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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두환의 모델 멕시코멕시코 역시 라틴아메리카의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식민화, 독립을 거쳐, 20세기 초 자유주의자가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 기초는 역시 자원(석유 등)수출입니다. 멕시코는 1910년대 혁명기를 거쳐 1920년대부터 군부가 조종하는 제도혁명당의 독재시대로 들어갑니다.멕시코 혁명은 농민을 대변하는 사파타, 노동자를 대변하는 판초빌라, 민주세력이 자유주의 지배세력에 대해 혁명을 일으키고 동시에 서로 싸운 복잡한 내전입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제도혁명당은 특이한 조직입니다. 멕시코 혁명에서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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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8.06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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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카라과앞에서 쿠바 혁명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쿠바 혁명은 농촌의 게릴라전과 도시의 대중운동을 결합한 양면 전략이라는 특성을 지녔습니다. 쿠바 혁명의 전략을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나 멕시코의 사파티스타가 반복합니다.산디니스타나 사파티스타는 신자유주의 시대 출현한 게릴라 운동입니다. 두 운동 모두 정치적 측면에서 민주주의와 자율성을 상당히 강조합니다. 이는 서구의 자율운동과 같이 신자유주의 이후 등장한 거의 모든 저항운동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측면이죠. 이를 통해 산디니스타와 사파티스타는 새로운 사회주의 모델을 수립합니다.먼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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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7.3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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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4년 1월1일포스트모던 시대에 아직도 게릴라전을 이어가는 집단이 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있습니다. 1994년 1월1일은 미국과 멕시코가 맺은 FTA 즉 나프타가 발효된 날이죠. 이날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의 수도에는 검은 스키마스크를 쓴 게릴라 약 3000명이 모여들었습니다.그들은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을 틈타 도시로 진군했어요. 그들은 경찰서와 시청을 접수하고 사파티스타 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핵심 내용은 나프타 무효선언입니다. 이는 지난 1983년 조직되었다는 사파티스타가 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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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7.2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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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앞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치적 투쟁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유사했어요. 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대에서 60년대 말까지 노동자에 기초한 사회주의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이를 탄압하기 위해 60~7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자유주의 군부의 쿠데타가 일어났죠.80년대, 민주화를 통해 급진 민주세력이 군부를 대신합니다. 그러나 정책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이죠. 일종의 타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브라질의 룰라 정부가 대표적 예가 되겠죠.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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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7.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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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틴아메리카의 세 가지 길신자유주의는 세계 체제입니다. 미국, 영국은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가 되었죠. 일본, 서독이나 한국 및 중국은 서로 다른 수준이기는 하지만 어떻든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반면 거의 대부분(멕시코나 브라질을 예외로 한다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원자재(농산물 및 광산물 등) 수출 국가가 되었습니다.신자유주의에 대항해 미국, 영국에서는 트럼프나 브렉시트와 같은 현상이 출현했지요. 이런 현상은 쇠락한 러스트 벨트를 되살리려는 제조업 자본과 공장 노동자의 염원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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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7.0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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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율주의운동앞에서 신자유주의 시대 유럽의 자율운동을 살펴보았습니다. 자율운동은 노동자 자주관리운동이나 청년들의 주거 점거운동, 예술가의 자율 예술운동 등을 초점으로 전개되었죠. 그 외에도 자율운동은 여성의 낙태 합법화운동, 환경보호주의자들의 핵발전 반대운동 등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습니다.그 특징은 근본적으로 자율성에 있다고 했습니다. 기존 정당, 의회 정치로부터 독립적이고 위계적인 조직이 아닌 수평적 네트워크적인 조직을 구성했습니다. 자율운동은 법과 선거, 언론을 이용한 투쟁보다는 거리에서 경찰과 대결을 통해 투쟁했습니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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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7.0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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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율운동의 이해앞에서 이탈리아 공장 자주관리운동, 독일 청년의 주거 점거운동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영화 를 통해 스페인의 예술가 자율운동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런 유럽의 자율운동은 네그리에 의해 이론화되었습니다. 네그리는 이탈리아 노동자 자율운동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앞에서 잠깐 소개했었습니다.그의 이론은 국내에도 어느덧 알려졌지요. 하지만 네그리의 개념은 유럽의 자율운동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기에는 편협하며, 그의 이론은 차라리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리버럴)의 운동 개념에 더 적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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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6.2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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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 신자유주의 시대 유럽이 처한 문제점을 살펴보았습니다. 남유럽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체제, 그리고 그 하부 체제인 유로 체제 아래 경쟁에서 탈락하면서 경제적으로 몰락했어요. 독일, 프랑스는 이런 경쟁에서 승리해 제조업 국가로 자리를 잡았지만 금융자본의 투기로 부동산 및 자산 가격이 앙등하여 상대적 박탈감이 증가했지요.이 시기(1980년→2010년) 유럽에서 자율운동이 등장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 자율운동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책은 없습니다. 다행히 국내에서 번역된 조지 키치아피카스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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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6.1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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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유럽에서 새로운 저항운동이 일어났어요. 그것을 일반적으로 자율운동(autonomia movement)로 부릅니다. 자율운동이 어떤 것인지 이제 볼까 합니다. 1) 유럽의 특수성 우선 유럽 그 시대의 역사를 살펴보죠. 유럽이나 미국은 경제적으로 병행 발전했어요. 60년대 대량생산 체제는 70년대 초 위기를 맞이했고 80년대 복지를 축소하면서 작은 정부가 등장했습니다. 80년대 자동화 기술혁명 덕분에 다시 성장국면을 회복했으나 90년대 초 다시 위기에 빠졌지요. 이 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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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6.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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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작은 정부가 아니고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국제 분업체제입니다. 이런 신자유주의 시대 등장한 대표적인 이데올로기가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즉 리버럴이죠. 이제 역사적으로 신자유주의와 리버럴이 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려 합니다.1) 68혁명의 실패앞에서 68혁명에 가담했던 청년 지식인이 어떻게 출현했는가를 설명했습니다. 1968년에 이르자 전 세계 동시적으로 혁명이 발생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반전운동으로, 유럽에서는 반관료주의 운동으로 전개되었죠.그 과정은 생략하죠. 68운동은 완강한 관료적 억압국가의 저항으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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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6.0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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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신자유주의가 금융자본의 지배를 통한 세계체제였다는 점을 앞에서 언급했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지배적인 이념은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라 할 수 있겠죠. 오늘은 이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흔히 리버럴리즘(liberalism)이라 합니다. 다만 나는 이를 이 시대 문화 전반을 강타했던 포스트모더니즘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이해해야 마땅하다고 보죠.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라 불러왔어요.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문화적 측면은 고려하지 않으니 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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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5.2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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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천억 달러는 어디 갔나?앞에서 신자유주의를 작은 정부, 재정지출 축소로 이해하는 입장을 비판했습니다. 이것도 신자유주의의 모습 가운데 하나이긴 하지만 핵심적인 것은 아니죠.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요?경제적으로 볼 때, 신자유주의 시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아마도 비정규직의 양산이 아닐까 합니다. 굳이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게다가 산업은 불균형적으로 특화하여 발전하고 있습니다. 최근 반도체 단일 품목이 1천억 달러나 수출되면서, 경제가 엄청 성장한 것처럼 선전되었습니다. 그 1천억 달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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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5.2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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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앞에서 마르크스, 레닌과 마오가 각기 자기 시대, 자기 사회에 적절한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마르크스주의가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요?답 : 기다렸던 물음입니다만, 답변은 막연할 것 같아요. 실망할까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또 듣기에 따라서 당파적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지식이 동원될 텐데 엄밀성이 결여될 수도 있습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비춰보는 거울로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1) 자주적 마르크스주의나는 몇 번 나 자신의 입장을 자주적 마르크스주의라고 명명해 보았습니다. 그 의미를 간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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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5.1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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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제동맹론앞에서 설명했듯이 마오의 만리장정은 세계사적인 의미를 지녔습니다. 마오는 만리장정 도중 섬서에서 장국도를 따라 되돌아가지 않고, 연안으로 북상항일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대중이 있는 새로운 근거지를 발견했어요. 그게 반제동맹입니다.마르크스주의의 역사는 레닌의 노농동맹론에서 마오의 반제동맹으로 나갔어요. 레닌은 도시 봉기와 전격전을, 마오는 농촌 근거지에서 지구전을 전개했지요.마오의 만리장정은 국제 마르크스주의운동에 거꾸로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레닌 사후 코민테른에서 내부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요컨대 민족주의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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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5.0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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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시에서 농촌으로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은 어찌 보면 매우 간단해요. : 역사의 가능성이 실현되려면 실현할 객관적 조건이 주어져야 된다. 이런 조건이 주어지라도 그 위에 사람의 실천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실천이 아니라 집단적인 실천이 요구된다. 객관적 조건과 집단적 실천, 이 두 가지가 역사의 알파요 오메가이다.역사의 알파와 오메가를 모른다면, 왜 마르크스가 사회주의 사회의 전제로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이 필요하다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마르크스는 봉건사회에서 바로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봉건사회에서 사회적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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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4.2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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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 현실레닌은 신문 를 통하여 당과 대중, 해외와 국내를 연계하려 했다. 그 매개자가 곧 볼셰비키이다. 레닌은 볼셰비키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자주적 인간이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멘셰비키도, 레닌을 따르는 볼셰비키조차도 레닌을 이해하지 못했다. 레닌 시대에 자주성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레닌은 좌우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기의 개념에 형태를 부여했다. 그것이 레닌의 비판적 논쟁의 열정이었다.해외망명에서 1917년 4월 러시아로 돌아오기까지 레닌은 또 하나의 투쟁을 전개했다. 그것은 러시아 사회에 적절한 혁명 전략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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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4.1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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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렉시트마르크스주의는 끝없이 파산하고 또 다시 되살아났다. ‘불사조’라는 말이 마르크스주의의 운명을 잘 표현해준다. 그만큼 내적인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탄생이 있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불타, 시꺼먼 재로 변화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마르크스주의는 1980년대 말 다시 파산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몰락하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마르크스주의 연구 붐이 일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내적 생명력을 다시 찾으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마르크스주의는 아직 빛도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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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4.0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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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문의 연소(聯蘇. 소련과 연합)·용공(容共. 공산주의 용인), 좌우합작 노선에 따라 1924년 국민당이 세워졌습니다. 마오는 광주 농민강습소에서 활동하던 중 농민의 혁명적 열정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마침내 손문의 북벌군이 1926년 7월 진격을 시작하자, 광주에서 무한, 남경에 이르기까지 도중에 있던 도시의 노동자와 농촌의 농민이 봉기했습니다. 마오는 이때 농촌의 농민혁명을 주도했습니다.마오는 레닌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노선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노농동맹을 수용하면서 그 위에서 농민혁명의 전략을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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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4.0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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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통 발생의 법칙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이념을 확립했습니다. 그것이 곧 모든 생산수단의 국유화이죠. 마르크스 자신이든 그 후예인 레닌과 마오든 결국 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던 데에는 동일합니다.그러나 각기 다른 사회적 조건 아래 있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실천적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차이는 개인의 성격 차이에서 비롯된 바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주로 사회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중심지, 제국주의 국가에서 활동했고, 민주와 법치가 여기서는 어느 정도 뿌리내렸으니 합법적, 평화적 이행의 전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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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3.2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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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혁명가과 레닌과 마오의 차이에 대해 알고 싶어요. 두 사람은 모두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해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무척 다른 것 같아요. 흔히 서구 마르크스주의와 아시아 마르크스주의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답 :1) 목표와 수단의 딜레마마르크스는 노동조합의 지역적이며 경제적인 투쟁만으로 충분하다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전국적인 정당을 통한 정치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정치투쟁은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혁명적 성격을 띤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대중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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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2018.03.19 1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