된다.

이상의 분석에 대해 지적된 문제들은 특별히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전 지구적 현상이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지구화시대인 오늘날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긴밀하게 상호 연계된 상황에서 이 같은 문제들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오늘날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 간의 연동성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각국의 금융시장 안정성이 과거에 비해 많이 취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정도에 있어 각국의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며, 또 그것은 각국이 현 국제통화질서에 있어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우선 미국의 자본시장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안전하다. 자국 내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외부로부터의 교란에 의해 그 안정성이 해쳐지는 경우는 거의 상상할 수 없다. 이는 미국이 '달러'라는 세계화폐의 발권국가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보다 좀 덜하지만 서구 선진 각국의 금융시장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그것은 이들도 엔화나 유로를 통해 세계기축통화체계에 있어 일정정도의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들은 모두 국제통화체제와 국제금융질서에 있어 모두 나름대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점이야 말로 현대제국주의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러한 현 국제질서 하에서 자본시장을 개방할 경우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개발도상국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신식국독자인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위의 선진국들처럼 현 국제통화체제와 금융질서에 있어 유리한 위치에 서 있지 않으며, 오히려 일반 개도국들보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자본시장의 전면개방으로 인해 더욱 취약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한국은 어느 정도 산업화를 달성한 사회이고 그 주력 기업들은 수출을 위주로 하며, 또 이 같은 대외의존성 때문에 결국 외부적 강압에 의해 금융시장을 전면 개방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다른 개발도상국들은 대부분 아직 산업화를 달성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선진국 금융자본에게 한국만큼 별반 유인요인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한국의 금융시장(특히 주식시장)은 국제금융자본의 주요한 타켓이 된다. 2005년 말 한국에 대한 외국인 주식투자 규모는 2570억 달러로 세계 7위를 기록하였다.9)

둘째, 한국의 자본자유화 수준이 일반 개도국은 물론이고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도 비정상적일 만큼 높다는 점이다. 실례로, 한국의 자본자유화 수준은 2009년 자본시장 개방도를 나타내는 '자본 접근성 지수(CAI)'에서 10점 만점에 7.39점을 받았다. 그것은 조사 대상 122개국 가운데 12위를 기록하는 것으로 매우 상위에 위치함을 뜻한다. 예컨대 캐나다(8.25점), 홍콩(7.99점), 영국(7.95점), 싱가포르(7.92점), 미국(7.88점), 스위스(7.68점), 스웨덴(7.54점), 오스트레일리아(7.52점)보다는 낮지만, 같은 신흥공업국인 대만(6.54점) 그리고 우리보다 선진국인 일본(6.72점), 프랑스(6.99점), 독일(6.84점), 이탈리아(5.96점)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수치이다.10) 여기서도 볼 수 있듯, 한국경제의 심각한 경제잉여 유출을 낳고 있는 과도한 자본시장 개방을 지구화나 신자유주의 일반의 현상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한국의 자본시장 개방을 단순히 일반적인 금융 면에서의 '대외의존도'의 심화정도로만 이해하는 것은 부족하다. 그것은 총체적으로 현대제국주의와의 관계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으며, 그러할 때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대제국주의 요소가 미시와 거시 양 측면에서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한국경제에 침투하여 보다 강력하게 자신을 관철하고 있는 객관 현실이 분명하게 인식될 수 있다.

[본문 주석]

1) 정성진 외, 2006,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체제 변화:1987-2003>,p48,한울아카데미.

2) 위의 책, pp48-49.

3) 김진업 편, 2001년, <한국자본주의 발전모델의 형성과 해체>, p193, 나눔의집. 다만 위 인용문의 저자는 미국의 공격적 자유주의의 본질을 국제금융자본(즉 국제투기자본)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는 자본의 국제화에 있어 '산업자본 국제화'가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음을 반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본국제화의 주요하고 지배적인 측면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금융자본의 국제화로 이해하는 것은 편협하다.

4) 이에 대해 <부자 삼성 가난한 한국>의 저자 미쓰하시 다카아키는, "과점화된 시장에서 극단적인 이익을 올리는 기업의 주주 중 대다수가 '외국인' "(p28)이라고 지적한다. 참고로 외국인들이 투자하고 있는 한국의 우량기업들의 상황을 보면 이러하다. 2018년9월27일 현재, 삼성전자 (52.6%), 현대자동차 (46.2%), 포스코(55.4%), 현대모비스(48.6%), 기아차(40.7%),현대중공업(16.7%), KB금융 (70.3%), 신한금융지주 (69.2%), 하나금융지주 (71.2%). 8개 시중은행 중 2개 은행(SC제일은행, 한미은행)의 경영권 장악.

5) 이 밖에 시세차익으로 이들 외국인 투자자들이 얻는 수익은 더욱 막대하다. 즉 "1992년부터 2007년 9월 말까지 외국인들이 받은 누적 배당액은 총 16.6조 원에 불과하지만 국내 주식시장에서 얻은 '평가차익'의 액수는 총 306.6조 원에 이른다. 이 둘을 합치면 1992년부터 16년간 연평균 20조원이 외국자본에 지급된 것이다. 더구나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외국인이 보유주식의 일부(40퍼센트 보유 지분 중 약 10퍼센트)를 매도해 회수한 자금만 39조9000억 원으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외국인들이 투자한 원금 42조 원에 거의 맞먹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주형, 2011년,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p359, 책세상.

6) 예컨대, 외환위기 이후 한국 상장 대기업들의 배당률이 높아진 것도 외국인 투자가들의 성향과 상관이 있는 것 같다. 즉, "요즘에는 삼성전자만이 아니고 우리나라 10대 상장사, 100대 상장사가 모두 비슷하게 행동하면서 매년 합쳐서 30조-50조를 국내외 주식 투자자들에게 분배하고 있어요."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2012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쾌도난마 한국경제>,p227, 부키. 그런데 이 같은 막대한 배당금은 원래 제약이나 바이오, 정밀화학, 첨단부품소재, 우주항공처럼 앞으로 10-20년 걸려 개척해야 할 산업 쪽으로 과감하게 투자되어야 할 돈이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외국인 투자가들의 압력 때문인데, 다음 인용문의 사례를 보면 대충 그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2005~2006년에 칼 아이칸이라는 미국의 투기 자본이 담배인삼공사라고 지금의 KT&G의 주식을 대량 매입한 뒤 경영권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습니다. 이른바 적대적 M&A 위협이죠.…… 결국 아이칸이 승리했어요. 그 부동산을 팔게 한 거죠. 그러고는 그렇게 해서 발생한 해당 연도 특별 이익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모두 배당금으로 주주들에게 나누도록 요구했어요. 앞서 말했듯이 아이칸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KT&G의 주주 이익 분배율은 무려 156퍼센트에 달했습니다. "위의 책, pp239-240.

7)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p360. 국민은행을 포함해 외국자본이 지배하는 은행들은 주주가치를 내세우며, 2003년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이 된 LG카드 사태 해결을 위한 자금 지원에 비협조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자신들이 빠지더라도 정부가 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을 내세워 LG카드 사태를 해결할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감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8) 한국의 경우, 2001년 1850억 달러였던 내국인의 해외투자 잔액은 2006년 4415억 달러로 2.4배 증가하였다. 이는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가 크게 늘어난 탓도 있지만 준비자산, 즉 외환보유고가 2001년 1028억 달러에서 2006년 2389억 달러로 늘어나 해외투자 잔액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도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이러한 외환보유고는 지나친 면이 있다. 자금의 기회비용인 이자율을 단순 비교할 경우, 한국의 국내이자율이 미국의 이자율보다 일반적으로 높기 때문에 이에 따른 한국경제의 손실도 적지 않은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보유고 유지로 인한 재정손실은 GDP의 0.4-0.6%에 달한다고 한다.(현재 40억~60억불에 해당하는 수치) 전반적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외환위기를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에 있어 외환보유액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며, 일부 연구보고에 따르면 아시아 국가들의 초과 외환보유고가 GDP의 10%를 넘는 규모라는 추정도 있다. 관련내용,김인준‧이창용 편, 2008년, <외환위기 10년, 한국금융의 변화와 전망>,pp86-88. 서울대학교출판부.

9) 위의 책,p359.

10)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체제 변화:1987-2003>,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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