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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글을 맺어야 한다. 얼마 전에 동남아시아의 어느 국립대학 교수가 만나자고 찾아왔다. 한 동포연구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야기 내용을 들으면서 그가 하는 소리가 “재일동포들은 이미 하나의 커미니티가 형성되여있다. 이것은 단숨에 생긴 것이 아니라 장기간의 축적과정이 있을 것이다”고 소감을 말했다. 필자는 바로 그렇다고 동감을 표시했다. 해방이 되어 70여 년간을 경과했으나 재일동포들은 일본사회에 매몰되여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우리의 문화와 미풍양속을 이어가고 있으며 조선사람으로서 떳떳이 생활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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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상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 부소장
2018.11.3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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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21세기의 총련사업은 격란하는 시대에 상응하게 심각한 투쟁과 흥분에 휩쌓인 활동이 착잡하게 교잡된 시기의 활동이었으며 그것은 오늘도 계속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15공동선언 2000년 6월의 북남수뇌자들의 상봉과 공동선언의 발표는 새로운 통일시대, 6.15통일시대를 열었다. 총련은 공동선언을 열렬히 지지환영하였으며 지지환영하는 청년축제, 중앙모임 등을 가져 6.15시대에 맞게 통일운동을 벌렸다. 총련동포 고향방문단사업(9.22∼27, 이후 계속진행), 금강산가극단의 서울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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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상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 부소장
2018.11.1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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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는 바와 같이 91년에 소련이 붕괴된 이후 세계의 유일한 초대국으로 군림한 미국은 미국중심의 세계질서를 확립하려고 광분했다. 90년대초부터 공화국에 대한 《핵의혹》이란 것이 보도계에 빈발해졌다. 미국과 남조선당국자들이 《팀스피리트93》 합동군사연습을 재개하고 공화국이 이에 대하여 핵무기방지조약 탈퇴(93. 3.12)를 선언한 것을 기화로 하여 제국주의자들이 반공화국 책동으로 이용한 것이 소위 제1차 핵의혹이다. 미국에 의한 북조선 공폭론, 북조선에 대한 일본의 경제제재 강화, 북조선 붕괴설에 이르기까지 온갖 말이 떠돌았다.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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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상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 부소장
2018.10.3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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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역시 격동적으로 서막이 올랐다. 전두환 군부독재를 반대하고 민주화를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이 활화산처럼 번졌다. 재일동포들도 반독재민주화운동 정형에 대하여 주시하고 함께 투쟁할 결심을 세웠다. 광주항쟁을 지지성원하는 사업1980년5월17일, 전두환을 비롯한 유신잔당들은 남조선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독재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나선 애국적인 청년학생, 민주인사들을 닥치는대로 체포구금하고 학살하였다.총련은 군사파쑈도당에 대한 분격을 안고 광주시민들의 영웅적투쟁을 지지하는 활동을 벌렸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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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상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 부소장
2018.10.1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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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4월1일 현재 재일동포 중 조선에서 태어난 동포는 24.1%, 일본에서 태어난 동포는 75.6%를 차지한다(일본 법무성 통계). 다시 말하면 1세는 4분의 1이고, 일본에서 나서 자란 동포가 동포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저한 세대교체는 동포들의 가치관 다양화를 가져왔으며 총련도 그에 상응한 운동을 모색했다. 그 하나가 젊은 상공인운동이며 그 단서를 연 것이 1970년 8월에 가진 《재일조선 젊은 상공인들의 모임》이였다. 이것은 21세기에 활약하는 청상회운동의 시초로 되었다. 1972년 7.4남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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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상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 부소장
2018.10.0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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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총련사업은 크게 앙양되었다. 이 시기는 일본경제의 고도성장기이며 그 말단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동포 상공인들의 장사나 기업활동에서도 일정한 전진이 있었으며 총련사업이 모든 영역에서 개화 발전한 시기였다. 4.19인민봉기에 대한 지지 성원60년에 들어서 한국 정·부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청년학생들과 인민들 속에서 반독재 반이승만 투쟁이 크게 벌어지고 4월19일에 일어난 50만명이 넘는 시위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됐다. 총련은 그날 《이승만 파쑈테로통치 반대, 남조선 인민들의 애국투쟁 지원 재일조선인 중앙궐기대회》를 개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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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상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 부소장
2018.09.1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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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련 결성 이전의 재일동포단체해방직후 재일동포들은 220만 명으로부터 240만 명이 있었다고 한다. 환희와 기쁨 속에서 해방을 맞이한 동포들은 고향으로, 조국으로 향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연합국 최고사령부(GHQ)의 지시에 의하여 일본 당국이 1946년 3월에 재일동포 재류정형을 조사한 결과는 64만7006명이라고 한다. 이 사실은 해방이 되여 한 반년 사이에 140만 명으로부터 180만 명이 되는 동포들이 어떤 수단을 이용하여 귀국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반면에 여러 이유로 일본에 남게된 동포들은 해방직후부터 동포단체를 각지에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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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상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 부소장
2018.09.04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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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련의 성격일본 법무성 통계에 의하면 재일조선(한국) 동포들은 2017년 12월 현재 48만1522명이 등록돼있다고 한다. 필자는 귀화한 사람, 국제결혼을 한 사람 등을 포함하면 재일동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100만 명을 훨씬 넘는다고 본다. 재일동포들 속에서 동포들의 권리를 위하여, 조국과 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결성 이래 일관하게 헌신적으로 활동해 온 동포단체가 있다. 이것이 바로 총련이다. 총련의 정식명칭은 이며 약칭은 또는 이라 부른다.총련에 대하여 좋지 않게 보고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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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상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 부소장
2018.08.21 10:24