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 5월 광주는 한국현대사의 최대 비극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직도 그 아픔이 가시지 않고 책임자에 대한 명확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누구나 알고 있는 미제의 사건으로 남아있다. 1988년 국회에서 ‘광주학살 진상 규명 청문회’가 열려 정확한 사망자 수와 발포 책임자 등을 심문했으나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사망자 수의 공식 집계는 민간인 144명, 군경 26명 등 170명이지만 국내외 관련 저서와 통계 연보 등에 따르면 2,000여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사실 광주를 노래한 노래는 많이 있다. 지금까지
지난 연재모음
최현진 현장기자
2016.12.14 18:11
-
1979년 10월 26일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뉴스는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이었다. 전 세계의 독재자들은 언제나 박정희를 그리워했다. 철권통치의 장기독재를 이어오면서도 나름 경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듯한 모습이 독재자들의 새로운 롤모델이었다. 오죽하면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는 박정희가 죽던 날, 밤새워 울었다고 한다.박정희의 경제개발의 모델은 실제로 4.19혁명 뒤에 만들어진 장면내각의 경제개발계획을 그대로 차용했다. 그러나 제2공화국의 경제발전계획은 그 빛을 보지 못했고,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의 경
지난 연재모음
최현진 현장기자
2016.12.07 20:35
-
1945년 일본이 물러가고 미군이 들어오면서 미군을 상대로 ‘가족의 생계 유지를 해야 하거나 먹고 잠잘 곳이 없어 머무는 곳’이 기지촌의 출발이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을 상대로 매춘이나 미군상대 서비스 활동을 하면서 생계유지를 했다. 나라가 전쟁 중이었고 모든 것이 폐허가 됐을 당시, 먹고살기 힘들어 택했던 기지촌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행해졌던 직업이었다.미군을 상대해야 하는 여성들은 그들에 의해 수많은 피해를 당해야만 했다. 미군에 맞아죽는 여성도 있었고, 포주들의 강압에 의해서 마약과 술에 찌들어 약물중
지난 연재모음
최현진 현장기자
2016.11.30 16:33
-
전쟁은 인간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생활환경과 문화를 바꾸게 한다. 한반도 사회는 5천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전쟁을 겪어야 했고 그 와중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전쟁에서 힘의 약자인 여성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여성은 승전국에 바치는 조공품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 고려는 몽고에게 항복한 후 매번 여성들을 골라 원나라로 보내야 했기에 조혼이 광범위하게 이뤄져 왔다. 화냥년이라는 말이 나돌았던 조선시대의 병자호란도 여성이 전쟁에서 얼마나 비참한 삶을 영위했는지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역시 여성은 정신대란 이
지난 연재모음
최현진 현장기자
2016.11.23 18:33
-
목포는 전라도의 주요 항구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머물며 조선 수군의 진을 형성했던 곳이다. 목포가 항구로서 모습을 갖춘 것은 1897년의 일이고 이후 목포는 일제 강점기 조선 침탈의 주요 항구로 이용됐다. 따라서 목포는 한반도에서 나온 주요 산물인 삼백(목화, 소금, 쌀)의 주요 집산지이기도 하다.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주요 도로와 철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2대 도시인 부산을 연결하는 도로와 철도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일본은 한반도 수탈을 목적으로 국도1호선을 목포와 서울을 연결하는 도로를
지난 연재모음
최현진 현장기자
2016.11.16 11:40
-
56년 선거에 후보를 내고 갑작스런 후보의 죽음으로 대선을 치러보지도 못한 민주당은 와신상담하게 된다. 자유당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승만이 고령으로 이승만의 사후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서 민주당에 부통령 자리를 내주자 이기붕을 중심으로 대통령과 부통령을 동시에 석권하기 위해 각종 부정을 서슴없이 저지르게 된다.투표율이 높아지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판단 아래에 자유당은 4대 대통령 선거의 투표일을 3월 15일로 앞당겨 치른다. 대구에서는 야당 후보의 유세가 일요일에 열린다는 이유로 대구지역 일요일에도 강제적으로 등교조치를 내려 국
지난 연재모음
최현진 현장기자
2016.11.09 12:18
-
1948년 최초로 헌법이 발표될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에 의해 뽑는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후 1952년 이승만 정권은 간접선거에서 직접선거로 대통령 선출을 바꾸는 개헌을 진행해 재선에 당선된다. 그러나 당시까지 헌법은 대통령의 재임까지만 인정했기에 3선은 안되게 돼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당은 1954년 무리하게 3선 금지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마련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게 된다.당시 국회에서 3선 개헌안을 투표한 결과, 재적의원 203명 중 202명이 참석해 찬성이 135표, 반대가 60
지난 연재모음
최현진 현장기자
2016.11.03 13:48
-
1982년 4월 한반도와 정반대에 위치한 아르헨티나의 작은 섬 포클랜드에서 아르헨티나와 영국간의 전쟁이 일어났다. 영국 정부는 포클랜드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했으나 많은 영국인들은 포클랜드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적었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대처의 무리수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고 마침내 영국은 아르헨티나의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했다.아르헨티나 남단에 위치한 조그만 섬인 포클랜드에 대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영국이 포클랜드에서 전쟁을 한 이유는 단 한가지다. 포클랜드 근해의 석유와 남극 탐사의 기지
지난 연재모음
최현진 현장기자
2016.10.26 16:46
-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은 3년간의 전쟁동안 수백만 명의 희생과 천만 이산가족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당시 인구가 삼천만 정도였으니 대한민국 국민 1/3은 이산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멈추고 30년 간 이산가족을 찾고자 하는 개인적 노력은 있었으나 국가나 공공기관의 노력은 미약했다.의심은 언제나 또 다른 의심을 낳는다. 더구나 매번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권력의 언론은 똑같은 보도를 해도 그 보도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어린나이에 봐왔던 이산가족 찾기의 모습은 헤어진 형제, 부모를 만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그리
지난 연재모음
최현진 현장기자
2016.10.20 11:02
-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이후 억눌려 있던 국민들의 자유 의지는 봇물 터지듯 쏟아지기 시작한다. 연금된 정치인들이 정계로 복귀했고 2명 이상 모일 수 없었던 대학가의 청춘들은 삼삼오오 모여 시국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국민들의 자유 의지는 80년 ‘서울의 봄’으로 폭발된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서울의 봄은 5.17계엄령과 ‘80년 광주’라는 한국현대사에서 잊을 수 없는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 쿠데타세력은 제 시나리오대로 정권 탈취작업을 진행한다. 신군부는 거리 곳곳에 탱크와 장갑차를 배치하여
지난 연재모음
최현진 현장기자
2016.08.25 16:56
-
요즘 대중가요계를 보면 인형을 빼다 박은 것 같은 가수들이 인기를 휩쓸며 활동하고 있다. 한때 ‘꽃미남’이란 별칭과 함께 10대 소녀는 물론 3~40대 여성들까지 열광하던 남성 아이돌 가수들이 주춤한 사이 외모가 빼어난 걸그룹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해서 노래만으로 승부한다는 말은 아득히 잊힌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의 가사 같다는 생각이다. 연예기획사들이 예쁘고 춤 잘 추는 청소년들을 꼽아 가수로 데뷔시키면 또래의 청소년 대중은 그렇게 이미지화된 걸그룹을 보면서자신의 외모도 그들에게 맞추려는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요즘 청
지난 연재모음
최현진 현장기자
2016.08.04 14:37
-
세계기타협회 회장이었던 스페인의 나바스코와 세고비아의 수제자 볼로틴이 감탄해마지 않았던 기타리스트. 지난 1991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나치 희생자 추모제’에서 전 세계에 자신이 만든 ‘장례곡’을 연주한 최초의 한국인.이 정도면 그의 이름은 대한민국의 많은 이가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만하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당연히 ‘가수’ 김의철에 대한 기억은 대한민국에서 흔치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의 노래가 아직 우리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불리곤 하는 거다. 그것이 그에 대한 우리 기억
지난 연재모음
최현진 현장기자
2016.07.14 11:42
-
1984년 말 광주에서 자란 더벅머리 젊은이가 국내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통기타를 둘러멘 가수 김원중씨는 이듬해인 85년 대중가요 순위프로그램인 ‘가요톱10’에 출연해 ‘바위섬’이란 노래로 당시 기라성 같은 인기가수들을 뒤로 하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이 노래는 젊은이들이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불렸다. 바위섬은 국내에선 처음으로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기획, 제작된 옴니버스 음반인 ‘예향의 젊은 선율’(1984)에 수록된 노래다. 가수 김원중씨는 이 음반에 막내 가수로 참여한다.‘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지난 연재모음
최현진 현장기자
2016.06.08 18:47
-
‘조총련’의 정식명칭은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다. 남한에서는 이를 줄여서 흔히 조총련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 쓰는 공식 줄임말은 ‘총련’이다.일제시기 일본은 조선의 젊은 청년들을 징용이라는 미명 아래 국가총동원령을 앞세워 일본으로 끌고 가 강제노역을 시킨다. 1939년부터 1945년 사이에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은 72만 명에 이르고 일제 전 기간 동안에는 500만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에게 찾아온 해방은 분명 기쁨이었지만 그들이 돌아갈 조국의 현실은 남북 분단과 함께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선택을 강요하였다. 그들은 어디에도 귀속되지
지난 연재모음
최현진 현장기자
2016.05.25 1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