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언니가 운영하는 대학로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언니 말로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 밤마실을 갔다 우연히 카페를 떠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돈은 버는 대로 조금씩 줘도 되니 맡아달라고 통사정을 해서 당시 백수였던 언니는 엉겁결에 ‘시사랑’을 인수하게 되었다.5평쯤 될까. 테이블이 고작 4개인 조그만 찻집이었다. 커피는 기본이고 간단한 식사와 안주도 제공되는, 요즘 카페와는 다르게 찻집과 호프집을 넘나드는 그런 공간이었다. 상호가 ‘시사랑’이었다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복선처럼 느껴진다. 당시
노시인은 늘 베레모를 쓰고 강의실에 들어왔다. 반백의 머리카락이 베레모 밑에서 구불거렸으며, 단정한 양복에 유난히 반짝이는 구두코는 1970년대의 모더니즘 시인을 연상케 했다.“여러분~시가 뭐여요? 시는 여러분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거여요.” 노시인의 목소리는 언제나 낭랑하고 촉촉했다. 비 오는 날이면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비가 오서요…. 누구 한 번 일어나 시 한 편 낭송해 보서요.” 라고 말할 땐 이미 눈시울까지 젖어 있었다. 나는 노시인의 그 촉촉하고 맑은 눈과 마주칠 때마다 당혹
사랑은 월담이다어느덧 학교 담장 위에 장미가 만개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나는 종종 장미넝쿨이 늘어진 담장에 기대보는 습관이 생겼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담장 밑에서 사랑을 했을까. 누군가는 여기서 등을 기댄 채 첫 키스를 나누었겠지. 사랑의 추억을 많이 흡수한 담장일수록 아름다운 것일까. 그래서 아름다운 담장 아래 등을 대고 있으면 그 사랑의 파동이 전해오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설레는지도 모른다. 장미꽃넝쿨이 출렁이는 담벼락 아래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봄은 자꾸 연착됐고 그는 도착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만 그 지도를 보고 말았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어쩌면 수술에서 암술에 이르는 길인지도 모른다. 수술에서 암술로 옮겨가기 위해 ‘어떤 꽃은 꽃가루를 바람에 태워 날리거나(풍매화) 곤충을 통해 옮기거나(충매화) 물을 따라 흘려보내기도(수매화)하며, 심지어 사막에서는 벌새(조류)나 박쥐(포유류)가 배달’(어떤 꽃은~배달: 중에서 인용) 하기도 한다.지척의 거리인데 왜 그토록 당도하기 힘든 것일까. 아마 당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곁에 있는 ‘당신’이 사실은 가장 당도하기 어려운 길이며 어쩌면 평생을 돌아
대학 가서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것이 바로 담배를 피우는 일이었다. 하얀 연기를 허공에 내뿜으며 지긋하게 그 연기의 사라짐을 바라보는 일. 언니는 식구들이 없을 때면 종종 창문을 열고 하얀 연기를 내뿜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적막하고 적요롭던지. 그때마다 나도 어서 담배를 피워야지 생각했다.담배를 피우다지금으로선 상상이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 여의도의 국회의원들이 토론을 벌이면서 담배를 피우거나 TV 대담 프로에서 출연자가 담배를 피우며 사회자와 담소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택시를 타도 아저씨들은 담배부터 꼬나물었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전기대 낙방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그렇게 소원하던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할 수 있었다. 그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전지 가득 빽빽하게 합격자의 수험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멀리서도 나는 내 이름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이름 주변에서 이상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이 그렇게 크게 빛나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이내 실망감으로 바뀐다.큰 소가 굴레를 벗어놓은 곳학교는 ‘굴레방다리’에서도 북아현동 방향으로 한참이나 더 들어간 곳에 있었다. ‘굴레방다리’라는 지명은 ‘큰 소가
링거주사를 머리에 꼽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아가의 모습만큼 슬픈 것이 있을까. 어린 아가일수록 혈관이 잘 나오지 않아 머리에 주삿바늘을 꼽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가도 위험한 고비를 넘긴 뒤 머리에 링거바늘을 꼽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아가와 헤어질 시간은 기어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퇴원하자마자 아가의 해외입양이 정해진 것이다. 입양 홀트아동복지회에서는 양부모가 확정되자 위탁모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가의 양부모는 옆구리가 흘러넘치는 햄버거 같은 고도비만의 노란 머리였는데, 웃는 얼굴이 그리 나쁜 사람 같아
겉으로는 비교적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굣길에 대장간 앞에서 종종 쇠 매질 소리도 들었으며 그때마다 녀석을 잠시 떠올려보기도 했다. 닭을 묻어주었던 그 능선에 올라 혼자 지는 석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사랑을 한 적도 없는데 버림받은 느낌이라니.사랑도 하지 않고 사랑을 잃는 것보다는 차라리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실연당하는 게 더 낫다고, 실연당한 게 창피한 것이 아니라 실연당할 만큼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지 않은 게 더 창피한 거라며 능선 위 바람이 몰려다니며 나를 비웃는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